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가 연속적으로 플레이 되는 새벽 ...
내가 33층 건물 꼭대기에 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감히 내려다 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높이에서 극심한 현기증에 시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싸늘해진 심장 박동수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머리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는 내가 가엾어 차라리 눈을 감아버린다.
그 와중에도...
파반느의 흐름을 타는 의식은 어울리지 않게 스타카토음으로 끊어지고있다.
누군가 내 의식속에서 내 허리를 안고 내 손을 잡고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었다면
아마 여러번 발을 밟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끔직하게 무섭다. 숨가쁘게 낮은 숨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세상이 .... 잠시 나를 공포속에 몰아 넣는다.
소름돋게 차가운 쇠붙이로 나를 긁어대며 그렇게 새벽을 보냈다.
오후로 이어지는 ... 뭉툭한 공간안에 있다.
우리는 공간이라하면 반사적으로 네모를 떠올린다.
내 공간도 다르지 않을거라 인정하면서도 각을 맞추어 '네모'로 규정지으려는 꼭지점에 심한 반감이 들었다.
온갖 욕망들로,아픔과 상처로,미련과 후회로,거짓과 진실, 서럽도록 가증스러운 삶의 계획들로 빈틈없이 네모를 이루고 있는 공간 ...
그게 내 모습 그대로다.
원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 불가항력(不可抗力)임을 알고있다.
문득, 내 공간안의 모든 내용을 지워내고 싶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부분부분 마모시킬 수 있는것도 아니며,오랜 시간 공을 들여 다듬어내고 치유한다고 해도 흉터가 남지 말란법은 없을것이다.
불필요한 자료들을 지워낼 때 누르는 Delete 키가 내 공간안에서도 존재하면 좋을듯 싶다.
DELETE ... !
당신의 공간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삭제하시겠습니까 ...?
나는 주저없이 , 일말의 망설임없이 ... YES ! 를 누를것이다.
어디선가 ...
메니큐어를 지울때 사용하는 아세톤 냄새가 독하게 풍겨오는것만 같다.
11월 그 어느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