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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씻는 것과 저녁에 씻는 것 어떤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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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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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일과


BY 푸른바다 2001-03-20



여자의 하루............

자명종 소리가 머리맡으로 요란스럽다.
누구는 깜짝 놀라 깨어난다.
창 밖은 아직 어제의 어둠이 그대로 덮여 있다.


결혼한 여자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어야 했다.
곁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들어 있는
남편에게도 자명종 소리는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그 소리는 오직 여자만을 위해 만들진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 여자는 부스스 잠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이제부터 전쟁을 능가하는 아침을 시작해야 한다.
아직 교양이 남겨져 있는 여자라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치장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꼭두 새벽에 남의 매무새를
눈여겨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느님도 잠들어 있을 테니까.

먼저 현관으로 나가 신문부터 챙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슨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굳이 봐 두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백화점세일 광고나 TV 프로그램정도에 불과할 뿐,
그 밖의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럼에도 신문부터 챙겨야 했던 것은
남편이 언제 신문을 찾을지 모르고,
곧바로 대령할 수 없다면 아침부터
어떤 질책을 받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 팔을 걷어 부치고 설거지부터 시작한다.
물론 가족들의 엊저녁 식사 설거지가 아니다.
그것은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해치워야 했다.


남편의 귀가는 어제도 늦었다.
물론 직장에서의 업무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은 언제나 그것도 업무라고는 하지만
여자로서는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퇴근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 먹는 일이 어찌 업무란 말인가.
업무는 회사에서 하는 것이지 술집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악착같이 그것도 업무라고 한다.
다 처자식을 벌어 먹이기 위해서 술을 먹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단지 술 취해 늦게 귀가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집안에까지 술친구를 불러들인다.
다른 식구들은 잠들어 버린지 이미 오래 전이었음에도,
남자에게 문제될 일은 전혀 아니었다.
집안의 주인은 언제나 남자, 그 혼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집 주인이 늦게 들어오든, 술이 취해 있든, 다시 한번 술자리를 벌리든,
그 모두는 주인으로서 언제나 주장할 수 있는 자기 권리일 뿐이다.


그 설거지를 이제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2.

오늘 아침 찌갯거리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아이들 도시락 반찬은 또 무엇으로 할 것인가.
엊저녁 막내 아들놈의 도시락 반찬 투정이 생각난다.
왜 맨날 똑같은 반찬이냐는 거다.
그렇다고 도시락 반찬을 매일 바꾸어 넣을 수 있을 만큼
뭐 특별한 것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잖는가.
하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산뜻한 것으로 준비해 주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또 으름장을 놓을지 어찌 아는가.
냉장고 안을 이 잡듯이 뒤져보지만 뭐 별다른 것은 없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백화점이라도 들려
도시락 반찬거리를 단단히 장만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아들이 학교에 간 이후의 일이다.
오늘 도시락 반찬을 위해서는 동네의 슈퍼에라도
날듯 다녀오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찌개 보글거리고 있다.
이제 아이들을 깨워야 할 시간이다.
아이는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방안은 여전히 조용하다.
찌개의 간을 맞추다 말고 다시 아이들 방으로 뛰어간다.
다시 흔들어 깨워 놓는다.
아예 이불을 걷어 버리고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아이는 마치 수숫단 쓰러지듯이 다시 쓰러져 버린다.
아, 그것은 차라리 전쟁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다.
딱 5분만, 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기다려 보지만,
언제나 그럴 뿐이다.

아이가 방에서 뛰쳐나온다.
왜 깨우지 않았냐는 거다.
남편이 방에서 뛰쳐나온다.
왜 깨우지 않았냐는 거다.
모두가 짜증을 낸다.
여자는 억울하다.
하지만 그것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억울하다는 의식마저도 무감각해져 버리고 말았다.
남편의 해장을 위해서 정성스레 끓여 놓은 찌개도,
아이들 좋아하게 울긋불긋 꾸며 놓은 반찬도,
남편이건 아이들이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종종걸음 치며 동네 슈퍼를 들락거린 성의도 무참하게
남편이건 아이들이건 도망치듯 집을 떠나가 버린다.
온통 집안을 수선스럽게 만들어 놓고 그들은 떠나가 버린 것이다.

3.

혼자인 것이다.
갑작스런 정적으로 온 집안이 휘감겨져 있다.
멍하니 식탁에 앉아 내려다보는 집안은 마치
금방 이삿짐을 꾸리고 떠나 버린 남의 집에 와 앉아 있는 것 같다.
남편과 자식들을 무사히 떠나 보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
혼자서 앉은 식탁에서 밥맛이 있을리 없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찬을 준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바로 자신이 그 꼴이 된 것이다.
남편이 맛있게 먹어 주길 기대했던 찌개는
아쉽다는 듯이 모락모락 김을 올리고 있다.
아이들이 싸우듯이 먹어 주길 기대했던
앙증스럽게 꾸며진 반찬들로 젓가락을 옮겨 보지만
자꾸만 헛손질이 될 뿐이다.
먹는 둥, 마는 둥 밥상을 치워 버린다.
그리고는 쓰레기 더미처럼 벗어 던진 옷가지하며,
방안 구석구석하며, 자질구레한 일들로 점철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설거지,
그리고 집안 청소.

