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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자녀 1인당 출산 양육비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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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72

갖바치


BY my꽃뜨락 2001-04-29



우리 남편은 전생에 갖바치였는 것이 틀림없다.
가방이든, 신발이든 가죽제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가방도 손가방에서부터 여행용 가방까지
종류별로, 크기별로 하다못해 디자인이 유별나
도 사지못해 안달을 한다.


같이 시내를 나가도 가방 가게 앞에서 눈요기라
도 해야 할 정도이니 증세가 보통 심한 것이 아
니다. 그래서 나도 가방 더미만 보면 신경이 날
카로워지고 저절로 짜증이 난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그것도 악세사리 콜렉션을
할만큼 넉넉치도 못한 살림에 그런 헛것에 정신
을 빼는 남편이 꼴보기 싫다 못해 한 대 쥐어박
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바꿔 바꿔는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가방도 검정색이라도 사시사철 꿋꿋하
게 들고 다닌다. 나중에는 양 모서리가 닳고 달
아 하얀 쇠심줄이 허옇게 드러나도록 마르고 닳
도록 메고 다녀 옆에 사람들의 잔소리를 듣거나
성질 급한 친구가 새 것을 주며 내 것을 빼앗아
가야만 바꿀 정도이니...


구두 또한 마찬가지로 밑창이 덜렁거리거나 앞
부리가 하얗게 헤어져여만 할 수 없이 바꿔신
는 편이다. 그런 괴벽은 내가 유달리 알뜰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이것 저것 바꿔 다니
는 것이 성가신 이유 때문이다. 가방은 바꿀 때
마다 속살림을 몽땅 옮겨야 하는 것이 귀찮고,
신발은 신던 것이 편하기 때문이니, 남의 이목
과 상관없이 그 버릇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부부가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취미에서부터 식
성까지, 따져보면 맞는 것이 별반 없는데 그래도
싸우지 않고 잘 사는 것을 보면 신통하기 짝이 없
다. 남편은 더운 것을 못참는데 나는 온 집안이 뜨
끈뜨끈해야 좋기 때문에 온도도 안맞지, 밀가루 음
식은 질색인 남편에 비해 나는 밀가루로 만든 거라
면 칼국수, 수제비, 라면, 만두, 빈대떡까지 사족
을 못쓴다.


시간이 없어 그 좋아하는 쇼핑을 할 수 없었던 딸
네미가 지난 일요일에 마음 먹고 시내로 뛰쳐 나갔
다. 그동안 모아놓은 용돈이 솔찮을테니 저것이 또
무엇을 사갖고 들어올까? 내심 걱정이 됐지만 그렇
다고 드러내놓고 잔소리는 할 수 없고, 두고 보기로
했다.


한 너댓시간은 족히 헤메고 들어온 딸네미의 양손에
쇼핑백이 줄줄이 걸려 있다. 뭐 사왔니? 했더니 참말
로 억장이 막혀! 동전 지갑, 장지갑 그리고 앙증맞은
??하나...가방종류가 무려 세가지였고, 앞부리가 나
룻배마냥 훽 휘어진 운동화도 한 켤레 들어 있었다.


씨도둑은 못한다고 지 아빠를 닮아도 이렇게 빼박았
을까?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남편
이 주는 스트레스도 부족해 딸네미까지 곱배기로 가중
시키니 신경질 낼 일만 남았구나. 그래도 남편은 마누
라 눈치라도 보니 만만하게 짜증을 내지만 저 놈의 새
끼는 아무리 내 속으로 낳았어도 상전이 따로 없으니
마음 놓고 닥달도 못한다. 이래저래 자식들 머리 클수
록 골치 아픈 일만 많아지는 것같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