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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주부의 영.화.수.다 - 9. 물고기 자리


BY 꼬마주부 2001-09-01

노란 여자와 파란 남자...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눈을 채웠던 것은 인물이 아니라, 색깔이었어요.
감독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감독은 혹시 '화가'가 아닐까 싶어요. 화면에 담긴 색들이 어찌나 선명하고 뚜렷한지 마치 색 좋은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 색칠한 것만 같았지요.

애련.

이름부터 슬픔이 가득한 이 여자는 노랑 광(狂)이예요.
노란 옷, 노란 차, 노란 쥬스, 노란 이불, 노란 핀, 노란 물고기...
심지어는 그녀가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 "Sad Movie"의 간판 조명도 노란 색이죠.

반면, 그녀가 사랑하는 가수지망생 동석은 파란색으로 표현되죠.
이 남자는 파란색 광(狂)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주변엔 파란색이 많아요.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남자에 대한 한 여자의 광(狂)적인 사랑을 포맷으로 삼고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의 제 느낌은,
세상의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을 세심히 표현한 것 같았어요.

파란 남자를 사랑하는 노란 여자, 노란 여자를 사랑하는 어린 남자, 음악에 대한 파란 남자의 집착...그리고 어려움 없이 가까이만 있을 것 같은 파란 남자와 애인과의 이별...

뭐, 그런 것들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였어요.

누구든, 간절히 원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있잖아요.
다만, 절제할 뿐이지.
밖으로 드러나게 집착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로 내 몰리죠.

어느날 밤, 술에 취한 동석이 애련을 찾아와 이런 말을 해요.

"정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땐 간절히 원하지 않은거잖아요. 간절히 원했는데 이루어 지지 않으면 그건 나한테 문제가 있는거잖아요...다 아는데,..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걸 다 아는데...."

동석은 음악에 대한 자신의 소망을 말한 것이지만, 애련은 후에 거울을 보며 혼자말을 하죠.

"정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이루어 지지 않았을 땐 간절히 원하지 않은거잖아요. 간절히 원했는데 이루어 지지 않으면 그건 나한테 문제가 있는거잖아요..."

동석에게 자기의 사랑이 받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독백...
애련의 사랑이 미친사랑으로 취급된다면, 동석의 음악적 집착도 미친음악이 아닌가???

'물고기 자리'

하지만, 사실은 영화 내용은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깨끗하고 정갈하게 펼쳐지는, 그리고 호흡이 길게 주변의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한 그 선명하고 뚜렷한 색깔들에 입을 헤~ 벌리고 있었거든요.

노랗고 파란 색들과 함께 간간히 비쳐지던 초록 잔디들도 어쩜 그리 탐스럽던지...아직도 이미연 얼굴은 잊혀진채 색깔들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네요...


--이미연보다 물고기들이 더 예쁘다고 생각한 꼬마주붑니당.

사족.

그런데, 물고기 자리가 원래 집착이 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