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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BY 초우 2001-02-24

어느 결혼기념일의 일기

참 허무하다,
저녁도 굶었다,
자꾸만 괘씸해 진다,
언제나 그랬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챙기고 남들한테는 잘도 챙겨주더라,
두고 보자!
나도 그만큼 되돌려 줘야지!
이제는 나도 그러고 싶다!

1994년 3월 0일

예쁜 카드

당신과 함께한 00년 세월
후회없는 삶에 감사하며
남은 세월도
당신의 가슴에
작은 불씨로 남기를 소망하며...

1996년 3월 0 일

수많은 결혼기념일을 보내고도 아직도 매번 감정의 변화를 추스르지
못하니 어쩜 나는 영원히 철들지 않을런지!

남편은 젊었을 때도 나이가든 지금도 여리고 착하긴 하지만
칠남매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자기 중심적이고
내 조그만 감상이나 기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또 내 입장에서
배려할줄을 모른다.

나도 여자인데......
꽃도 받고싶고 분위기에 약한나는 분위기좋은 근사한 식당에서
폼 나게 식사도 하고싶고 차 한잔이라고 마시고 싶은데
남편은 그걸모른다.

기껏 자기가 좋아하는 회나 갈비 먹으러 가자고하고,
때론 잊었는지 모른체 하는지 그냥 지나갈때도있고,
미식가이지만 레스토랑 같은덴 먹을게 없다고 절대 가지않으니
내가우겨 마지못해 가봤자 내마음이 안편하니 어쩔수없이 따르지만
가끔은 수 틀어지면 저녁을 굶기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한다.

그 많은 세월동안 이왕 해 주는거 내가 좋아하는일 한번 하는게
왜 안되는지 이해할수가 있어야말이지!
내가 한번도 당당하게 요구하지 않아서 그런가?

살아온 세월이많아 간이 커 진건지,
제작년이던가 나 자신을 위해 반란을 일으켜버렸다
평생을 따라만 다녔으니 내가 한번 앞장선다고 세상이 바뀔것도
아니지 않은가?

식당벽엔 입구에서부터 고구려 벽화가 그려져있고
칸칸이 고급 통나무로 꾸며진 예쁜 방과 예쁜 찻잔이 있고
라이브 음악을 워해 피아노와 기타가 있던 아담한 식당에다
예약을 하고 내자신에게 줄 꽃과 삼페인도 준비하게 한다음
젊은사람들이 대부분인 식당으로갔다.

마지못해 주춤거리며 따라온 남편의 감정은 무시해버렸다,

꽃과 삼페인과 예쁜 촛불이 나를위해 준비된 식탁에서
내 감정에 도취도어 자꾸자꾸 마셨더니 취한걸까!!!

눈치보이던 남편도 겁나지않고
큰 식당도 사람들도 조그만해 보이더니 남앞에 나서지못하는
소심증은 어디로 간건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기타치는 총각 앞으로가서는

"총각 마이크 이거 나 한번만 빌려주면 안되겠나"
"왜 그러세요?"
"나가 할말도 있고 시 한수 낭독할라꼬"
주인쪽으로 힐끗거리던 기타총각은 마이크를 넘겨주며
"그러세요"
"총각 반주좀 깔아요"

나즈막한 기타반주가 깔리고 내 목소리도 착 깔았다.

" 오늘 스물여섯번째 결혼기념일이예요 여기까지 무사히 살아온걸
낮선분들이지만 여러분에게 축하받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시 한구절 낭송하고싶은데 양해해 주세요"

이게 뭔소리냐는 표정으로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미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태연한체,

"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속으로 떠났다....................

박인환의<목마와 숙녀>

내가 외울수있는 가장 긴 시를 다 낭송하고났을때
여기저기서 힘찬 박수소리와 스탠드불빛이 번쩍 번쩍 들여올려지고
나는 무대에서 깊이 고개숙여 고맙다는 인사를하고 돌아오는데
왜그리 행복하든지!

가장행복한 결혼 기념일이었고
가장 행복한 반란이었다.

몇일후면 또 기념일인데
올해는 어떤 기분으로 맞게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