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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주부의 알.콩.달.콩 - 25. 비 쏟아지는 아침에...


BY 꼬마주부 2001-07-05

밤새 더웠습니다.
이불을 모두 차내고 자는데도 너무나 더워서 자는 도중 여러번 깨어 찬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고, 선풍기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아침무렵이 되자 신랑이 열어놓은 침대 맡 창 밖에서 '후두두두' 소리가 들렸어요. 비가 내리는 모양이었습니다.
밤새 그렇게 후덥지근, 덥더니 이렇게 비가 쏟아질 요량이었나봐요.

신랑은 아침 샤워를 하고 면도를 했습니다.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나는 신랑 면도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지요.

"더 자."
이렇게 말하는 신랑의 눈동자는 빨갰어요.

어젯밤, 갈비 사달라고 하는 저를 갈비집에 데려가 많이 먹으라면서 저를 쳐다보는 신랑의 눈은 그때도 빨갰어요.
나 - "졸려?"
신랑 - "아니."
나 - "뭐가 아니야. 눈이 그렇게 빨간데. 졸려 죽을 듯한 눈이구만."
신랑 - "졸려서 그런거 아닌데...."
나 -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난 척보면 다 알아."
신랑 - "(혼잣말로) 아닌데..."

매일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신랑이 잠이 부족해서 그러는구나, 싶어 집에 오자마자 그 좋아하는 티비도 못보게하고 재웠는데, 아침에 면도할 때도 눈이 빨간거예요.

나 - "졸려?"
신랑 - "아니."
나 - "그럼, 피곤해서 눈이 빨갛게 ?楹? 피곤해?"
신랑 - "아니. 토끼가 되려나 보지.^^"

시덥잖은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신랑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나 - "오늘 쉬면 안돼?"
신랑 - "어."
나 - "피곤한거 같은데 오늘 쉬면 눈도 괜찮아질텐데...."
신랑 - "오늘 쉬면 29일까지 한 번도 못쉬는데? 여름휴가 때문에 7월
달은 두 번만 쉬어야해. 그런데 한 번은 지난 주에 쉬었잖아."
나 -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러다 죽겠네."
신랑 - "(갑자기 빨간 눈을 반짝이며) 그런데 9월부터는 4번씩 쉴거
야. 좋지? 그렇지만, 금.토는 새벽 1시까지 일하고."
나 - "뭐? 참내, 그게 쉬는거야? 사람 잡는 거지!"
신랑 - "내가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나 - "하여간, 일은 혼자 다해. 나한테 좀 그렇게 충성해봐라."
신랑 - "그게 뭐 나 좋자는 거냐? 가게 매출이 오르면 월급도 오를거
아냐. 그럼 너가 좋아하는 돈도 많이 벌구. 좋지, 뭐~~"
나 - "그렇게까지 하면서 돈 벌 필요 없어. 바보."

우리 시부모님도 고개를 절래절래 내 저으실 만큼 일에 충성하는 우리 신랑. 자기 몸 부서지는게 눈에 보이는 데도 항상 '아무렇지 않다'고만 하는 우리 신랑이 어찌나 바보같던지, 내 자식이라도 된다면 분명히 등짝을 한대 후려쳤을 겁니다.

나 - "(안쓰러운 표정으로) 어제 너무 더웠지."
신랑 - "어. 우리가 깔고 자는 이불이 너무 더워."
나 - "여름 이불 하나 살까? 모시 이불같이 까실까실하고 시원한거."
신랑 - "아니야. 작은 방에서 돗자리 깔고 방바닥에서 자면 되지. 사
지마. 지금은 아무것도 사지마. 응? 나중에 우리 좋은 집 이사가
면 그때 좋은 살림 사자. 지금은 좀 참고. 알았지?"
나 - "치. 이불은 그때도 쓸 수 있잖아, 뭐. 그리고 언제 좋은 집으
로 이사가냐?"
신랑 - "글쎄,음...한 10년 쯤 죽어라 돈 모으면? 우하하하."

농담을 하면서도 신랑은 빨갛게 충열된 눈이 불편한지 자꾸만 눈을 찡긋찡긋 하는겁니다.

나 - "병원가자."
신랑 - "괜찮은데."
나 - "괜찮긴, 뭐가 괜찮어. 눈은 빨개서 손님들한테 어떻게 서비스
하려구."
신랑 - "그건 그렇지만, 난 잘생겼으니까 눈 빨간건 괜찮아.우하하"
나 - "이그, 못생겼으니까 눈이라도 멀쩡해야지. 내가 같이 갈테니까
아무말 말고 병원 갔다 가자."
신랑 - "괜찮은데...."

혼자서는 병원은 커녕 약도 안 먹으려는 신랑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저도 막 옷을 줏어 입었어요.

나 - "이 아침에 세수도 안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흉보지만 어쩌겠어.
신랑 눈이 빨간데, 부인이 세수 좀 안하면."
신랑 - "병원 안 가도 되는데...."
나 - "안 가긴 뭘 안가. 내가 빨간 눈 보기 싫어서 그런거니까 쉿 하
고 얼른 와."
신랑 - "병원가면............주사 맞잖아............"
나 - "어이구, 눈 빨간데 주사를 왜 맞아. 바보. 내과나 이빈후과에
가야 주사맞지. 그리고 주사 좀 맞으면 뭐 어때서."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헤치며 신랑과 나는 15분 거리에나 있는 안과까지 우산 하나에 서로 의지하며 걸어갔습니다. 우산 속에는 걷는 내내 잔소리를 늘어놓은 나와 즐겁게 잔소리를 듣는 신랑이 있을 뿐이었지요.

진료를 마치고, 갈림길에서 신랑은 자기의 까만 우산을 펴 들었습니다.

신랑 - "거봐, 별거 아니잖아."
나 - "눈 흰자에 누렇게 뭐가 낀 것도 얘기했어?"
신랑 - "어? 어...아니...그건 괜찮아."
나 - "뭐가 괜찮다고 그래. 모처럼 병원 갔을 때 있는거 없는거 다 물
어보고 와야지.그것봐, 내가 진료실에 따라들어간다니까 못 들어
오게 하더니...(잔소리, 잔소리)"
신랑 - "어.........어? 나 빨리 가야하는데. 간다. 안녕~~"

신랑은 살짝 웃으며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나는 신랑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신랑의 까만 우산이 까만 점으로 보일 때까지 마냥 쳐다보고만 있었지요. 신랑의 등 뒤로는 여름을 재촉하는 장대비가 대나무살 같이 곧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안쓰러워 죽겠는 꼬마주부였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