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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겨울과...일상(2)


BY 들꽃편지 2001-02-22

낮에 친정엄마가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후라이드치킨을 사 오셨다
뽀얗게 화장으로 하시고 빨간 잠바에 꽃무늬가 있는 빨간티를 입고
오셨다. 호수공원에 있는 노인복지회관에서 바로 오는 거라며,
탁구를 가르쳐 주는 할아버지가 나보고 이쁘데 하시며 오호호호
웃으셨다.
중학생인 딸아이가 치킨을 먹다가 요상하게 피식 웃었다.

친정어머니 28살 때 아버지가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나와 어린 동생 둘을 남겨 놓으시고 어이어이 꽃상여 타고,
냇물을 건너 산중턱으로 올라 가셨다.
이 세상에서 어느누가 친정어머니만큼 외롭고 고달프셨을까?
지금은 지난 얘기라 웃으면서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친정어머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을 놓지 못하고 계시다가
올해 꼭 예순이 되시면서 홀가분하게 일을 놓으셨다.
그래서 복지회관을 며칠째 다니시는데 할아버지들이 젊고 예쁘다며
자꾸만 말을 건다며 그 얘기를 하실때마다 막 웃으신다.
친정어머닌 부지런하시고 성격이 급하셔서 우리집에 오셔도 두 시간
이상은 못 앉아 계신다.
오늘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두시간을 못 넘기시고 엉덩이를 번쩍
들고서 바삐가셨다.
허긴 나도 나갈거고 아이들도 학원 갈거고 더 있을 수도 없는 것.

어제보다 한시간 늦게 집을 나섰다.
눈이 녹은 아파트 화단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얼음장 밑으로 뜨거운 봄기운이 흐른다 하더니
그 곳에 손톱만한 새싹이 뜨겁게 뜨겁게 올라오고 있었다.
가던길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앙증맞은 고것들을 보았다.
'아고, 혼자보기 아까운 거.요것들이 커서 청초름한 들꽃이 되고,
바람따라 흔들리는 풀잎이 되겠지.'
하루하루 사는것이 슬퍼도, 허리가 휘도록 고단해도,
자연앞에서는 살맛나는 세상인 것이다.

10분이나 여유가 있어. 오늘은 내가 버스를 기다렸다.
G백화점 후문에 서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좁고 복잡한 삼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젊은 청년을 본다.
자주색 모자에 같은색 롱코트를 입고 춤추듯 교통정리를 하는 젊은이
영하10도가 넘는 날에도 저렇게 춤을 추었고,
오늘도 변함없이 하얀장갑을 끼고 똑같은 동작으로 버스를 제자리에
넣고 승용차들을 지하 주차장으로 안내하며 신나게 신명나게
춤을 춘다.
자기가 맡은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세상은 살아볼만하고 살맛나는 세상인 것이다.

한복집 언니는 베개를 꿰매고 있었다.
떡볶이집엔 떡볶이만 파는것이 아니고 오뎅도 팔고 순대도 팔듯이,
한복집엔 한복만 파는 것이 아니고 이불도 팔고 베개도 팔고 있다.
개나리같은 노란베개.
진달래같은 분홍베개.
자목련같은 자주베개.
풀잎같은 초록베개.
메밀을 가득 넣고 부리나케 부리나케 봄을 꿰매고 있었다.
살맛나는 봄을 꿰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