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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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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떡해.


BY hanna 2001-09-12

어젯밤,
시어머니 죽이기란 글을 읽고 참으로 황당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들이 있었으랴하는 마음에
이해하기로 혼자 결정하고....
다른 글들을 읽으며 감정을 추스르다가
두남자 쇼나 볼까하고 티비를 켰더니....
엄마야,
저게 무슨 일이야,
뉴욕에.....세계무역센터에.....비행기가.....
테....러.....!!!!!

어째?...
울아들 학교가 바로 그 근천데......

다른 방에서 케이블티비로 바둑을 보고있던 남편에게 뛰어가
"뉴스 속보 봤어요?"
"아니,왜?"
황급히 kbs로 채널을 돌리니
다시금 끔찍한 장면과 함께 황급한 아나운서의 음성.
어....어.....
남편도 할 말을 잊고......

아들에게 전화를 거니 계속 불통.
학교에 갔을 시간인데....
어쩐담?....어째?....
전화는 불통인채로 1시간이 지나고....2시간이 지나고....
남편은 전화 안되니
전화 안한다고 아들 원망하고....

대전의 과학기술원에 있는 작은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형의 안부를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물어보고
나는 나대로 큰아들에게 메일을 띄우고.

1분마다 메일 체크해도 아들에게선 답이 없다....

전화벨 소리.
황급히 받으니 작은아들.
뉴욕대의 홈페이지에 들어 가 보니
학교엔 전혀 피해가 없고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없으며
당분간 휴교라 한다고.

홈페이지 주소 알려줘 들어가 보니
역시 그 말인데(뭐,내가 읽은 건 아니고)
그래도 학생 한사람한사람 파악하고 한 말은 아닐테니
어디 쉽게 마음이 놓여야 말이지.

가만 있을 수 없어
미국내에선 혹시 뉴욕에 전화 되려나 하고
엘에이로,보스톤으로,텍사스로
아는사람 모두에게 전화 해보니...
미국 전역이 불통.

가슴은 바작바작 타 들어가고...
괜찮을거야....설마......

뉴욕대에 통화가 됐다!
근데 남편이 저렇게 영얼 못했나?
으..,어...소리가 영어보다 더 많다.
아이고,답답해.....
대답은 뻔한소리.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대로다.

새벽2시.
티비에선 계속해서
비행기가 충돌하던 순간과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이 방영되고...
아이구머니나.......저럴 수가.....

"됐다!"
신호가 간다는 남편의 소리.
"** 니?"
아이고,집에 있었나 보다.....
"으응... 11시부터 강의였어? 그래서 안 나갔구나,잘했다.
거기서도 전화가 안되던? 그랬구나."
아들의 목소릴 듣는데 눈물이 찔끔....

우리가 뭐 돈이 많아서 아들을 유학 보낸 게 아니다.
서울공대에 처억 합격해서
생애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하더니
졸업과 동시에
한국엔 있지도 않은 학과로 전과하겠다고 해
남편과 무려 6개월 간이나 싸웠다.
군대까지 다녀 온 머리 큰 자식을 어찌 이기랴....
해서 유학을 떠났는데
학비가 정말 만만치 않은 거라.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한학기에 1000만원 돈!
남편은 이미 정년퇴직했는데,
뭉텅이 돈이 쑥쑥 나가니....아실란가 모르겠네...이 기분.
전과를 했기에 써머스쿨까지 해가며 학사 3년 다시 하고
석사과정 들어갔는데.... 놀라지 마시라...
이번 학기 등록금은 1500만원!
이런 세월이 자그마치 5년 째다.
계산이 되시는가?
거기다 프러스-5년 간의 생활비!
가슴이 떨린다.
그놈의 아이엠에픈가 뭔가 때문에 환률이 올라 더 이 모양이다.
가만있자....그럼 남은 돈이 얼마?
아들들 결혼시킬 때 집은 구해 주려했는데...
이제 큰아들은 저 보고 얻으라 하고....
폐물도 즈그들끼리 실반지 하나씩 나눠 끼라 해야겠네....
그래도 우리 노후에 쓸 돈은 남을 것 같지 않다...? 우잉?
엄마야,어쩐댜.....
아들에게 기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후들거리고 내 자신이 비참하고
남편이 불쌍하게 보이고....
자식에게 기대고 싶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아들이나 딸이나 간에 말이다.

난 시아버지님 8순 되실 때...그 때 첨으로 인생을 느꼈었다.
아...저 분도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힘들게 사셨고...
시어머니와 결혼을 하셨고...내 남편을 낳으셨고....
내남편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을텐데 나 같은 며느리가 들어 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내집에 얹혀사는 군식구로 여겼구나....하고.
이상하게도 그 때 시아버님의 일생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내 눈앞에 펼쳐지는 거였다.
나의 시아버님으로서가 아니라 시아버님의 며느리로서의 내가 보였다.

나 어떡해.
내 노후를 생각하고 내아들의 공부를 중단시켜야 하나?
이거 정말 심각한 고민거리다.
그러나 남편은 추호도 그럴 생각은 없는게
본인도 아들처럼 일류대에 들어갔지만
원했던 것처럼 학자의 길을 걷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때문에....

세월은 흘러가고.....오십대 중반.
이거 눈 깜짝할 사이라는 거...
믿거나 말거나지만,살아보시라....진짜다.
나도 아들에게 기댈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고
또 상상하기도 싫다.
그러나 이제는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다.

시어머니 죽이기를 읽으니
뉴욕테러와는 또 다른 가슴떨림이
가슴 한복판을 좌-악 가르며 줄달음 치더니
후루룩~여운되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