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몇몇 어른들은 믿어지지도 않은 귀신 소동에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철없는 아이들 같은 행동을 한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의견이 모아진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골목길을 따라 느티나무 근처로 향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느티나무 근처에 이르자 사람들은 긴장시키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소리와 바위를 휘감아 도는 시냇물 소리 그리고 실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구슬픈 새소리, 간간이 메아리치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민감해진 사람들의 청각을 자극하였고 먹구름에 가려 간혹 얼굴을 내미는 별빛과
초생달은 초라하고 슬퍼 보였다.
사람들은 느티나무 건너편에 위치한 자연이네 뽕밭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숨을
삼키며 느티나무에 귀신이 나타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한시간이 흘러도 귀신의 형체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다리가
쑤셔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쓸데없는 짓하고 있는 거 아니여!"
"무신 소리여? 시방! 조금만 더 기다려 보더라고."
"오늘은 틀린 것 같은디."
"귀신들은 비오는 날 잘 나타나는 것 아님감?"
"맞어! 오늘은 나타날 것 같지가 않구먼."
기다리는 사람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해가며 웅성거리기 시작하였고 표정에는
안도감과 실망감이 동시에 교차되었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섰는지 반장도 구겨진 옷을 털며 일어났다.
"오늘은 틀린 것 같습니다. 내일 비가 올 것 같은데 내일 밤에 한번 더 나오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려, 그렇게 하더라고."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준비해 간 몽둥이와 횃불을 써 보지도 못하고 주섬주섬 손에
들고 뽕밭을 나와 느티나무 밑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라면 이 시간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여러 명이 있다보니 귀신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져 버린 듯 마음 편하게 느티나무 아래서 사람들은 잡담을 나누었다.
밤이 늦자 사람들은 피우던 담뱃불을 끄고 졸린다며 집으로 향하고 작은 회오리바람에
느티나무 잎들이 사사삭 소리를 내는 순간, 나뭇가지가 꺾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하얀
물체가 암느티나무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추며 쪼그리고 앉아 소리가
나는 곳을 응시하자 나뭇가지와 잎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움직였다.
사람들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고 두려움은 온 몸에 나 있는 솜털까지 일으켜 세웠다.
'아! 귀신이 정말 있었구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들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경직되고 머릿속에서는 움직이는 귀신의 형상이 떠올랐다.
초긴장이 되어 사람들은 한참이 지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퍼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서로의 눈치만 보며 멈칫거리던 사람들은 더 이상의 소리와 움직임이 없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물체가 떨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반장이 서둘러 횃불을 켜자 그 물체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람에 꺾어진 듯한 작은 나뭇가지였고 실망한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또 다시 암느티나무 위에서 퍼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무 위를 쳐다보았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하늘로 솟구쳐
날갯짓하는 두루미 한 쌍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