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영씨, 수술 끝난 거 아시겠어요?'
아주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가늘게 대답을 했다. '예...' 그리곤 물었다. '아!.... 아기는요... 우리 아기는요...' 아마도 내가 손을 내저었던 것 같다. 그리곤 또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른쪽 팔에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뭔가를 내 팔뚝에 심하게 쑤셔넣고 있다. '아, 아파요...' 그리곤 '아 내가 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랫배 쪽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뭔가가 배 안쪽으로 꽉 쏠려드는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아, 자궁이 그대로 있는가보다. 뭔가가 자꾸 조여드는게 아마도...자궁이 수축하는 거겠지'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들이 주위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아, 내가 살았구나... 근데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생각을 놓치면 다시 죽는 건 아닌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래야 살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난 회복실에서 실려나오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시아버님의 얼굴도 보인다. 시어머님의 얼굴이 보인다.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마취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인 그 상태에서 난, 아기가 어떻게 되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가 없었다. 만약 안좋은 얘기를 듣는다면 난 마취에서 영영 깨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었다. 다시 혼미한 상태로 빠져들것만 같은 두려움...
입원실로 옮겨졌다. 아까 팔뚝에 심한 통증은 아마도 수혈을 하느라 팔뚝에 바늘을 꽂은 모양이다. 무지막지하게 쑤셔넣은 것 같다. 붉은색 피가 내 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왔다. 아마도 아이를 보고 온 거겠지... '나... 괜찮은 거야?.... 아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다 잘됐어. 당신 여기 병실로 온거면 다 잘 된거야. 당신 수술 잘못되었으면 여기 올 수도 없었을거야, 걱정마, 다 잘 됐어. 아기도 생각보다 상태가 좋대..' 아. 그렇구나... '근데 나 자궁은 있어?' 남편이 답했다. '그럼.. 걱정마. 잘 된거야.' 그리곤 엄마의 얼굴, 시아버님의 얼굴, 시어머님의 얼굴이 내 앞을 왔다가셨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 졸이셨을까? 곁에서 주~욱 날 지켜본 친정엄마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보였다. '엄마....'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친정엄마가 젤로 먼저 떠오른다던데... 나 땜에 너무 맘고생하신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친정 남동생이 왔다가고 큰어머니, 작은어머니께서 다녀가셨다. 회사에 그만 가보라고 해도 남편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저녁 7시에 남편과 시부모님, 그리고 엄마가 아기를 보러 가셨다. 의사선생님께서도 다녀가셨다. '수술이 잘 되었으니 앞으로 회복하는게 문젭니다. 아기도 생각보다 상태가 좋으니 좀 지켜봅시다.' 모든게 순조로왔다. 아기는 601g이라고 했다. 얼마나 작을까? 지난번 TV에서 본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아이'는 4백 몇그람이었는데...그 아이보다는 조금 크겠지? 다른 아이들은 보통 2.5kg 이상인데 정상아보다 4배에서 5배는 작은 건데...얼마나 작을까? 그래도 얼굴은 이쁘겠지? 어제 초음파로 본 사진에서 분명 웃고 있었는데... 코도 오똑하고...
남편은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에 대해서는 생각지 말라고했다. 나중에 얘기하자고... 저녁에 다녀가신 의사선생님께 여쭤봤다. '아들일껄요...이 봐, 아들이지?' 하고 옆에 의사에게 묻는다. '네, 아들입니다.' 그래서 난 말했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난 아들인 줄 알았어요.' 의사선생님이 웃었다.
저녁 내내 남편이 보이질 않는다. 보호자를 찾는 전화가 소아과에서 왔다. 남편이 한참 나갔다 왔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왜? 아기가 안좋대?' 하고 물었다. '그래,,, 아주 안좋대...' 그리고선 또 전화를 받고 나갔다. 남편이 돌아왔다.
'인영아, 조금 전 10시 6분에 아기 심장이 멈췄다.'
'응....'
'폐성숙이 너무 안되었대. 폐성숙시키는 주사를 몇 개를 맞아도 안되더래. 아기가 너무 힘들어 한다고 의사가 중간에 포기하자고 했었어. 그래도 계속 하는데까지 해보자고 한건데... 좀 전에 아기 심장이 스스로 멈췄어. 아기가 힘들었나봐.'
'응....'
그 다음에 남편이 무슨 얘긴가를 한참 한거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은 내게 허락을 받고 그 날 아이를 영안실로 내려보냈다. 내게 알리고선 한다고 의사에게 말했단다.
난 다음날부터 걷기 연습에 들어갔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잘 회복하려면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벌써 병원에 2주째 나랑 함께 계신다. 엄마는 그저 당신 딸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신다. 그리고 딸이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가 될까봐 노심초사 하셨던지라 내 자궁이 그대로 배에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시고선 또 한번 의사에게 허리 깊이 숙여 감사를 표하신다. 그리고 내내 딸의 심사를 살피신다. 6개월만에 아이를 낳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하늘로 아이를 보낸 당신 딸의 마음을 살피시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그런 엄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둘째 날 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배속에서 꿈틀대며 나와 대화를 나누던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10시간도 채 못되어 가버린 작은 영혼이 가엾어 한없이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말했었다. '그래도 당신은 좋겠다. 아이 얼굴을 봤으니...' 남편이 대답했다. '본 사람이 더 힘든거야...'
그래, 그럴꺼야.
둘째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 하얗고 네모난 상자인지 돌비석인지... 뭔지모를 하얗고 네모난 것이 보였다. 그리곤 꿈에서 깨었는데... 내 생각인지 아님 누군가 내게 얘기를 한건지... 문득 '아! 아기가 인사를 하러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표시도 아무런 얘기도 없었지만 그냥 꿈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다음날 남편에게 꿈 얘기를 했다. 남편이 말했다. '맞아, 그 녀석이 인사하러 온걸꺼야. 그 하얀 상자말야... 내가 신생아실에서 영안실까지 네모나고 하얀 상자를 들고 갔었어. 그게 아마 그걸꺼야.'
내가 말했다.'자식... 그래도 엄마에게 인사까지 하고 갔네...'
작은 상자를 들고 걸어가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겪은 육체의 고통, 마음의 고통 못지 않게 남편에게 다가왔을 그 아이의 모습, 그 아이에 대한 기억... 그것이 또다른 모습의 고통으로 남편을 힘들게 했을테지... 상자를 들고 걸어가는 남편의 모습이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다음번 이별(5)에서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제가 새로이 알게 된 것, 그리고 알려주고 싶은 것에 대해 올릴겁니다. 아마도 지금은 스쳐지나며 누군가의 경험으로서 읽혀지는 얘기이겠지만 혹 시간이 지나서 주위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될 얘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어려울 때 저에게 희망을 주셨던 다른 얘기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