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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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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곡-술꾼의 아내


BY pjr1017 2001-06-14

새벽 한 시다.
보던 책을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못내 아쉬운 듯 시계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렇게 기다린 것을 모를텐데. 하면서 '아깝다'는 생각에 조금 더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자기로 한다. 나는 최후까지 견디다 잠이 들기 때문에 한 번 잠에 빠지면 잘 깨지 못한다. 그래서 신혼 초의 셋방 유리창이 몇 번 깨지고, 문짝도 갖은 수난을 당했다.
남편은 열쇠를 들고 다니지 않으려 한다. 퇴근할 때 아내가 문을 열어주면서 수고하셨어요, 하는 등의 인사를 듣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런 인사는 정상적으로 일찍 퇴근하는 아빠들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새벽에 금의환향하는 남편을 마중나와 주지 못한 나는 잘잘못을 가리기도 전에 미안해했다.
그 날도 나는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슷한 시간에 잠이 들어서 불러도 일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덮고 있던 이불이 훽 젖혀졌다. 깜짝 놀라 찡그리며 눈을 떴다. 일어나면서 남편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구두까지 신고 방에 들어오고...."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씨*, 왜 전화를 안 받는거야."
남편은 불분명한 말투인데도 큰소리로 말했다. 여지없이 술에 취한 목소리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두시 반이었다.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짜증이 났지만, 술 취한 남편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미안해요. 안방에서는 잘 안 들리잖아요."
우리 전화는 작은 방에서 힘없이 울린다. 나를 닮은 모양이다. 주섬주섬 일어난다. 나는 속으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썅, 다 죽여버리겠어!"
"어머, 왜 그래요?"
아직도 구두를 신은 상태로 왔다갔다 한다.
"무슨 일 있었어요?"
"핸,핸드폰을 안 주잖아--, 당신은 당신은 전화도 안 받고, 씨!"
"누가? 누가 핸드폰을 빼앗아갔어요?"
"빨리, 빨리 이만 원만 줘."
아하! 택시비구나.
허둥지둥 서랍을 열어 가계부를 들추다가 지갑을 찾아 돈을 꺼낸다. 낚아채듯 남편이 가져간다. 늦은 시간이니까 조용조용히 보내요, 하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못했다. 남편은 주먹으로 벽을 한 번 치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택시비가 없어서 기분 나쁜 말이 오갔나보다. 술 취했을 때는 '욱'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남편은 택시기사와 한바탕 할 모양이었다. 미처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남편이 기사와 하는 말이 들렸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서 여차하면 나가려고 준비했다.
택시 운전석 문을 열고 남편은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내 핸드폰 내놔!"
택시기사는 얌전하게 핸드폰을 주는 것 같았다. 늦은 밤 취객들을 태우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겠지. 차라리 택시 기사가 남편을 주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택시비 주고 핸드폰 받았으면 됐지 무슨 사설이 저렇게 길까? 나는 목을 빼고 무슨 말인지 들어보려고 했다. 삼층에서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졸였던 마음은 놓였다.
잠시 뒤에 남편은 자상하게 인사하면서 차 문을 닫아 주었다. 그리고 차를 짚고 있던 오른 손으로 차 지붕을 '탕!탕!' 치더니
"출발!!!"
하고 소리쳤다. 택시 기사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비틀거리며 한동안 혼자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렇게 오늘 새벽도 나는 뜬눈으로 맞이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