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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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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백년 된 은행나무와 배고픔


BY pjr1017 2001-07-19

교회에 열심인 나는 금쪽같은 휴일에는 푹 쉬고 싶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상에 늘 허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국경일에 대한 기대와 부? 꿈은 남달랐다.
하루종일 누워서 뒹굴뒹굴해야지.....
속으로 기도하면서 별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세상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뿐인 딸아이는 유난히 노는 날에는 더 빨리 일어났다.
여지없이 경건한 제헌절에도 딸은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달라고 보챘다.
나는 짜증섞인 말로 좀 더 자라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어렴풋이 잠으로 다시 빠져드려고 하는데 아이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는 것 같았다. 그렇지 너도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지..,.
하는데 '턱'소리가 나더니 "엄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번개처럼 일어나 뛰어가보니 냉장고 앞 바닥을 우유가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재빨리 우유통을 세우고 야단칠 틈도 없이 걸레를 갖다가 닦아냈다. 일말의 양심으로 아이를 내버려둔 엄마의 죄를 인정했다.
온 몸으로 우유를 먹은 딸은 겁먹은 얼굴로 아빠를 깨웠다.
나는 남편에게 아이의 아침을 부탁했다. 며칠동안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늦게까지 야근을 했었다. 쌓인 피로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음먹고 잠을 자기로 했으니까 나는 더 자야만 했다. 잠에 대한 욕구는 자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숨을 자고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같은 교회 다니는 부부가 양평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했다. 못들은 척 하고 싶었다.
하지만 딸은 낮시간을 혼자 지내기 때문에 엄마 아빠와 함께 나들이를 가고 싶다고 졸랐다. 오후에 출발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지만 딸의 현장체험학습 차원에서 따라나섰다. 나는 다음날에 피해를 주는 늦은 귀가의 행사를 무척 싫어했다. 그런 나의 성격을 알고 있는 옆집 아저씨는 모든 일을 서둘렀다. 너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잠시 들른 용문산의 은행나무가 웅장했다. 천 백년이나 되었다는 나무는 백년도 못사는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위축시켰다. 가을에 은행잎이 떨어질 때는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보이고, 포근하기가 침대같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딸 핑계로 한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인생의 또다른 묘미였다. 나와는 상관없던 용문산과 은행나무가 추억속의 한 페이지로 나의 삶과 인연을 맺는 것이었다. 한 눈에는 다 볼 수도 없는 커다란 나무와 작별을 하고 우리 집을 향해 출발했다. 시간은 벌써 다섯 시가 넘었다. 한 쪽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늦지 않을까?
경춘가도를 들어서면서 나는 서울에 있는 차가 모두 내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다니면서 살고 있는데..... 움직이기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우리 딸은 너무 우물안 개구리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나보다. 미안한 마음에 돌아보니 벌써 잠이 들어 있었다. 나도 어두워지는 차 속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문득 잠이 들었다.
"엄마, 밥 주세요!"
하는 소리에 벌써 아침인가? 놀래서 잠이 깼다.
창밖을 보았더니 아직까지 깜깜한 밤이었다. 뒷좌석의 딸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고 있었다.
"우리 딸이 배가 고프구나. 지금 밥이 없어. 조금만 기다리면 서울에 다 올거야."
"그럼 밥하고 비슷한 거라도 있어요?"
"뭐? ㅎㅎㅎ 비슷한 게 뭐야? 조금만 참아.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금방 밥 먹자, 응?"
시간은 열 한시가 되어 있었다. 서울 시내로 들어섰을 때 남편은 무조건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딸보다 배고픈 것을 더 못참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아이는 콩나물 해장국을 한 뚝배기 모두 먹어치웠다.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핏기가 없어진 듯 하앴던 얼굴이 상기되었다.
아빠와 딸은 꼭 닮아있었다.
"밥하고 똑같은 거 맛있게 먹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