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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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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13>-저 포도는 시다!


BY eheng 2001-03-18


배고픈 여우 한 마리.
아까부터 포도밭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하지만 포도밭의 담장은 너무나 높다. 담장 안에 달려있는 저 먹음직스러운 포도. 따뜻한 햇살을 받고 여물어가는 달콤한 포도 알들... 여우는 계속 포도밭 주위를 맴돌며 군침을 삼킨다.
그러더니 야멸찬 한 마디를 남기곤 휑하니 떠난다.
“저 포도는 시다.”

그렇다. 이 얘기는 어려서 읽었던 이솝 우화의 한 얘기다. 다른 재밌는 우화들은 다 잊었지만 살면서 이 얘기가 자꾸만 떠오르는 까닭은 뭔가?
꾀 많고 교활하기로 소문난 여우가 저 포도는 시다며 웬일로 포도를 따 먹지 않고 이야기가 완결된 것 같지 않게 끝나 버렸다. 맞다. 그 얘기는 완결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몸부림스가 살고 있는 이 마당에서도 수없이 거론되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저 포도는 과연 실까?
손에 잡히지 않고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한다. 못 먹는 감 한 번 찔러나 본다고 한 번 비웃는다. 그래, 분명 실 꺼야. 시큼털털 개살굴 거야, 땡감일 꺼야. 그러니 헛고생하지 말고 헛물켜지 말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물이나 마시자.
하지만 그 포도 아주 달고 향기롭고 맛나다.
그 포도 먹기 위해선 담장을 뛰어 넘든지 때려 부수던지 해야 한다.

