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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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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이야기


BY 염원정 2001-09-27

*(꽁트를 쓰기 전에...)

내 나이정도 되는 사람들은 재래식이 어쩌면 그리울 수도 있으리
라, 왜냐하면, 요즈음은 재래식이란 말조차 내밀기 쑥스러울 정도로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네 지난 시절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재래식 정서는 기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한옥 집엔 우물과 펌프 그리고 수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우물을 쓰다가 펌프로, 펌프를 쓰다가 수도로 점차 더 나은 편
을 추구한 흔적이었다. 손으로 일일이 물을 긷지 않아도 어느 정
도의 압력까지 다다르면 쉽게 물을 받을 수 있는 펌프가 생기니 자연
적 우물을 멀리하게 됐고, 우물은 점점 말라버려 결국 뚜껑을 덮게
됐는데, 그러다가 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지고 잠그면 물이 멈추는 수도
가 생기자 수도를 끌어들여 쓰면서 펌프도 우물처럼 입을 닫고 점점
점점 녹슬어갔고, 그저 자리만 차지한 채 지금에 이른 내 재래식 정
서처럼 물줄기가 여위면서 아련한 추억으로 잠들어 있다가 가끔씩
수돗물이 끊기거나 물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나 되새김되곤 하였다.

물이 나오는 우물이나 펌프, 수도는 언제나 가장 손닿기 쉬운 곳이나
마당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와 반대로 화장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뒤 곁 으슥한 곳에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내겐 다음과 같은
물에 대한 기억과 함께 재래식 화장실에 대한 웃지 않고는 기억이 해
낼 수 없는 추억이 있다.

안채는 우리가 쓰고 나머지 방 두 칸에 각각 부엌을 조그맣게 곁들여
붙여서 세를 두고 살았던 우리 집은 가장 불편한 것이 화장실이고 두 번
째가 우선 요즘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밤 수돗가였다. 그 이
유는 그 당시 한옥 집이 거의 양옥집처럼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하루종일 더위를 참고 있다가 으
슥한 밤이 되면 목욕을 하려고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여름밤의 행사
처럼 달빛이 스며들지 않는 곳에 휘장을 치고 물동이를 들고 들어가
누군가가 몸을 씻기 시작하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한 사람씩 그
속으로 들어가 더위를 닦아냈던 기억은 참으로 무드 있는 추억으로 떠
오르곤 하는데, 고요한 밤에 들리는 물소리도 물소리지만, 물을 끼
얹는 소리와 함께 시원함에 자지러질 듯 숨죽여 내는 탄성소리를 들으
면서 밤하늘의 달이나 별을 쳐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물과는 달리 화장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리 쾌적하지
않은 기억들이 많은데, 그 기억조차도 내겐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 되
어버렸다.

뒤 곁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재래식 화장실은 내가 그 당시 가
장 가기 싫은 곳이었고, 그렇다고 안갈 수도 없는 곳이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급히 가야만 하는 곳이었으며, 아무리 급하더라도 화장실 안
에 사람이 있으면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곳이지만, 참을 수 없는
어느 한계에 이르러서는 염치를 불구하고 안에서 한창 볼일중인 사람
에게 문을 두드려댔던 곳이니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더듬어봐도 모든
기억들이 냄새나는 것들뿐이니 내 화장실에 대한 추억은 그리 내세울
것이 없는 부끄러운 일 투성이다.

재래식 화장실은 인분이 차면 긴 작대기에 고무 국자를 달고 지게를
진 아저씨들에게 돈을 주면 일일이 지게로 퍼 내주곤 했는데, 그런 날
이면 온 집안에 냄새가 진동해서 나는 코를 틀어막고 방문을 닫고 들
어 앉아 있거나 아예 친구네 집으로 가 있다가 돌아오곤 했지만, 엄마
는 언제나 지게 수를 세며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다가 그 사람들이 가
고나면 물동이를 들고 가 화장실 청소를 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 비용
은 적당히 나누어 세들어 사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내면서도 엄마는
조금이라도 돈을 절약하려고 화장실에 인분이 꽉 찰 때까지 기다리곤 하
였는데, 지게꾼들이 오는 날자가 우리 집 화장실의 사정과 맞아 떨어지
지 않아 인분이 발판에 닿을라 말라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엔
이웃집의 신세를 질 때도 이었다.



