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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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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재미가 없던지...<캐스트 어웨이>


BY 꼬마주부 2001-02-21

시간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척.
하지만 척은 시간 앞에서는 꼼짝도 못할 수 밖에 없다.
왜? 택배 회사 사장(?)이니까.

배달 시간을 줄이고 줄이고 줄이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는 직업을 가졌으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할 수 밖에.

시간에 쫓겨서 살다보니 결혼도 못한채 "캘리"와 부부처럼 살고 있다.
자기 일에 철저해서 차갑기가 한겨울의 얼음장 같기만 할 척은 그래도 자상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렁주렁 세심하게 준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부러 차key를 가지고 가서 캘리가 자기를 부르도록 한 설정도 포근하다.

그리고...무인도.
사실, 난, 척이 탄 항공기가 바다와 추락하는 순간 부터 잠을 잤다.
일부러 잠을 자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한 인간이, 문명과 떨어져 지낼(-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원인제공을 한 항공기 추락 씬은....정말이지 밍밍하기 짝이 없었다.
타이타닉의 배가 보는 이의 가슴을 세차게 방망이질 하게 만들었다면,
척의 항공기는 그냥 평범한 시물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 하게 했으므로, 나는 자동적으로(?) 잠이 들고 말았다.

꾸벅꾸벅 졸다가 얼떨결에 깨서 스크린을 보니, 척이 이슬을 모으고 있었다.

이슬을 모으고 스케이트 날을 칼 삼고...

외람된 이야기이지만,
나는 몇 년 전에 <로빈슨크루소 따라잡기>라는 과학만화를 산 적이 있다. 무인도에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과학 상식을 재미있게 쓴 책이다. 바닷물을 증류해서 식수를 만들고, 물렌즈를 이용해 불을 피우고, 맨손으로 사냥 해서 식량을 얻고, 뗏목까지 만들 수 있다면...?
그 정도면 무인도 생존 가능성은 99.9%란다.

물론, 내가 이 책에 쓰여진 과학상식을 빠삭하게 알 만큼 통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화장실에서 읽고 있으므로 "척"의 무인도 생활기는, 내게는 별반 신기해 보이질 않았다.

특별히 인상깊은 장면 없이, 4년이 흘렀고,...
그는 해변가로 날아온 간이화장실 벽자재로나 쓰일 듯한 정체불명의 판대기를 계기로 탈출(!)을 시도한다.

잘했다.
탈출한 것은 잘했다.
무인도에서 마냥 그렇게 살다가는 정말 외로워서 말라 죽을 가능성이 100%인데 거길 박차고 나온 것은 가다가 상어 밥이 될 지언정 잘 한 일이다.

...배구공과의 안녕.
윌슨이라는 이름의 잔디인형이 되어버린 배구공.
윌슨은 척, 그 자신이었다.
척이 4년이나 거기서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다 윌슨 덕분이 아닌가 싶다. 주절주절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니.
말상대가 없다는 것은,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집도 아닌 무인도에서.

그리고, 척은 돌아온다.
어디? 미국으로.
미국인이니까 미국으로 와야지.
미국으로 왔는데, "캘리"는 없다.
딴 남자에게 시집갔다.
그 새를 못참고 시집가서 아이까지 낳았다.
자기는 척이 살아있을 거라고 했지만 주위에서 꿈 깨라고 했단다.
그래서 다른 남자랑 결혼했다구?
10년도 아니었고, 20년도 아니었다.
고작(물론 척에게는 지옥같이 긴 시간이었지만) 4년이었다.
그걸 못참고 다른 이를 만났다고...

척은 다시 돌아왔다는 기쁨보다 캘리를 잃은 슬픔이 더 컸다.
그럴 수 밖에. 나라도 그랬을거다.
나는 배신감에 온 몸이 불탔을거다.

그리고 ending.
척이 가지고 있었던, 우편물.
배달하러 갔다.
주인은 없고 날개들만 마당에서 펄럭인다.
척이 뗏목에 달았던 그 판대기에 그린 날개와 같은 모양이다.

척은 사막과 같은 그 집앞 사거리에서 걸음을 멈췄고,
사방으로 뚫려 있는 거리에 서서 무인도의 바다를 느꼈다.
하지만, 사거리는 바다와는 다르다.
바다에서는 길을 잃고 갈 곳을 몰라했지만,
사거리에서는 이 길이 어디로 통하는 줄도 알고 갈 곳도 알기때문이다.

그리고, 척은 다시 행복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 첫 장면의 문패(부부의 이름이 적힌)에서 남편이름이 사라진 끝장면의 문패는 척의 새로운 사랑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감상문을 적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의 메세지를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밍밍하고 지루했으며, 무인도의 생활을 효과적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이 영 찝찝하다.

이 영화가 "무인도에서의 인간 모습"이 아니라, "잘 찍어진 한 편의 택배회사 홍보영화"처럼 느껴진 것은 단순히 내가 나무만 볼 줄 알고 숲은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비디오로 빌려 볼 걸..하고 밤늦도록 후회한 꼬마주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