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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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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生을 다하던 날...1


BY dlsdus60 2001-06-13

부모님은 읍내에 일을 보시러 가시고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은 바로 위의
셋째형과 나 그리고 덩그렇게 누워 있는 넓은 마당.

집안에 어른들이 계시지 않으니 그 답답하기만 하던 우리의 기분도 넓은 마당
크기만큼 시원해졌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노력으로 5월 5일은 어린이들의 세상이라고 정부가 인정하고
교과서 및 달력에도 명기되어 있는데도 한번도 우리들의 세상을 경험 해 보지
못하고 어린이 날을 보낸 우리는 오늘이 바로 어린이 날인 것 같았습니다.

진눈개비가 내리는데도 형은 아버지도 없으니 축구공을 가지고 와서 마당에서
공차기하며 놀자고 하였습니다.
놀기 좋아하는 내가 싫어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마당에서 공차기하고 노는 것을 보면 흙이 파이는 것을 염려하여
동네 공터에 가서 놀라고 호통을 치실께 뻔하지만 그런 아버님은 계시지
않으니 분명 우리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신나게 놀다 보니 마당은 진눈개비에 젖고 발길질에 파인 흙은 밭을 갈아
놓은 듯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옷은 젖어 몸은 춥고 손발도 시러워서 더 이상 마당에서 노는건
무리였습니다.
형이 먼저 그럼 안방에서 놀자고 하더군요. 나도 물론 좋다고 했죠.
둘이 합의가 이루어진 이상 우리는 방에서 신나게 공을 주고 받고 던지며
놀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던진 공을 형이 받지 못하자 벽에 걸린 대형 거울이 대신 받다가 온몸은
갈기갈기 조각이 나버리고 거울은 우리들의 죽음을 잉태하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 볼려고 갖은 노력과 함께 조각난 거울의 밥풀로 붙여 보기도 하고
침도 발라 붙여 보았습니다.
스카치 테이프는 물론 까만 테이프도 귀하던 시절이였고 설사 있더라도 거울은
흉터가 나서 아버지가 보면 금방 발각될거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이유로 밥풀과 침을 이용하려 했슴을 이해하길 바라며 머리 나쁜
애들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거울은 누더기 같은 생명으로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호흡을 거부
하였습니다.
차라리 돌담 사이에 끼어 주거나 사금파리들과 남은 생을 살도록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거울이 그렇게 애원할 때마다 우리의 억장은 여러번 무너져 내렸습니다.

집에 돌아 와 거울의 참혹한 주검을 보신 아버님의 화난 얼굴이 떠 올랐습니다.
우리는 심장이 내려 앉아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봉건적 사회주의자로서 강한 카리스마로 가정을 이끌고 있었으며
자식들의 교육은 타의 모범(?)이 될 정도로 엄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들의 언행에 대한 상과 벌을 분명히 구분하여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명확히 지불하는 분이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상은 별로 받아 보지 못하고 일주일이 멀다고 벌만 받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아버지께서 정해둔 상과 벌의 견해차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사실 그날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거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아닙니다.
형의 실수가 안타까워 거울 스스로가 몸을 던져 공을 받아 내려다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것 뿐입니다.
어차피 언제 죽어도 한번 죽을 목숨이라면 얼굴에 흉터 자국나서 구박 받으며
구차하게 생을 유지해 가는 것보다 그날의 의로운 죽음이 우리 집안 역사에
공신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런 거울의 의로운 행동을 우리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엄숙하게 명복을
빌어 주어야 할 의무만 있을 뿐입니다.

방안에서 삶을 체념하고 앉아 공부를 하는 척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아니??, 마당에 왠 소들이 이렇게 뛰어 다녔냐?"

그렇지요. 분명 소의 발자욱이였어요.
암내난 소가 길길이 뛰고 난리가 났지요. 하지만 하늘은 알고 있지요.
소의 발자욱이 분명하다는 것을...

"종근아!, 종필아!"

우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마루로 뛰어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1초도 안 걸린 시간이였습니다.
아마도 그때는 밴존슨보다 더 빨랐을 겁니다.
마당은 참혹하게 얼굴이 일그러져 있더군요. 아까 보지 못했던 또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땅은 질퍽거리고 눈과 물은 여기저기 패인 구멍마다 샘처럼 고여 있었습니다.
아! 우찌 이런 일이?!...
정말 황소가 마당을 뛰어 다닌 것과 흡사하였습니다.
하지만 황소 발자욱 대신에 우리들의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 신발 자국은 배를 하늘로 향하여 고통스러워 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고 힐끗 우리를 쳐다 보는
모습은 우리를 전율케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한참을 말없이 마당을 둘러 보시고 패인 흙들을 발로 꾹꾹 누르고
계셨습니다.
마치 목까지 차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고 계신 듯...
마당의 모습을 보고 저 정도니 깨진 거울을 보시면 어떤 표정이 될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며 금새 불어 닥칠 것만 같은 폭풍우에 사지를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뭐하고 들 있어? 삽가지고 와서 마당 고르지 않고!..."

총알이 별거 아니였어요. 군대 생활 선착순 집합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뛰지는
않았습니다.
대충 요령도 피우고 숨도 고르며 천천히 뛰어 중간 정도에 서야 또 다른 벌칙을
받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나는 군대라면 아버지의 오랜 군생활 얘기 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루를 내려와 삽을 들고 진눈개비가 내리는 마당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똑바로 잘하라고 하시며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고 계셨습니다.
비가 내려 젖은 물건이 없나 여기 저기 살피는 것 같았습니다.

"너희들 다시는 마당에서 공차지 말고 놀아라!"

그래도 오늘 아버지의 기분이 평소보다는 좋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너그럽게 우리를 용서하실 분이 아니였거든요.
마당을 고르고 있는데 깨진 거울의 파편들을 생각하니 비수가 되어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한숨을 내쉬자 공에 약한 거울이 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거울의 죽음만 아니였다면 오늘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이였습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이나 안방에 들어 가시질 않았습니다.
초조하게 흐르는 시간은 고문 그 자체였습니다.
어차피 맞을 매는 빨리 맞아 버려야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아버지는 그런 우리의
속내를 읽고 계신 듯 하였습니다.
마당을 대충 고르고 허리를 펴고 있으니 어머님도 집에 돌아 오셨습니다.
우리는 어머님을 보고 구원군을 얻은 기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