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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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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18>-몸부림스 동창회


BY eheng 2001-04-13


숙경아.
시골서 잘 지내나 보다. 공기도 좋지만 자는 사람 절대로 안 깨우는 집안의 법도. 감명 받았다. 너 시집 한번 잘 갔다. 가풍이 그리도 고상하구나. 원래 뼈대 있는 집안은 그렇다. 참말로 부럽다. 우리 시집은 잠을 안 재운다. 날밤 새며 일한다.
나 동창회 한다고 신경 많이 썼다. 인터넷에 동아리 만들면 뭐 하니? off line작업이 훨씬 더 많다. 일일이 전화해서 오라고 하지, 시간 바뀌었다고 또 전화하지...
어디 그것 뿐이니?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칠보단장하느라 바빴다. 안 되는 드라이 하느라 머리 태워 먹고, 신부화장 하느라 신부전증 환자처럼 탱탱 부었다. 눈에는 요즘 유행하는 파란색 아이쉐도 바르고 입술엔 번쩍이는 립그로스 잔뜩 바르고 나오니 작은 애가 그러더라.
"엄마, 혼자서 몰래 삼겹살 먹었지?"
그러니까 큰 애가
"아니야, 참기름 바른 거야."
앞 머리 살짝 내려 깻잎머리 만들다가 이마가 간지러워 벅벅 긁고, 방바닥에 신문지 깔고 낮은 구두 높은 구두 신어 보다가 넘어지고, 스타킹도 커피색으로 검정색으로 신어 보다가 다리 꼬여 자빠지고, 옷장 다 뒤져서 없는 옷 코디해서 입느라 땀 억수로 났다.
근데, 애자 눈은 나보다 더 파랗고 원주 입술은 쥐 잡았더라. 기가 팍팍 죽더라.
근데! 그런데!
넌 또 왜 내 기를 꺽니? 뭐? 밍크?
이제 몸부림스 동창회 겨울에 안 한다. 여름에만 연달아 내리 이틀 동창회 한다. 뜨거운 여름날 고수부지 땡볕 수영장에서 한다. 경옥이... 그러면 엄청 불리할껄... 원주, 은주, 영선이, 옥자... 다 불리할꺼다. 애자야, 경은아, 그때 우리 활개치자. 이참에 비키니 한 벌 마련할꺼나. 숙경아, 넌 가하냐?
비겁하게 가리지 말고 벗고 만나자. 오케이?

경은아.
너 동창회 잘 안 왔다. 애들이 갈수록 왜 더 그러니. 진짜 양심도 없다. 약속시간이 1시인데 3시에 오더라. 벤쳐 사장된 훈이씨가 쏜대서 오랜만에 목구녕 때 벗기는 줄 알고 아침도 굶고 갔는데... 배고파서 죽는 줄 알았다. 우린 역시 집에서 퍼질러 모이는 스타일인가 보다. 집에서 짜장면, 탕수육 배달시킬 팔잔가 보다.
근사한 레스토랑. 그거 아주 안 좋더라. 두 시간 기다리면서 보리차 여섯 잔 마시고, 화장실 두 번 다녀왔다. 직원은 여덟번 들어와서 상냥하게 웃으면서 주문을 요구하는데 아주 어색해 혼났다. 시간이 너무 지나 세트 메뉴도 못 먹고... 경옥이가 <가양>이라고 해서 가양인줄 알았는데 <가향>이더라. 한문으로<嘉香>이라고 써 있어서 뭔지 몰랐단다. 자기 아들 돌잔치도 여기서 했다면서.
대전에서 올라온 원주는 가향에 들어와서 몸부림스 동창회모임 물었더니 그런 모임 없다고 해서 한시간 동안 주위를 헤메다가 다시 왔다. 경옥이 어디 가면 몸무림스학교 나왔다고 안하고 서울대라고 한다더라. 그래서 지방 사는 주원이 엄청 헤맸다.
암튼 경은아, 안 오길 잘했으니 너무 배 아파 말아라.

