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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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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르는 며느리


BY 들바람꽃 2001-07-05

우리 시어머님은 개방적이고 탁 트인 분이시죠.
별로 말수가 없는듯 하지만
하고 싶은 말씀은 다 하시고...
그것이 며느리 입장에서는 참 편합니다.

못난 이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 머리 끝에
올라 앉으려 하니...

그 발단은 이렇습니다.

시댁은 작은집이라 제사도 지내지 않는
정말로... 며느리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죠.
그런데 큰어머님의 기일이니
평일이라 아들은 말고 며느리만 내려오라 하지 뭡니까?

말많고 성질 급한 저는
신랑한테 한바탕 쏟아 부었죠.

"아니... 아들은 힘들고 며느리는 안 힘들대"
"우리 엄마 생신에도 못 갔는데... 꼭 가야해"
... 등등등.

순진하기 그지없는 우리 신랑
직빵으로 어머님께 전화를 해서는
며느리에게 잘해주라는둥...
왜 그러냐는둥...
소위말로 대들었습니다.

그결과는 불보듯 뻔하고
그 불똥은 누구에게 돌아옵니까?
바로.
바로.
저 아닙니까?

그래서 찍소리 못하고 곱게 화장하고 내려갔죠.
근데 어머님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 같고
이야기좀 하자 하십니다.
무슨 이야기?
잔뜩 쫄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하고 싶은 말은 많죠.
그러나
목구멍에서 맴돌뿐 어디 그게 나옵니까?

우리 어머님... 시작하십니다.
"난 딸이 없어 널 딸로 생각한다.
너도 그런줄 알았다.
제사에 내려오라는건 다 너희들을 생각해서 그러는거다
올 일년만 내려와라.
난 어디가든 며느리 잘봤다고 한다.
난 너한테 서운하거 없는데
나한테 서운한거 있으면 말해라.."
등등등...

당돌한 이 며느리 어머님께 그랬습니다.
친정에도 가고 싶고 잘하고 싶은데 시댁에만
신경써야하니 서운타고...
어머님도 며느리 이전에 딸이 아니냐고...
근데 순간 정말 아차 싶었습니다.
어머님의 표정이 조금 변하시며
아...
여기선 그냥 참았어야 하는건가 싶었죠.

이 위기 상황을 어찌 모면할까 궁리를 하다가
번쩍 머리를 스친것은 무진무구한 우리 신랑

"어머님...
어머님한테 서운한거보다 ..."
하면서 우리 신랑 흉을 봤습니다.

솔직히 우리 신랑처럼 잘하는 남자 없습니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노는 제 어깨도 주물러주고
다리 마사지 해주고.
주말엔 설겆이에 청소에
자기 옷은 물론 내 옷까지 말끔하게 다림질 해놓죠.

그치만 어쩌겠어요?
제가 살아남아야 하는데...
눈물 그렁그렁 하면서 쪼금 흉을 봤죠.
우리 친정 엄마가 하신 말씀이 남편 흉보다 시어머니랑
친해진다나요.

단번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 니 맘 이해한다.
개가 누굴 닳았겠냐? 니 시아버지 닮았지...
나도 그러고 살았다..."

사실 우리 시아버님도 공처가구만...
여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더군요.
하지만 호호호... 전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우리 어머님 완전히 제편이 되어선
네 말이 구구절절 옳다 그러셨거든요.
그뒤로 우리 어머님이랑 무진장 친해졌습니다.
싸우면 제 편들어주신답니다.
저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불쌍한 우리 신랑...
너무나 이뻐서 요즘 무지 무지 이뻐해줍니다.

근데요...
이것도 통하는 분한테 해야지
제 친구는 시어머님이 얼마나 화를 내시며 아들편을 들던지
등줄기에 땀이 주루룩 흘렀답니다.

참...
시집살이가 고달픕니다.
육중한 이 몸을 끌고 몸바쳐 일해야하고.
공부 할때도 안쓰던 머리도 굴려야하고.
그치만 싸랑하는 우리 신랑 부모님인데 어쩌겠어요?
그분들 많이 많이 사랑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