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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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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인 비밀


BY 임진희 2001-02-23

내가 비밀을 갖게 된것은 십년이 훨씬 넘었다.

뭐 처음부터 비밀을 간직 하려고 했던것은 아니고 살림 하면서

얼마씩을 떼어서 따로 저축을 하기 시작 했다.

남편의 이름으로 통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매달 은행에 다니는 즐거움은 나에게는 또 다른 낙이 되었고 해가

거듭됨에 따라서 조금씩 숫자도 늘어갔던것이다.

남편은 퇴직금이 없는 직업이다.

아이엠 에프가 되기 전에는 다른 친구들 보다 생활비를 조금 더 받았

지만 쓰기전에 반드시 은행으로 먼저 갔고 그래도 여유 있게 생활

할수 있었다.

어제 신문에 여자들의 비자금에 대한 기사가 있었는데 남편이 그 글을

읽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문을 건네 받아 읽고 있었다.

여자들의 비자금의 용도와 이유는 여러 가지 였지만 나는 그 어느

쪽일까

나는 친정에 돈 쓸곳도 없었다.

막내딸이였고 경조사에 쓰는 돈 이외에는 별다른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형제들도 제각기 부담을 주지 않는 생활이였고...

그렇지만 남편의 통장도 관리를 해 주고 아파트를 한채 더 소유 할수

있게 되어 마음을 놓았는데 원하지 않고 생각지 않던 불황이 닥쳐

왔다. 우리 남편은 부도는 맞지 않았지만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 졌다

나는 그래도 비자금을 내 놓지 않았고 세를 받은 돈을 예치해 놓았

는데 그 중 일부를 쓰게 되었다.

몇개의 통장은 남편에게 건네 졌지만 십년 넘게 모은 돈은 없는 돈

이였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빌려 줄수 없는 돈이였다.

친구에게 옛날에 백만원을 빌려주고 돌려 받기는커녕 감정만 좋지

않아 내 쪽에서 다시는 전화를 걸지 않았고 포기를 한뒤 은행만을

믿기로 했던것이다.

골프를 치는 친구는 나에게 골프를 권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데다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운동하는데는 골프 연습장이 있어서 칠줄만 알면 연습은

공짜인데 에어로빅과 가끔 수영 하는것도바쁘기만 했고 굳이 골프를

치지 않아도 즐거웠다.

만약 이런 불황기에 내가 비자금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면 얼마나

힘들고 불안 했을까

친구들이 필드에 나가 즐기고 있을때 나는 식탁에 앉아 소설을

읽거나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남편은 마음만 좋지 경제 관념이 약한것 같아 내가 비밀을 간직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편이 일일이 돈을 따지는 성격이 아니라 딴주머니 찰 필요

가 없었지만 비자금은 확실히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줄뿐만 아니라

힘의 원천이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

처음 적금을 들어서 만기가 되면 다시 정기 예금을 하고 다시 적금을

시작 하고 그렇게 하다보니 비밀 주머니가 커지게 되었지만 요즘은

새로운 적금은 시작 하지 못한다 .

퇴직금이 없는 남편대신 내가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빌려 줄수 없는 돈인것이다.

내가 모은 돈은 다른 용도로 쓰지는 않았다.

좋지 않은곳에 쓸려고 돈을 모으겠는가. 함께 운동하는 분 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형님 맑은 공기 마시며 골프를 치면 얼마나 좋은데 배우지 않습니까 .

나는 정말 그런 분들이 부럽지 않았다.

무슨 운동이든 자신이 좋아 하는것을 하면 됐지 남들이 한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한다.

이제 나의 비자금 공개는 언제 해야 할것인지 아직 결정 하지 않았지

만 어쩌면 남편이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지난번 설 연휴에 일본 여행을 다녀오니 경비 아저씨가 소포를 내밀었

다. 모 은행에서 황태를 한 상자 보냈는데 아저씨가 맡아둔 모양이

였다.

아니 이게 뭐야 , 은행에서 왠 소포? 순간 응 옛날에 거래한 사람에

게 다시 새 상품 홍보 차원에서 보냈겠지요 ,, 슬쩍 넘겼지만


글쎄 어떻게 생각 했는지 그이상은 묻지 않았다.

정말 비자금 관리 하기도 만만치 않다 . 내 경험상 비상시에 쓸수

있는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비자금이 있다면 일단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그 돈을 마련 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절약해야 하고 절제심이 있어야

가능 하다.

우리집은 꼭 필요한 가구 이외에는 사지 않는다 . 거실이 썰렁할

정도지만 많이 늘어 놓는것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봄비가 내렸다.

은행 다녀 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남편이 나의 비밀 주머니를 알면 뭐라고 할까

고맙다고 할까 ,괘씸 하다고 할까. 그래도 나는 마음의 위안이

되어준 비밀 주머니가 고맙고 사랑 스럽다.

항상 좋은 날만 있는것이 아니고 이렇게 힘든 고비가 있는거니까

내일을 위해 계획성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