애자야.
넌 어쩜 내 기를 그리 죽이냐. 학교 다닐 때도 쭉쭉빵빵으로 내 기를 죽이더니... 모처럼 눈에 힘주고 나갔더니 너는 또 왜 그러니. 파랗게 칠한 것도 모자라 펄까지 넣었더구나. 내 눈탱이도 퍼렇지만 너는 아주 빛이 나더구나. 그래도 속눈썹은 내가 더 많이 올라갔다. 나도 너보다 뭐 하난 잘난 게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너 왜 그렇게 빨리 가서 나를 외롭게 하냐? 맨날 보는 영감탱이가 그리 좋더냐? 이젠 영감탱이 눈치 볼 나이는 지나지 않았니. 집에 올 때 두 시간 전철에서 아주 심심해서 혼났다. 할 수 없이 옆에 앉은 할머니랑 수다 떨면서 왔다.
애자 오라버니! 애자 좀 내버려 두세요. 밖으로 내둘리세요. 애자 내돌려도 아무도 안 쳐다봅니다. 안 줏어 갑니다. 이젠 쭈그렁 밤탱이입니다.
애자야, 다음엔 나랑 아주 밤새며 놀자.

연수야.
네 옆에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너 얼굴 왜 그리 작냐? 옆에 앉은 은주 얼굴 무지 커 뵈더라. 걔 멋모르고 네 옆에 앉았다가 큰 코 다쳤다. 한 손으로도 다 가려지는 그 얼굴 어디 무서워서 옆에 가겠니?
그리고, 이렇게 나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깨끗이 포기해라. 학원 시간 못 맞춰 갔다고 침까지 튕기며 전화로 그 야단을 치니. 집에 가면 니들 죽었다! 하면서.
그리고 그 핸드폰 내꺼다. 너 참 오래 쓰더라. 내 핸드폰 받기만 하는 거다. 기본료 12000원 하는 거라 오래 쓰면 안된다.

은주야.
졸업 후 처음 봤지? 난 네가 이민간 줄 알았다. 바로 옆 여의도 살면서 어쩜 그렇게 은둔생활을 하냐? 니가 뭐 김정일이냐?
그리고 넌 뭘 먹구 그리 젊냐? 왜 너만 안 늙는 거냐? 비결이 뭐냐? 주식해서 반토막 나서 위 내시경까지 했다며 피부는 왜 그리 빛난다냐? 아주 수상스럽다.
그리구 니 손에서 빛나던 그 큰 반지, 그거 호신용 무기냐? 그걸로 한대 맞으면 그대로 가겠더라. 그거 한냥도 넘어 보이더라. 그리고 다음부턴 아무리 바빠도 양말은 꼭 신고 와라. 맨 발로 와서 춥다고 엄살 떨며 신발 뽐내지 말고. 그 신발 정말 이쁘더라.
가까우니 일산에 꼭 놀러 와라.

원주야.
힘들었지? 대전에서부터 낑낑거리고 내려와 친정에 아이들 맡기고 찾아왔는데 가향까지 와서 가양이 아니라고 그냥 갔다니...
너 때문에 점심에 먹은 해삼이 아직도 안 내려갔다. 너 오기 전에 맛있는 거 다 먹어서 미안타. 하지만 너무 배고파서 그땐 우정따윈 생각도 안 났다. 하지만 네 신수를 보니 안 먹어도 되겠더라.
넌 어쩜 그리 수더분해졌니? 예전의 그 공주마마 다 어디로 갔니? 주막집 주모 같아서리 참 친근하더라. 정이 막 가더라.
아이들 키우는 거 하고... 나랑 같은 점이 많아서 기쁘다. 니 아들도 만만치 않지만 내 딸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답답이다. 둘이 만나게 해줄까?
그리고 신상품50% 해주는 단골 의상실 전화번호 올려라. 나도 한 벌 해 입자. 경옥이만 해 입는 꼴 난 못 본다.