우리 몸부림스들 그 포도 따기 위해 엄청 몸부림을 쳤다.
강남의 재벌 미경이, 그 악착을 발휘하여 지금의 부귀영화 누린다. 3년 동안 남편과 생이별하며, 혼자서 아이 키우며 미혼모 아니냐는 쓰라린 눈총까지 받으며 그리도 알뜰과 궁상을 떨더니 제일 먼저 집 마련하고 인테리어하고 문화센타 다니며 여유를 부린다.
혜경이도 만만 찬다. 남편이 이름있는 대기업에 다니건만, 총망 받는 젊은이건만, 그걸로 성에 안차 학습지 교사로 그 일대를 장악하여 수년을 고물차 몰고 그리도 바람같이 다니더니 미경이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집을 샀다. 그러고도 집들이 한번을 안 한다. 무서운 여자들이다.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혜경이 집 마련한다고 둘째도 안보더니 집을 마련함과 동시에 몸을 풀더라. 조절을 어찌 그리 잘 하는지 딸 낳고 아들로 뽑았다. 계획 잘 세우는 X이 다르긴 다르다. 역시 백년대계로 살아야 할 일이다.
탱글이 숙경이, 영어교사로 이름을 드높인다. 어찌하다 가르치던 아이가 영어경시대회서 금상을 탔단다. 그 뒤로 영업이 잘 되서 대기자 명단 놓고 과외를 햇단다. 아무도 그 말 안 믿는다. 자기도 안 믿더라.
우리의 호프, 경옥이는 어떤가? 그리도 공부 잘하는 남편, 대학교수 만들고도 열 불이 나서 학교 잘 다니던 남편 꼬드겨 선생질 그만 두고 벤쳐사장 만들었다. 지금 테헤란로에 잘 나가는 벤쳐사장 되었단다. 그러고도 모자라 새벽에는 브레이드 타느라 애들 학교 지각 시키고, 낮엔 옷 장사 한다고 방방 거리며 동네방네 헤메고, 이젠 보따리의 수준을 업(UP)한다며 보석에, 화장품에, 칼에, 영양제에... 가리는 종목이 없다. 암튼, 재벌계로 확실히 진입했다. 이젠 겨울에만 동창회를 하자고 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밍크를 마련했단다. 성질나서 한 여름 땡볕에 수영장에서 다 벗고 내리 이틀 동창회하기로 했다.
학교 다닐 적에 그리도 온갖 유행을 선도하며 귀족의 딸인 양, 공주인양 얇디 얇은 노방가라의 원피스만 입고 다니며 그 옷 구겨질까 봐 서서 수업 받던 원주, 지방의 강사에게 시집가서 오늘날 순수, 그 자체가 되었다. 수더분한 아줌마의 표상이요, 길 가다 길 묻고 싶은 인덕 있는 아줌마의 인상이 되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변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또 있다. 남편따라 유학간 재희도 마찬가지다. 비 오는 날이면 아랫목에 배 깔고 만화책 섭력할 적에 전시회란 전시회는 다 보러 다니고, 우리가 이문세을 오빠 삼을 적에 혼자서 필하모니 다니며 클래식 듣고, 우리 막춤 추며 망가질 때 혼자서 술잔만 기울이며 노가리는 절대 안 뜯고 대구포만 씹으며 그 고상을 떨더니 이젠 혼자서 다 망가졌다. 파리에서 10년 살면 돈다더니 정말 돌았다. 이젠 뒷바라지 신물 났다며 자기가 공부한단다.
경은이, 목사에게 시집 가더니 밤 늦도록 설교 준비하는 남편 옆에서 날 밤 새며 프리랜서 작가 일을 한단다. 주제는 주로 나도 모르는 여자의 성, 다이어트 특급 작전, 놀면서 돈 번다... 옆에서 설교 준비하는 남편이 말한다더라. 사탄이 따로 없다고. 그러면서 비지땀 흘리며 기도한단다. 주여! 이 쓴 잔을 내게서 거두소서...
사모가 되는 건 성에 안 찬다며 아예 목사가 되어버린 은수, 지금도 만나면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맘 다 안다는 듯이. 주여~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학생 때부터 두 손 잡으며 고개를 끄덕 일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버릇 써먹을 데 없어 목사가 되어 지금 교인들한테 겸손하고 권위 없는 훌륭한 목사라 칭송을 받는다. 버릇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며 그 버릇 살려서 자기의 캐릭터 삼을 일이다.
시집 안간 옥자, 무신 공부를 그리 하겠다고 대학원을 두 개씩 다니며 돈만 쓰더니 이젠 공부하느라 탕진한 재산 되찾겠다며 아이들 가르친다. 아침, 저녁으로, 일요일도 없이 가르친다. 살신성인으로 가르쳐도 남는 기 하나 없다고 울상이다. 당연하다. 돈 안 받고 가르치니 남을 건덕지가 있을까? 시집이나 가래도 눈 하나 껌벅이지 않는다. 시집 안 간 일이 복의 근원이라면서도 젊은 오빠 소개 안 한다고 닥달이다. 분명 치매의 징조다. 현정이도 공부를 그리 하더니 아이들 가르친다. 역시 공부는 많이 하고 볼 일이다. 가만 보면 공부 너무 많이 하면 시집을 안 간다. 왜 그럴까? 연구해야할 문제다.
연정이, 주연이, 희수... 모두 집에만 있으려니 옴이 쑤시니까 괜히 학습지 하거나 과외로 울화를 삭힌다. 특히 학교 다닐 때 맨 날 돌멩이, 꽃병만 던지며 수업에는 코도 씽긋 안 하던 애들이 과외로 먹고 산다니 자다가도 놀랄 일이다. 공부는 언제 했을까? 이런 놀라운 일이 어찌 일어난단 말인가? 학교 다닐 적의 성적은 아무 상관도 없더라.
학교 다닐 때 허구헌날 팝송을 흥얼거리고 다니던 영선이, 은행에 취직하여 일설휘지 날리며 은행계의 사교를 도맡더니 홀연히 다시 영어 공부한다고 두문불출이라, 잠시 후면 텔레비젼에 영선이 동시통역사로 나올 일 기대한다. 어떻게 공부하냐니깐 영어공부 절대하지 말라로 공부한단다. 하지만, 영선아, 너는 개그계에 진출하는 게 더 빠르겠다. 한 번 생각해 봐라.
자가용 타고 학교 다니던 희영이, 지금은 집안의 가장되어 동생들 시집 장가 보내느라 아직도 혼자다. 이젠 무슨 사업한다며 종횡무진 바쁘다. 얼굴조차 볼 수 없다. 그리 바쁜 것도 좋지만 중요한 거 잊고 살까 봐 걱정이다. 중요한 거? 자신이 몸부림스라는 사실!
그럼, 나는 어떤가? 나도 온갖 몸부림 다 떨고, 치고 살지만 너무 엄청스러워, 남사스러워 말도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담장 밖에서 혹시 떨어지는 포도는 없을까 하고 포도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다.

몸부림스가 추구해야 할 것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다. 손 뻐치면 닿는 곳에 있는 것은 추구해야 할 무엇이 아니다.
담장을 넘어서서 그 안의 맛있고 달콤한 포도를 따 먹자. 왕창 따서 나도 먹고 다른 이에게도 나눠주자. 이젠 머뭇 거리며 저 포도는 시다고 만 하지말고 포도를 따러 가자.
몸부림스에겐 이미 그럴만한 용기와 준비가 되어있다. 광주리 하나씩 들고 가서 영차! 영차! 포도를 따자.
있는 건 팔뚝 같은 뚝심과 뱃살 같은 넉살과, 세월 같은 오기 아니던가?
겁 날게 없다. 무서울 게 없다.
저 포도는 달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