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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재혼하셨다.(1)


BY mysymba 2001-04-20

엄마 돌아가신지 6개월만에 아버지는 재혼하셨다.
배신감을 느끼냐고?
아니..
극심한 학벌차이에 이쁜것도 없는 울엄말
아버진 평생을 다정하셨고
엄마의 바가지에도 늘 대범하셨고
부부모임에서 엄마의 손을 에스코트해서 내리시는 분은 우리아버지 한분이셨다고 늘 엄만 자랑이셨더랬다.
금실좋은 부부가 오히려 사별하면 더 일찍 재혼하신단 얘기가 맞는것 같다.
차라리 혼자 되신 아버지에 대해 한시름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생각이 드는 나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그것도 찐하게.

엄마는 중학교도 사실은 다니다 말았다고 어느날 고백하듯이 말씀하셨다.
그것도 아들 일곱에 딸하나 귀하디 귀한 외동딸인지라 그 동네에서는 아니 근방의 동네까지 다 합쳐서 중학교 구경한 사람은 엄마 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경북고등학교에 고려대학교 대학원까지 나오셨다.
이화여대등 신여성과 연애도 무지하셨더랬다.

어느날 출타해서 돌아오신 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손주며느리감을 정하고 오셨다고 통고를 하셨다.
그렇게 두분은 얼굴 한번 본적 없이 증조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결정에 의해서 결혼을 하셨다.

그 날 이후
엄마의 시집살이는 시작되었다.
시집가던날
엄마의 동네에서는 난리가 났다.
외동딸이라 귀하게 자란 양반집 딸이란것만 빼고
학벌이고 집안이고 재산이고 외모고 다 월등히 나은 고려대생 한테
시집을 간다고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시집잘 가는 색시 구경한다고
온 동네가 떠들썩했더란다.

시집을 오니
식구가 몇십명은 좋이 되는듯한데 도대체가 몇명인지 알수가 없더랜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첩증조할머니, 일찍 과부가 되어버린 할머니, 아버지, 시집안간 고모 그리고
작은할아버지네 여덟식구도 분가를 시키지 않은 상황에 시집안간 막내왕고모까지 계시더란다.
집에 일하는 일꾼 대여섯명과 식모한사람까지....
대충을 짚어봐도 스물은 넘는 대식구속에서
제일 발빠르게 움직여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엄마.

근동에서 제일가는 양반집이자 유지집안이라
새며느리 빨래터에 빨래하러 내보내는 것도
손없는 날 날짜잡아서 허락받아 나갔더랜다.
아들 귀한집에 시집와
첫 아들 이후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내리 딸넷을 낳으신 엄만
오빠 기를땐 기저귀 빨러 나간단 말도 목에 힘주고 할 수 있었는데
딸들 키울땐 오줌 기저귀는 두번 세번 그대로 말려쓰는건 기본이고
심지어 똥기저귀를 뒤집어 쓸 지경이 되어도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빨래터에 나갈 수가 없어서
호롱불 치켜들고 모두들 자는 시각에
몰래빠져나가서 그 큰 빨래통을 이고 한달음에 달려나가
셀수 없는 기저귀 빨래들을 하고 돌아와
방안 가로질러 빨랫줄 매달아 가득히
너울너울 기저귀를 널어놓고 나면
그렇게 부자가 된듯 날아갈듯 기뻤다고 하셨더랬다.

엄마는
내가 첫 아들을 낳고 시어머니께서 미리 해주신 천기저귀를 보고
무척이나 언짢아하셨다.
요즘 세상에 누가 천기저귀 쓰냐고
옛날에야 없어서 그러고 살았지
종이기저귀 좋게 나오는데 뭐하러 일부러 천기저귀 쓰며
잠도 모자라는데 삶아빨고 털어늘고 일일이 개는 시간이 반나절은 잡아먹을텐데 애엄마가 잘먹고 잘 자야 젖도 잘 나오지 궁시렁 궁시렁 하시면서 시어머니 원망 하시며
천기저귀는 그대로 두고 절대 사용 못하게 하셨더랬다.
엄마도 올캐에게 천기저귀 쓰란 말 한번도 한적없으시다며...

웃음이 난다.
그 얼마후 시댁내려가서 종이 기저귀 쓰는 나를 보신 시어머니
"우리때는 아무리 바빠서 밥을 못먹어도 애들 기저귀는 일일이 삶아 빨아 썼다. 공기도 안통하게 그런거 뭐하러 쓰노? 애한테 좋으면 애 엄마야 쪼매 힘들어도 이거야 얼마든지 한다."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역시
친정어머니는 친정어머니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달 보름전 나에게도 딸이 생겼다.
나는 내 딸을 안고 어를때 이렇게 말하며 어른다.
"얼러럴러..그래 내가 니 친정엄마다. 친정엄마..."하면서.

시집간 딸에겐 그렇게 생각만 해도 눈물나는 대상인
나의 친정엄마는 한평생 그렇게 그렇게만 사시다가
눈앞이 고지인데 오남매 짝지워주고
이제 고지가 눈앞인데
암 선고를 받으셨더랬다.

그것도 내 결혼 앞두고 양가 부모 상견례하기로 되어있던날
황달 증상으로 응급실로 가셨다가 그 몇주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