영선아.
넌 너무 밉지만 용서한다. 전날 충주에서 대전으로 이사하고 도시가스 설치하고 오느라 늦은 걸 뭐라 욕하겠니? 하지만! 하루쯤 브루스타에 밥 해 먹으면 어디가 덧나니? 끝날 때 쯤 나타나서 왜 할렐루야는 외치며 들어오니? 욕도 못 하게...
지방에 살아 옷 없다고 엄살을 떨더니 쭉 빼고 왔더라. 우라까지 넣은 바바리 코트로.
그리고 지금 니 머리 내츄럴하다. 알 빠진 리본 핀 옆에다 붙이지 말아라. 살짝 간 사람 같다. 그냥 내츄럴하게 풀어 헤치고 다녀라. 가뜩이나 키가 커서 눈에 잘 띄는데...
넌 갈수록 키가 왜 더 크니? 아님, 우리가 쫄아드는 거니? 잘못하다간 우리가 널 숭배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그 얘기, 10년 째 들어도 재밌다. 다음엔 레파토리 좀 바꿔라. 자꾸 들으니 재밌긴 해도 민망하다.
2차 같이 못 가서 괴로웠다. 이렇게 헤어질 순 없지만... 우리 언제 같이 여행가서 날밤 새고 놀자.

경옥아.
넌 어쩜 좋냐? 오늘 날씨가 안 추워서. 밍크 못 입고 나와 한이 ?怜渼? 하지만 올 겨울에 만날 땐 입고 나와라. 우리도 밍크 좀 만져보자.
니 머리 언제 그리 길게 길렀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 따라 하지 마라. 왜 머리 까맣게 물들이니? 까만 생머리는 내 트레드 마크다.
인어공주 시리즈는 구두로 다 전달이 되었으니 빨리 날짜 잡아서 해라. 너 갈 때 꼭 은주, 원주, 영선이 꼭 델꼬 가라. 걔네들이 사실 더 급하다. 나바론의 건포도들이다. 그리고, 몇 명 덜 와서 돈 굳었지? 일산에 오면 마저 쏴라. 오늘 노래방에 못 가서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 처지에 외박은 할 수 없어서 먼저 갔으니 언제 날 잡아 놀자.
그리고, 너 라이브 무대는 절대로 안 된다. 넌 나이트 체질이다. 괜히 엄한데 기웃거리며 우물 파지 말고 나이트용으로 한 우물 파라. 열심히 해라.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단다. 오늘 점심 진짜 훌륭했다. 훈이씨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길...

옥자야.
네가 안 와서 우리 몸부림스 망했다. 어둠의 세력이 없으니 우리의 밝음, 빛남, 화려함이 튀질 않더구나. 너 어디에 있니? 휴가 받았다고 진짜 여행 갔니? 도대체 누구랑? 다음엔 꼭 와라. 네가 없으니 남은 밥 먹는 애들도 없다.

현정아, 미경아, 혜경아, 정미야, 동현아, 은경아, 현숙아, 지연아,...
니들 이제 신수가 좋구나. 아주 잘 사는구나. 맛있는 거 사준대도 안 나오고. 경옥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수표 갖고 나왔는데 너무 안 썼다고 한숨이다. 무슨 핑계로 안 왔는 지 모르지만 너희들 그러면 안 된다. 아이들, 남편, 집안 일... 그런 핑계 이젠 안 통한다. 영선이 봐라. 어제 이사하고도 오잖니. 본 받자.
다음 정기 동창회는 여름에 연지네서 한다. 연지가 집에서 걸지게 한 방 쏜단다. 그렇게 알고 비정기적인 모임 있을 때도 속히속히 나와라.

너희들 몸부림스!
어쩜 그렇게 똑같냐?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나더라. 제발 좀 변해라.
그리고.... 나, 니들 진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