먼저 안방 청소부터 시작한다.
남편은 결혼한 이래 한번도 자리를 손수 정돈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여자의 몫이다.
마치 역사 이래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그래 이부자리는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자기 옷이라도 제대로 정돈해 놓고 가면 안되나.
다음은 아이들 방이다.
널려진 옷가지, 어지러운 책상, 뒤죽박죽 되어 있는 이부자리.
마치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그렇게 되지 않으면
혼이라도 날 것처럼 말끔히 정돈하고,
빨랫감을 챙겨 옆구리에 낀 채 아이들 방문을 나설 때는
아직 아침임에도 온몸이 나른하기만 하다.

이제는 빨래다.
뭐 많은 식구라고 빨래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샘솟듯이 솟아나는지.
세탁기가 있어서 요즈음 여자들이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 세탁기 없이 살던 옛날 사람들은
요즈음 사람들처럼 한번 입고 벗어 던지지는 않았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빨래를 해야 한다면
제아무리 세탁기가 혼자 빨아 준다고 해도 예삿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빨래를 미루는 것보다는
해치워 버리는 것이 차라리 위로가 된다.
어느 구석에 빨랫감이 처박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하루 온종일이 빨래 생각으로 찜찜하기만 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바라다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편이 차라리 낫다.

4.

집안팎을 한번 휘~ 둘러본다.
이제서야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집안 일이란 언제나 끝이 없는 법.
며칠 전에 닦아 놓은 장롱으로는 손자국이 완연하다.
전등 갓 위로 먼지가 떠오른다.
베란다의 물청소도 생각이 난다.
화장실도 그렇고, 거실의 장식장도 그렇다.
냉장고 안에 다 먹어 가는 김치도 생각이 난다.
또 시장을 한번 다녀와야 하나.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하루에 다 할 수는 없는 법.
여자도 하루를 내일로 미루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잠시나마 쉬고 싶을 뿐이다.
그래 한잔의 커피를 준비하여,
거실의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본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만을 위한 무엇을 처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무심히 던져 본 시선으로 이웃집 정원의 나무들이 푸르고,
그 너머로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얼마만 인가.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을 그 하늘마저도 새삼스럽다.
젊은 시절,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뛰게 했던 그 하늘인데도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여기 왜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언제나 이렇게 자질구레한 일상에 파묻혀 있어야만 하는가.
사실상 집에서 하는 일 중에서 내가 맡은 일은
언제나 대부분이 궂은 일 뿐이지 않은가 말이다.
빛나는 모든 일들은 남편의 몫, 아니면 아이들의 몫 아니었던가.
나는 언제나 이렇게 그늘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각종 여성단체에서는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나름대로 계산해서 발표해 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이 주부들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토록 쓸데없는 일들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혼시의 재산분할 청구권?
세상에 그것 때문에 가사노동에 하루를
보내고 있는 여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에게는 이혼에 대한 꿈조차 생소하다.
다시 무슨 꿈을 새삼스레 꾸어보리라는 자신도 없다.

물론 여자에게도 꿈꾸던 시절은 있었다.
세상은 모두 내 것이라고 자부해 보고 싶었던
그 찬란한 시절도 있었다.
여왕처럼 떠받들여지고, 신데렐라를 꿈꾸던 시절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지난 일,
커피 향기처럼 추억 속으로 스며들어 버린 일.
지금도 꿈을 꾸기는 꾼다.
하지만 그 꿈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신을 초라하게나 할 뿐.
기껏해야 달력에 결혼기념일이나 자신의 생일을 붉은 색연필로 그려 넣고,
남편이 보아주기를, 그래 그날이 잊혀지지 않기를 기다려 보는 것.
그리고 그날의 소박한 외출을 꿈꾸어 보는 것.
뭐, 미국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몇 캐럿의 다이아몬드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기껏 호텔 부페나 한번 데려가 주는 것,
아니 너무 과하다면 피자가게라면 어때.
돌아오는 길에 잠시 카페라도 들려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을.
꼭 부페가 먹고 싶어서도 아니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단지 남편과 그러한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황홀해하고 싶었을 뿐이다.
설사 남편에게는 의례적이고, 번거로운 연례행사라 할지라도,
여자에게는 남편과 그러한 자리를 같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기뻤던 젊은 날 남편의 자신에 대한 열정을 회상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허망한 꿈으로 끝나야만 했다.
피자는커녕, 아무리 암시를 주어도 언제나 무감각하기만한 남편.
차라리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도 들게 만드는 남편의 무감각.
처음에는 몇 번 다투어 보기조차 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치사한 것 같아 포기해 버려야 하지 않았던가.
장인, 장모의 생일을 기억해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기 하나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는 아내를 위해
그 정도도 과한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질 않겠는가.

아무리 하루의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권태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어느날 퇴근 길에 장미꽃 한 송이를 불쑥 내밀어 자신을 놀라게 하는
그러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감동은커녕, 술 취해 비틀거리며 밤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귀갓길의 남편에게는 강요조차도 통하질 않는다.
아침이 오면 머리를 극적 거리며,
막연한 다음을 약속해 대는 그러한 낯선 한 남자가 있을 뿐.

"딩동,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