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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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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와 그* 세월을~ (4)


BY 넘실이 2001-02-23

1991년 7월 어느 날.

사무실을 새로 시작하고 어느덧 2개월이 흘렀다.
7월의 따가운 햇살이 사무실 창문 밖의 황량한 아스팔트 옥상을 후끈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조금이나마 아스팔트 옥상의 삭막함을 덜어보자는 생각으로 개업식 때 들어왔던 나무와 화초들을 쭉 늘어놓고 지성으로 물을 주어보지만 너무 따가운 햇볕때문인지 아니면 화분을 파는 사람들이 화분의 흙을 제대로 넣지 않아서인지 잎들이 누렇게 뜨는 것이 영 볼 성 사납다. 경비절감을 생각해 사다 놓은 저용량의 에어컨은 8평 남짓의 사무실조차 제대로 냉방을 못해 주고 있다.

회사의 처음 시작은 그런대로 순조로운 편이다. 이미 신용장을 오픈하여 놓은 선적분의 코미션만으로도 우선 3개월 사무실 유지할 비용은 충당이 될 것 같다. 구멍가게 같은 최소한의 사무실이지만 들어가는 돈은 만만하지가 않다. 두 직원의 최저 봉급, 사무실 관리비, 운영비, 접대비, 출장비등... 손에서 물이 흘러내려가듯 돈이 쑥쑥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처음 여유자금으로 비축해 놓은 것은 이미 바닥이 다 들어나고 있으니, 첫 선적분이 큰 문제없이 계약 납기대로 이루어지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남편은 첫 선적분의 최종 품질 확인을 위하여 해외 출장을 나가 있다. 가격은 국내의 제품에 비해 저렴한 편이지만 품질 면으로는 아직 불안한 것이 많아 본인이 직접 확인을 하지 않으면 안심이 안된다며 출국을 한 것이다.
남편과 같이 일을 해주고 있는 김희도씨는 거래처을 방문하겠다며 점심 식사를 끝내고 외출을 한 뒤이고, 순임이는 사용경비의 회계정리를 하고 있고, 나는 순임이에게 배운 LOTUS 1,2,3 의 복습을 하느라 땀을 빼고 있다. 금방 배운 것도 다시 하려면 생각이 나지를 않고 순임이와 함께 할 때는 잘 되던 것이 혼자 하려면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친구들은 말한다. 너는 좋겠다고... 그래도 다시 일을 하면서 컴퓨터도 배우고 새로이 자기 개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마치 내가 대단한 일이라도 하고 있는 듯 모두 부러운 투로 이야기를 건넨다. 글쎄다, 모르겠다.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아침에 출근시키고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 나의 마음과 하루종일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있는 지금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똑 같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장.단점이 다 보인다고나 할까? 그가 가지고 있는 업무적 역량, 대인관계의 명암이 너무 확연히 들어나 예전 남편에게 가지고 있던 어떤 신비감 같은 것이 없어졌다고나 할까?

남편은 직원들 앞에서 체면을 세우기를 원하고 나는 합리적인 사무처리를 원하니 자연 그로 인한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다. 남편은 말한다. 네가 나에게 반항하면 자신이 어떻게 직원들에게 권위를 내세우며 일을 시킬 수가 있냐고... 따지고 보면 그말도 일리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때때로 나도 모르게 삐죽거리는 생각이 울컷 속아오를 때가 많다.

남편의 거래처 사장님의 부인이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같이 일하면 여자가 훨씬 더 힘들고 속이 타는 일이 더 많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