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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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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2)


BY 들꽃편지 2001-01-06

이년후 여름날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왼쪽길에서 날 쳐다보며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난 단박에 그 소녀가 경은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난 너무 반가워서 몸이 떨렸습니다.
경은인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생각했을겁니다.
경은인 그 뒤부터 방학때만 되면 날 보러 왔습니다.
경은인 날로 키가 부쩍 커지고 예뻐졌습니다.
그러나 혼자인 건 여전했고 말이 없는 것도 여전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소식이 없더니
또 혼자서 날 찾아 왔습니다.
긴 생머리에 세련된 도시옷을 입고 처녀가 되어서 말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경은이의 두 눈엔 많은 생각이
촉촉히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을 갈망 하는듯도 했고
사랑이 뭐냐고 물어 보는듯도 했고,
사랑 그까짓 거 흥! 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온 산에 진달래가 몇번인가 피고
매미 소리에 시끄러워 짜증이 나던 여름도 몇번 지나고,
아!아! 가을이여....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겨울이 또 몇번인가 지나려고 하는데...
경은이의 어릴때 모습과 똑같이생긴 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걸어 오는게 아닙니까! 경은이였습니다.
엄마가 된 경은이와 똑같이 생긴 경은이 딸 슬비라는 아이와
또 날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습니다.

삼년전 얘기입니다.
경은이가 큰 딸 슬비와 아들 보람이를 데리고 내 곁을
서성거리던 날,왜 애들만 데리고 나타났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참 힘겨워 보였습니다.
예쁘고 곱던 얼굴은 그늘과 수심이 널려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경은이가 보기 싫어 먼 산만 쳐다 보았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는 뒷모습이 아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수수수숫..후드드드드득...
이런 소리만 나다니,
이런 말 밖에 해 줄 말이 없다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티나무라는 이름의 내가 미워졌습니다.

이제 이천년도 끄트머리에 다달았습니다.
경은이와 나의 얘기도 끝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올 여름.
경은인 어떤 남자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타났습니다.
난 경은이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걸 처음 보았습니다.
표정도 밝아지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날은 비가와서 아무도 없었는데...
남자는 경은이를 은근하게 쳐다 보더니 꽉 안아주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더니 뽀뽀까지....
에구! 에구! 에구!
너무 놀라 내 몸에 고여 있던 빗방울이 한꺼번에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나처럼 느티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던 경은이.
쑥부쟁이 꽃이 제일 예쁘다던 경은이.
우리의 오랜 추억을 너도 알고 있겠지 경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