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눈을 껌벅거리며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놈에게 담배 피운다고 의심까지 받게 만들다니, 주인 허락도 없이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성냥이 괘씸하더군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성냥의 출현을 너무나 반가워하였습니다.
성냥 덕을 단단히 보려는 듯이 발 빠른 녀석이 마른 잡초를 모와 오고 나는 근질거리는
손을 끝내 참지 못하고 녀석이 가져온 잡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잡초에 얼굴은 불그레해 지고 흐르던 콧물도 잠시
멈추었습니다.
바람은 모닥불 기세에 눌려 모여든 아이들 등 뒤에서 야양만 떨고 있었고 가랑이 사이에
매 달린 그것도 축 늘어졌습니다.
모닥불은 우리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만들었고 성냥의 괘씸죄도 용서하였습니다.
어떤 놈은 모닥불을 등지고 서서 바람에게 오줌 세례를 퍼붓고 있었고 다른 놈은
여전히 코딱지를 파내 모닥불에 던지며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자식은 그때까지도 성냥이 어떻게 호주머니에 들어 와 있나?목하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불에 대한 고마움에 중독되어 모두들 행복 해 하고 있는데
코딱지를 후비던
녀석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잘 타오르는 모닥불을 가지고 있던 갈퀴로 확 파 해쳐
버렸습니다.
순간, 아이들 모두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고 바람은 이 때다 싶어 조각난 불덩이들을
여기 저기 분산시켜 삽시간에 우리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이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하며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바람의 의도대로 불들은 온 산을 삼킬 듯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에게 오줌 세례를 준 어떤 놈 때문에 바람이 화가 나도 단단히
났던 모양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얼굴에 찬물만 끼얹어도 화가 나는데 오줌 세례를 받았으니 바람이
화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도 성깔 한번 더럽더군요. 그만한 일로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어떤 놈이나 코딱지 파던 놈 그리고 사람의 자식 등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나 급한 마음에
소나무 가지에 매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번지는 불을 끌 도구가 없어 솔가지를 꺾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살짝만 잡아 당겨도 "툭!" 하고 부러지던 솔가지가 활처럼
구부러지기만 할 뿐 그 순간은 쉽사리 부러지지가 않았습니다.
환장하겠더라고요. 불은 번지죠, 마음은 급하지요, 물먹은 솔가지는 꺾어지지 않죠.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솔가지에 매달려 동동거려 봤지만 다른 놈들도 한결같이 솔가지에
매달려 낑낑대고 있을 뿐 퍼져가는 불을 끄는 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코딱지 파던 놈은 그래도 자기 잘못을 알았는지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갈퀴로 불을
끄다가 마땅치 않아서 그랬는지 솔가지를 용케도 하나 꺾어 불을 끄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과 불은 상상을 뛰어 넘어 궁합이 너무 잘 맞았습니다.
아이들의 처절한 울부짖음과 노력을 비웃기라도 한 듯 불은 어느새 억새풀 군락을 태우고
계속해서 산 정상을 향하여 타 올랐습니다.
산불은 풍악이라도 울려야 할 만큼 신이나 보였습니다.
사태는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노랗고 심장의 박동은 멈추어 버리고 팔에 힘도 다 빠져 더 이상 불을 끌
자신감도 이내 사라지자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성난 사자의 표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당장 나를 삼켜 버릴 것 같이 성난 악어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집에 가서 맞아 죽느니 여기서 타 오르는 불과 장열하게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산불을 끄려다 용감하게 죽은 소년이라고 신문에 보도되면 그나마 의인이 된
자식으로 기억되어 안타까워 할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