--재래식 이야기--

                              염원정 

찌는 듯한 여름 어느 날 해가 서산에 걸쳐있던 무렵이었다.
큰 볼일을 보려고 화장실 문을 여니 지독한 냄새와 함께 왕파리들이 웽웽
고, 더구나 인분이 발판까지 차 올라 여차하면 엉덩이가 묻을 수도 있을
정도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열었던 화장실 문을 도로 닫고 뛰쳐나온
나는 궁할 때마다 번득이는 내 머릿속에 한가지 묘안이 깜빡거렸다
워낙 급했던 나는 묵은 신문지를 찾아 장독 곁에 깔고 일을 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까딱하다가는 발판에 발을 벌리고 앉다가 신
발을 빠트려 엄마한테 혼날 염려도 없었고, 끊임없이 날개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파리와 신경전을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냄새 때문에 숨을 참
아야 할 이유도 없이 파란 하늘, 상쾌한 바람을 마시며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나비의 모양을 작대기로 땅에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야말로
신선이나 맛볼 수 있는 멋지고 황홀한 배설을 끝냈는데, 문제는 엄마가
알면 또 한바탕 야단맞을 것을 생각하니 뒤처리를 어떻게든 감쪽같이
해야하는데...하고 고심하는 내 눈에 우리 집과 싸릿대 담을 경계로
뒷집 앞마당이 눈에 띄자 또 하나의 기막힌 묘수를 생각해 낸 나는,

내 분비물이 담긴 신문지를 손끝으로 들어올려 강아지도 폴짝하면 뛰
어 넘을 수 있는 담 넘어 조심스럽게 던져버렸다. 그러자 용케도 신문
지는 내용물을 고스란히 담은 채 흐트러짐 없이 \'퍽\'하고 그 집 마당
에 떨어졌는데, 난데없이 뒷집 안방 문이 덜컹 열리는 바람에 나는 기겁
을 하며 큰 간장독 뒤로 몸을 숨긴 후 여기 있다간 안되겠다 싶어 땅을 기다
시피하며 옆에 있던 헛간을 통해 뒷방으로 들어가면서 다급할 때마다
찾곤 하던 하느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기도와는 상관없이 뒷집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다가
마당 한 가운데 놓인 내 분비물이 담긴 신문지를 발견하고는 우리 집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누구야앗! 아, 누군지 빨리 안 나올껴?\"

\"아이구구구구구....\"
방으로 들어간 나는 더운데도 이불을 꺼내 뒤집어쓰고 숨을 죽인 채
마른침을 꼴딱 꼴딱 삼켜대면서 제발 그 아주머니가 제풀에 그만
두기를 바랬지만, 아주머니 우리 집을 향해 점점 더 목소리는 키웠고,
이를 듣고 놀란 엄마가 부엌에서 저녁을 짓다말고 황급히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그라요?\" 하고 우리 엄마가 묻자.

뒷집 아주머니는 잔뜩 화난 목소리로 당신네 집에다 누가 똥을
싸놓은 신문지가 안보이냐고 언성을 높이면서, 당장
엄마더러 찾아내놓으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아무도 모르게 귀신같이 일을 저질렀었는데, 꼬리가 길었나보다.
.... 콜롬보보다 더 귀신같은 엄마가 과연 내가 했다는 것을
모를리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고 난, 이젠 죽었구나.\' 하고 하늘이 노랗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아 축 늘어져 있는데,
마침 뒷집 개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그 개가 똥개라는 사실은 내 진즉 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내 인분냄새를 맡고 코를 씰룩거리며 신문지 곁을 어슬렁거리는지
뒷집 아줌마가
\"이눔! 어디를 널름거려? 저리 썩 꺼지지 못해??\" 하며
개를 한차례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우리 엄마가 모처럼
목청을 크게 높이며 .

\"아이구! 저, 저 개가 누웠는갑네! 아, 그런걸 가지고 괜히 그라요..
보소, 여긴 아무도 없심더. 참말로 아무도 없어예
!\"

와우~ 멋진 우리 엄마. 나는 엄마의 명쾌한 추리에 혀를 내두르며 이
젠 살았구나 하고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앉았다. 그런데, 에구머니
나! 뒷집 아주머니가 기가 차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다
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아유~~~~, 참, 내 기가 막혀어!
개도 휴지로 똥 닦아욧????\"

어쩌면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을 뻔한 내 행동이 휴지 때문에..박살 나
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