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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겨울 아침의 회상(둘)


BY 영광댁 2001-01-13

삶의 변두리에서

겨울 아침의 회상(둘)

뻥새야
누나의 손님으로 방안에서 뒹굴이 하면서도 어떻게 심심하지 않게 잘 노는
너를 위하여 엄마가 해 줄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했단다.

어제 부지불실간에 잦아든 달하나를 부려두고 문방구를 들러 예쁜 편지지를 사고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만두를 사고 ...돌아왔단다.

엄마친구는 아이 넷을 그 손끝아래 부리고 사는 그 친구는 가게를 다시 정비하더구나.
어둠이 잦아드는 그 엄동설한에... 바깥에 서 있다가 들어와서는 벽에 걸린 난로에
불을 쬐고 손을 비비고 입가에 대서 호호 불고...대여섯시간을 그러더구나.
삶은 저렇게도 시난고난한 길인가.
먹을 것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미안했단다.

기억에도 희미한 외할아버지는 볕이 좋은 날엔 양지쪽에 앉아 털실로 양말을 짜시더구나.
잔잔한 고무뜨기로 엮어지던 양말이 떠오른다.
뒤꿈치를 뜨기가 힘들었을텐데... 이것은 엄마 생각이고, 그 양말이 완성되었는지
완성되지 않았는지는 기억이 없단다. 행복은 거기까지라는 것의 매세지처럼.
행복은 해피앤드로 시작하여 해피앤드로 끝나는 장편소설이 아니거든. 하나의 장면.
잘 찍혀진 사진 한 장 정도, 한 장면만 보이는 사진기의 렌즈 하나의 동그라미뿐.

눈길에 막여 오도가도 못할 때 사람들은 숲속으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나선 길짐승,날짐승들을 잡으러 산으로 나갔더란다. 남의 눈을 속이지 못하는 세가지중의 하나인 가난은
눈속에 주린 창자를 참지 못해 나선 허기라면 맞을까? 목숨을 담보로 먹을 것을 ?아 나선 길짐승들을 잡아다 국끓여먹고 눈속에 앉아 트림을 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런 이야기들이 소소한 영웅심을 어린 가슴들에 불러 일으켰다는 것을 그 때의 어른들이
알았나 몰라.
눈싸움도 지치면 건낫없이 토끼몰이 한다고 산으로 올라들 갔으니까.
텅 빈 들에 발자국 하나 없는 가없는 평원같은 눈밭을 종아리까지 빠지는 눈길에 헉헉
대다가 고만 주저앉거나 드러누워 보던 그 말간 하늘이 떠오른다.
아, 그 하늘 , 다시 돌아가서 볼 수는 없으리.
추위탓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드러누어 하늘을 보자면 느낌없이 세상에 대한 그 어떤
슬픔일도 그닥 억울한 일도 없었는데 어쩌자고 그렇게 눈물이 흘렀나 몰라,
눈 속으로 빨려들어가던 그 순일한 눈물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눈물을 다시 흘릴 수 있을까도 생각한단다.

그렇게 눈이 천장같이 쌓이고 내리던날
하루 아침엔 토끼장에 토끼털이 수북하게 빠져 있었더란다.
그랬어, 토끼가 새끼를 낳았어. 붉은 몸땡이를 한 그 작은 토끼새끼가 쥐처럼 찍찍
거린다는 거 아니? 칼소리를 내도 안되고 들여다 봐도 안됐단다.
사람들 눈에 안띄게 토끼장 앞에 거적을 덮어 씌웠고,주위를 조용하게 해주었고
늘 밥주던 사람만 밥을 주었단다. 밥주는 사람은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도 했어, 부정탄다고 했으니까.

특히 토끼는 영 사물스럽지가 않아서...지 새끼를 돌보는데 부정이 끼었으면 아니
새끼를 키우는데 열악한 것들이 느낌으로 가 닿았으면 그 눈감은 붉은새끼들을 다 물어 죽여버리거나 밟아 죽여버리는 수성을 발휘하기도 하였거든.
다 죽이지 않았어도 한 마리쯤 목을 잘라 사람들이 보라고 시위하듯 사람의 눈에
잘 띄는곳에 놓아두기도 했어.
것뿐이였을까 , 허술하기 짝이 없는 토끼장은 쥐도 드나들었고 오소리도 드나들었으니까
그놈들이 그 눈감은 토끼 새끼들을 다 잡아가 버리기도 했으니까.

젖이 퉁퉁 불은 그 어미토끼의 붉은 눈이 갑자기 생각난다.
엄마랑 삼촌이랑 이모들은 토끼장 앞에서 까치발을 하고 손가락을 입에 세로로 세우고
외할머니 뒤를 사분거리며 따라다니기도 했을게야. 그 어린 것들이 보고 싶어서.
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미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고 짐승이고를 떠나 에미라는 말은 지극이 1차적인 본능은 아닌가.
본능은 갈고 닦어지지 않는 천성이니까 그대로 짐승이야 , 모성은 그런 것일거라는 추측으로 산다 엄마는 ...갑자기 무겁다. 에미가 끝나면 늘어진 살가죽으로 비늘을 털어내며
가야 할 곳이 한 곳뿐일텐데... 날마다 비늘을 털아내면서도 아직은 젊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욕망들 위에 서 있으니,...

금줄은 치지 않았으되 금줄 쳐놓은 구역으로 조바심을 가지다가 그래 열흘정도면
토끼새끼가 눈을 떴단다.잔잔한 털이 보송보송 돋아났단다. 아 , 얼마나 이쁜지...
에미를 따라다니며 젖을 빨아먹던 그 토끼 새끼들이 눈에 보인다.
눈이 빨간 토끼는 마지막 제 운명을 아는 것일까.
그래서 처음부터 빨간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뻥새야, 오늘은 콩이나 볶아 먹을까?
이 겹겹한 눈속에서, 이 창창한 얼음짱 속에서 볶은 콩이나 우둑우둑 깨물러 먹을까.

1/13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