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468

버스정류장 로맨스 (上)


BY 프리즘 2001-05-18


난, 목소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이러저러한 떨림이 얼마나 사람자체를 표현해줄 수 있겠느냐만,

끌리는건 어쩔수 없다.

특이한건 아니고, 그저 듣기편하고 듣는 사람이 슬며시 미소를 띨만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참 좋다.

예전에 내가 홀딱 넘어간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오래전 CF에서 외국사람인듯한 발음으로 '애니콜 폴더..음...'

하던 바로그거.

뒷부분의 '음..'이란 여운이 남을때면 대책없이 뿅가버렸었다.

그렇다고해서 지금 같이 사는 남자의 목소리가 죽이느냐....

허걱...절대 네버에버 아니다.

반론적으로 이 남자 목소리가 영 아니라서 다른넘의 부드런 목소리가

맘에 확 와닿나부다. ^0^

고딩시절, 목소리때문에 허거덕~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







학창시절 으례 그랬던 것처럼 버스정류장에서의 로맨스....랄 것도

없지만 여하튼 그런 비스무리한게 있었다.

그 남학생은 대구에서 조금은 알아주는 고교에 다니고 있었고,

아침등교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언제나 마주치는 훤칠한 남자였다.

언제나 파란색 마스크를 착용한, 가슴떨리게 잘생긴 남학생이었지.

같은 버스정류장을 애용하는걸 보믄 우리집 근처에 산다는 정도로

추축했지만 뭐하는 집 자제분인지...성질머리는 어떤지...더 중요한

애인은 있는지도 몰랐다.

가끔씩 버스안에서 친구들이랑 얘기하는걸 들어보면 목소리가 얼마나

죽여주는지 애간장이 다 녹을 정도였다.

약간 저음의, 울리는 듯한, 그러면서도 청명한....말되나?

어쨋든 목소리하나만은 성우나 디제이들 뺨을 왕복으로 수십번쯤

날릴만큼 멋있었다.






어느날~! 토요일오후였지 싶다. 하교길에 그 남학생과 조우(?)하게된

나는 애써 이쁜척, 연약한 척, 얌전한 척, 있는대로 잘난척을 하며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그 목소리 멋진 남학생이 날 불러

세우는거였다.

'으미...어쩌쓰까나...이일을 우짜믄 조으까나...'

속으론 콩이 튀었지만 안그런척 팅팅거리며 데이트신청을 받고, 그

남학생과 근처 커피숍이란델 들어갔다.

아~! 허우대만큼이나 죽여주는 목소리와 자신감과 끝내주는 매너를

보라~!!!





자리잡고 앉아 오다가다 날 봤다는 얘기, 하루라도 못보는 날에는

공부가 안되더란 얘기, 등교를 안하는 주말은 너무나 힘들었다는...

지금 생각하면 거저줘도 말아먹을 얘기를 들으며 이게 꿈이냐 생시냐

볼꼬집어 볼 생각도 못하고 있던 난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근데...감기가 오래가시네요...언제나 마스크를 끼고 다니드라구요"

"아? 예...마스크가 맘에 걸리시나봐요...그럼 벗죠"

......................?????.............~~!!!!!!!!!!

니미럴...개코딱지....말미잘....가이스키...시벨리우스...

그 인간은....

킨타쿤테? 쿤타킨테? 열받는데 뒤집히면 어떠랴 똑바르믄 어떠랴

하여튼...그 사람보다도 나을 것 없는...완전히 흑인의 입술을 한,

거기다가 앞이빨까지도 사이가 나빠 서로 다른쪽을 향해서 보정기를

낀.....

완전히..

개떡이었던 것이다!!






1분후, 집으로 뛰어오는 그 골목길은 어찌그리 긴지...

왜 내 두눈에선 까닭모를 눈물이 흐르는지...

다시는 86번 버스뿐만 아니라 그 버스정류장엔 발길도 하지 않으리란

다짐은 왜그리 견고한지...

싸잡아 XX고교 교장이하의 모든 인간들, 더 나아가 왜 XX찬 모든

남자들은 전부 다 사기꾼으로 보이는지..

조금 더 흥분을 가라앉혀 생각해보면, 마스크공장과 판매책(?)인

약사들까지 죄다 싸그리 구덩이에 처넣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날 하루 온종일과 다음날 오전내내 난 닭똥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었다는... 전설이 있다...







(목소리뿐아니라 생김새로 사람을 판단한다는건 참 위험한 짓이지만
그땐 어렸기때문이었다고 변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