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동안 휴가를 나와 쉬었다가 돌아간 아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휴가동안 쓰던 우리집 열쇠를 현관 신장위에
놓아둔것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앞으로 290일
남은 아들의 군생활의 숫자이다
처음에는 입대하여 300 이 넘는 큰발로 맞는 운동화가 없어
훈련소에서 뛰고 굴르는데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그런데도 빨리 뛰지 못하면 갖은 기합과 욕을 봤겠지
한여름 땡볕에 하필 7 월 1일 입대하여 10일후에 찍은
사진이라고 보내왔는데 경롓을 부치고 찍은 아들의 팔이 새까맣게
그을려 말할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왔었다
특기병 교육을 받으려 들어간 곳에서 그냥 조교로 떨어져
다른 아이들은 100일 휴가를 다 나왔는데
아들은 다섯달 동안 휴가도 못나왔었다
그런데 오랫만에 휴가를 나온 아들은 눈이 ??하니
들어가 새까맣고 먹지도 못한놈처럼 말라가지고 왔었다
훈련을 들어가기전에 나는 사슴목장에 가서
피가 줄줄흐르는 녹용을 지어다가 보약을 한재 지어 먹였었는데
그 보약발은 온데간데 없이 아들은 빼싹 말라있었다
엄마는 안타까워 죽는줄 알았다
그런데 다들 입대히기전에는 제 맘대로 하다가
갑자기 모아놓고 뺑뺑이치는 훈련을 받느라
애를 못삭혀 처음에는 그렇게 마른다고 위안을 준다
그러나 이병인지 하여간 그 알수없는 계급이 바뀌어 가도
아들은 살이 오를지를 몰랐다
드디어상병이 되니 다시 살이오르고 사람이 되어가는것 같았다
운동화도 발이 어떻게큰지 부대에서는 찾아볼수가 없고
워카도 없어서 어떻게 어떻게 겨우 받았다는것이다
두번째 휴가때는 군산을 다 뒤져서 300짜리 운동화를 발견해서 사 주었다
오늘은 그 운동화도 다 떨어질때가 되었는데
하나 더 장만해야 할것같애 알아보니 더는 찾을수가 없었다
아들은 앞으로 눈이 오면 물이 들어오는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살아야 한다니 엄마의 마음이 몹시 아파온다
그렇다고 서울이나 다른곳에 가볼수도 없고
미군부대가 있는 군산이라 부대에 알아보았는데
거기도 없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닐때 학교에서 실래화를 신엇는데
아들발에 맞는것이 없어서 담임선생님은 특별히 아들에게만
스리퍼를
허락을 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복도에서나 다른곳에서 다른 선생님을만나면
건방지게 학생이 스리퍼를 신었다고 늘 혼지검을 난
모양이었다
그런소리를 아들에게 들은 나는 화가나서
군산 시내를 다 뒤져 큰 실래화를 찾았으나 찾을길이
없어 신발가게에서 지쳐서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교장선생님하고 단판을 지을 심산이었다
나는 죽어도 찾을 자신이 없으니 교장선생님이 찾아서 신기라고
다른 선생님들이 아들을 혼내니 책임지라고..
그 다음날 부터 학교 실래화는 스리퍼로 변하고 말았다
하여간 운동화를 사려해도 좀 싼것은 살수도 없었고
리복에서 나오는 농구화를 10만원씩 주고 사 신겼다
그런데 역시나 군에서도 운동화가 없어
아들은 작은 운동화로 그 고된 훈련을 견디어 낸것 같았다
다행히 워카는 신었는데 하나의 무개가 고구마 일관은 족히 되는 무개였다
오늘 보니 워카의 뒷창이 달아져 널름거린다
아침부터 아빠는 앉아서 귀대할 아들의 워카를 번질번질
닦다가 달아빠진 뒷창을 수선집에서 고쳐왔다
그 사이즈가 없어서 재료상에 가서 부지런히
찾아와서 고쳐보냈다
떨어지면 다시 조달이야 해주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늘어지고 발이 익숙해진 워카가 더 편할것 같애
수선을 해준것이다
아들이 벗어놓은 헌옷과 열쇠를 보니
더 잘 먹여 보내지 못한것이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