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정부가 자녀 1인당 출산 양육비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48

추억이 머무는 느티나무...1


BY dlsdus60 2001-06-16

"우리 동네가 이제 운을 다한 것 같어!"
"글씨 말이여, 오뉴월에 무신 재수 없는 귀신이 나온대야!"
"참말이여, 시방!"
"아, 이 사람아! 참말이랑께. 내가 시방 쌀밥 묵고 귀신 싯나락 까 묵는 소리하고
있는 줄 알어?"

가장골 재덕이 아버지는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자신이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반신반의
하며 듣고있던 동규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렇듯 마을에 때 아닌 귀신이 출현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귀신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급기야 자신도 그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까지 나타나기 시작을 하였다.
그리고 귀신 이야기가 끝이 나면 사람들은 두려움을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들로 향했다.

귀신 소동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옆집 친구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 아버지는 고향 인근의 읍내 5일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는데 장이 끝나면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인지 걸쭉한 막걸리를 마시고 흥얼거리며 밤늦게 귀가를
하였다.
밤이 되면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이며 바위들이 술에 취한 눈으로 보면 다른
형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친구의 아버지는 그것들을 종종 귀신으로 착각하여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친구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면서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저녁 늦게 수업을 마친 마을 아이들은 십리 길을 걸어 귀가하는 동안
지나야 할 고갯길이며 골목길들이 무서워 같은 마을 아이들은 다 함께 모여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그런데 새롭게 등장한 귀신이야기는 귀신의 형상과 정황에서 누가 들어도 상당히
구체적이며 사실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었으며 다름 아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아끼는
느티나무에서 그 귀신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600여년의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본 느티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가족과 같은 존재로 생각할 만큼 친숙했으며 마을의 수호신처럼 생각을 하였고
마을의 상징처럼 여기며 평생을 느티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을 때면 제일 먼저 느티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느티나무는 두 그루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남자의 품에 여자가 다정스럽게 안겨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인지 아니면 실재로 느티나무가 암수가 구분되는 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을 사람들은 곧게 자란 나무를 숫느티나무라 하였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어서
숫나무를 기댄 채 자란 나무를 암느티나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마을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느티나무가 암수로 구별되는
것으로 믿었고 마을 어른들도 느티나무는 당연히 암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느티나무를 보면 고향의 느티나무를 떠올리며
줄기가 곧바로 뻗은 것을 보면 숫놈이라고 하며 줄기가 비스듬히 자란 나무를 보면
암놈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