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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 -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


BY 나의복숭 2001-03-04

오랫만에 종로 5가에서 울집까지 오는 버스를 탔는데...
퇴근시간쯤이라 너무 복잡했다.
낑겨서 이리저리 손잡이 가는데로 흔들리다가
겨우 빈좌석에 앉았는데 무심코 가방을 쳐다봤드니
옴마야 이기 뭐시고?
세상에 가방이 한일짜로 쭈욱 그어져 있었다.
요새도 이런 원시적인 소매치기가 있다니...
다행히 가방이 이중이 돼놔서 안에 내용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쭉 째진 자국을 보니 섬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옛날엔 만원 버스를 타다보면 그런 소매치기가 참 많았다.
내 고향 대구선 그런 소매치기를 '깍쟁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손가락 틈새에 면도칼을 갖고 다니다가
내같이 얼팡하거나 방심한 여자의 핸드빽을 주장 노리거나
아님 남자들의 안주머니를 사정없이 그었다.
근데 그 전설속으로 흘러간 소매치기의 수법을 요새 보다니...

집에와서 퇴근한 울1번한테 글?다.
"가방 요기 구경 좀 해봐바. 요새도 이런 천연기념물적인
깍쟁이가 있드라"
"것도 자랑이라고 보여주냐?"

사실 자랑할려고 내가 보여주겠는가?
심심하믄 내 잘못한거 집어내서 쫑코 주는 사람한테
내가 미쳤나. 그걸 보여주게...
근데 요즈음같이 컴퓨터가 있고 모든게 초현대화 되어가는
판국에 그런 원시적인 소매치기가 있다는게 얼마나
신기하고 웃기는가 말이다.

얘기거리가 궁하든차 잘됐다싶어 꺼집어낸거다.
안그러면 천날 만날 얼굴 맞대어 살고 있는데
뭔 얘기꺼리가 있겠는가?
다른집은 몰라도 울집은 그렇다.
맨날 입에 엿물고 말 잘안하는 사람이라 내가 얘길 안하믄
귀곡산장의 귀신 나올집처럼 으스스하니
그런얘기라도 해야지 웃을일이라도 있지 뭐.

"있잖아. 옛날에 울 아부지 안포켓 째고 돈 가져간
소매치기의 아들이 그 기술 물려 받아서 내가방 짼거
아닐까? 한일짜로 짼 그 수법도 똑같네"
울남편 기가 차선지 또 픽 웃는다.
가방 찢겨놓고 등신처럼 히히득거리는 여자 첨본다나.
그래 첨봐라.
언제쯤 되어서야 내 이 깊은뜻을 당신이 알겠노. 흑흑..

근데 그때 면도칼이 도루코였는데 요새도 도루코가 나오니
도루코 면도칼로 쨌을까?
가방이기에 천만다행이지 저걸 으슥한 골목에서 그 면도칼을
내목에 들이됐담 난 어찌됐겠는가?
애구 생각만 해도 섬뜩하고 째진 가방이 오히려
고맙게 생각된다.
그러게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