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윗층 여자와 아랬층 남자>
오늘도 그는 아내보다 먼저 잠에서 깼다.전같으면 아내가 두세번은 깨워야
마지못해 마땅찮은 얼굴로 일어낥터인데 < 은솔> 을 알고 부터 그의 아침이
달라진 것이다.
그림자 처럼 살그머니 안방을 빠져나와 아이들 방으로 스며 들었다.
행여 아이들이 잠이 깰세라 조심하며 컴 앞에 앉았다.
( 안녕 ! 신선한 아침 입니다. 간밤의 꿈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오후 7시에 기다리겠습니다.)
< 은솔>에게 쪽지를 보내고 나서야 화장실에가서 참았던 볼일을 시원하게 보았다.
세수를 마치고나자 그제서야 아내가 헝클어진 파마 머리에 잠이 덜깬 부시시한
얼굴로 안방에서 나왔다.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한마디했다.
" 전엔 죽어라 안일어나더니만 요즘은 증말 이상하네요."
뜨끔함에 그는 일부러 심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 당신 도와줄려고 그런다. 왜? 맨날 나 깨우기 지긋지긋하다며?"
하도 빨아 입어서 빛이 바래고 무릅이 튀어나온 몽당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아내를 보며 그는 화사한 홈 웨어 차림으로 음악을 들으며 아침 커피를 마신다는
< 은솔>을 생각했다.
그가 <은솔>을 만난것은 채팅 사이트의 대화방에서였다.
다소곳하고 정감어린 <은솔>과의 대화에 그는 마음을 빼앗겼다.
결혼 생활 십몇년에 그는 아내의 불평과 잔소리와 가장으로서의 고단한 일상에
지쳐 있었다.
그는 퇴근 후 곧바로 피씨방으로 달려가 <은솔>을 만났다.
<은솔>이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비록 현실에서의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다하더라도 사이버에서 만나는
라일락 향기 짙은 여자가 있음에 그는 행복했다.
<은솔>이 어느동에 사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엉겹결에 도시의 일급 아파트 단지
42평에 살며 개인 사업을 한다고 대답했다.차마 20평짜리 임대 아파트에
만년 말단 회사원이란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없었다.
" 어유~지겨워...증말..윗층에 성환이 엄마 말예요 돈 빌려간지가 언젠데
준다, 준다하면서 한달이 다 되가는데 주질 안잖아요."
" 제때 받지도 못할 돈 왜 빌려줘?"
" 급하다고 하두 사정을 하길래 마지못해 빌려줬죠.그 여자 증말 염치도 없다고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서 그는 회사 통근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가을이 깊어 가는가 !
그는 투명한 아침 햇살 속에서 문득 지금쯤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은솔>을 생각했다.
저만치서 윗층의 성환이 엄마가 오고 있다.
언제나 처럼 종종 걸음으로 뛰듯이 걸었다.아래 위층에 살아도 그와는 대화는 커녕
인사조차 나눈적이 없는 여자다.
아내 말에 의하면 남편 수입이 일정치 않아 오전에만 시간제로 식당일을
한다고 했다.자그마한 체구에 어딘지 모르게 삶의 고단함이 베어있는 여자다.
그도 여자도 무심한 얼굴로 서로를 지나쳤다.
그들은 타인이므로__.
오전 12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아들방의 컴앞에 앉았다.
접속해서 쪽지를 확인할 때까지 그녀의 가슴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방망이질 쳤다.
행여 <호반>으로부터 쪽지가 와있지 않으면 어쩌나.......
오전 내내 식당 주방에서 푸성귀를 다듬고 밑반찬을 만들면서 그녀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요즘들어 부쩍 더 심해진 현상이다.
( 안녕! 신선한 아침 입니다.)
아!~~~~~~~~~~~그녀는 <호반>의 쪽지에 안도감으로 기슴을 쓸어 내렸다.
괜히 눈물이 날듯도 하였다.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른는 남자인데......다만 이 도시 한끝의 42평짜리
고급 아파트에 살며 영화 감상과 볼링이 취미라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지는 남자__<호반>에게 그녀는 날이 갈 수록 사랑의 불꽃이 느껴지는것이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음을 무척 반가워하며 어느동이냐고 <호반>이 물었을 때
그녀는 엉겹결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와는 점 반대쪽 동네 이름을 말해버렸다.
20평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술고래 남편과, 시간제 식당일을 하며 산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요즘은 부부 싸움이 뜸해졌다.
일 마치고 곧바로 술 마시러가는 남편이 고맙기까지 했다.
저녘 시간이면 <호반>을 만날 수 있는 은밀하고 가슴 설레는 즐거움이
남편에 대한 불만과 상쇄되는 것이다.
오늘 식당에서 한달 봉급을 받았으니 아랫집에서 지난번 빌려온 돈을 갚아줘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기를 쓰고 일해도 남편의 술값으로 남아나는게 없다.
그래도 그녀는 요즈음 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오후 7시.<호반>과 <은솔>은 가슴 설레며 만났다.
호반____오늘 하루 잘 지냈어요?
은솔____ 네, 덕분에요.
호반____ 뭘하며 보냈나요?
은솔____ 훗~~그냥...오전에는 음악 듣구 책도 좀 읽고요, 오후엔 할인매장에
쇼핑 다녀왔죠. 님은요?
호반____ 난....하루 종일 당신을 생각 했지요.일분이 한 시간 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혹시 오늘 못 만나면 어쩌나 싶어 걱정도 됐고요.
은솔_ 저도요. 저녁이 되기만 기다렸어요.왜 그런지....자신도 잘 모르겠어요.
호반___ 굳이 알려고 하지 말아요.그냥 그 감정을 소중하게 가슴에 담아 둡시다.
비가 올려는지 아침 부터 흐린 하늘이다.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했다.저만치 비탈진 길 아랫쪽에서 통근 버스가 올라오고 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무연한 얼굴로 버스를 바라본다.
언제나 처럼 종종 걸음으로 윗층 여자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무심결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칠듯하다 촛점을 비껴간다.
그들은 타인이므로______________
<호반>과<은솔>의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