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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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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못말리는 부자


BY 그린플라워 2001-02-27

큰 병원에서 낳으면 아이가 바뀌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을 말끔히 씻기라도 하는 듯
제 아빠와 판박이인 큰애는
성격과 하는 행동까지 똑같아서
내가 더러 꾸중이라도 할라치면 아이 아빠는
\"얘야 그러지마. 너 그러면 아빠 욕먹이는 거다.
너랑 나랑 똑같다잖니!\" 한다.

신생아실에서 아이와 첫대면을 하고난 후
소감을 물으니 \"저랑 똑같이 생겼는데요,
저보다는 좀 빠지는 것 같아요.\"
하고 다녀 사람들을 웃게 하더니,
우리 직원 오빠의 중증 왕자병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 생겼다고 함)을 얘기 했더니
\"아니 그 자식이 나를 보고 나서도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닌단 말이야!\" 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한 아빠를 닮아
제 자신이 꽤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글쓰기, 읽기를 거의 안 가르쳐
좋은 유치원에 보낸 덕분에-
삼년을 어린이집(우리 아이는
글짜를 가르치지 말아달라고 당부함)과
이년을 유치원에서 보냈는데도
겨우 독학으로 깨우친 그 아이는
글씨가 개발새발이라 요즘 글씨 바로잡기에 여념이 없는데
쓰기 공책 한 장이라도 쓸라치면
약먹은 아이처럼 졸거나 쓰러져 자는 통에
애를 먹고 있다.
(아이 아빠도 그랬나?)
TV시청은 유치원 다녀와 졸릴 텐데도
\'아줌마\'까지 보고서야 잔다.
프로그램을 요일별로 꿰고 있어
놓치지 않고 보면서 공부를 하라고 하면
그냥 쓰러져 자므로 안 자고 놀려고 하면
\'공부하자\'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잔다.

어릴 적부터 약속은 꼭 지켜버릇해서
오래 지난 약속도 끄집어내기 때문에
가급적 거짓 약속은 하지 않는다.
경제개념도 희박해 천원을 주면
오백원은 남겨와 도로 준다.
그러므로 올해 생긴 많은 세배돈도
디지몬로봇 하나로 해결하고 부모가 챙겼다.
방에 돈이 굴러다녀도 주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유치원의 여자친구가
제게 눈을 흘긴다고 무서워서 유치원을 안 가겠단다.
유치원 선생님과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에게까지
다짐을 받고서야 유치원에 갔는데,
한동안은 그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고 좋아하더니
또 흘긴다고 유치원에 안 가겠단다.

잘 가져오고 잘 안버리는 아빠를 닮아,
이사할 때 아이 아빠 몰래 쓰레기봉투에 물건들을 버리자
\"이걸 왜 버려요?\" 하면서
다 낡아빠진 얻어온 인형과
심지어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작은 쪼가리까지
도로 집어내어 혀를 차게 만들었다.
이제 그 아이 눈길까지 피해, 버려야 한다.

식성은 나를 닮아 육식을 좋아해
삼계탕을 끓여주면 닭껍질과 국물에 노랗게 뜨는 기름까지
맛나게 건져 먹는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
확실히 고기를 먹을 줄 아는 녀석이다.

운동신경도 나를 닮아
달리기는 잘하지만 줄넘기는 빵점이다.
나도 쌕쌕이(두 번 줄 넘기고 한 번 뛰기)는
해 본 적이 없다.
소프트볼을 제외하고는
구기종목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
나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 있는데
학창시절 소프트볼 홈런 타자였다.
처음에는 내가 공을 맞혔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뛸 생각도 못했는데,
친구들이 뛰라고 떠미는 바람에
일등이었던 달리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했다.
어쩌다 우연이 아니었던 것은
3년 뒤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증명되었는데,
지금까지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제 초등학교에 가게 되면
잘 해낼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 생각이 제발 기우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