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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99

해삼과 어머니


BY ps 2001-02-17


프로로그:

"바늘님의 동화" 속에 나오는 안진호 님이 안타깝게 눈빛만 주셨던
그 해삼을 저는 먹어봤습니다. 같은 초등학교(수송)를 비슷한 시기에
다녀서, 같은 "해삼 아저씨"에게서 사먹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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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도 초반에도 학군제가 있어서, 이문동에 살던 나는 가방 대신에
사무실용 노란봉투에 공책과 연필등을 넣고, 종로 2가 (청진동) 까지
버스로 통학을하고 있었다. '누가 물으면 아버지 심부름간다고 해라'
라는 어머니 말씀을 매일 아침 들으면서.

초등학교 3 학년.(4 학년이었나?)
"안 아무개"가 탐내하던 해삼이 무지 먹고싶어 큰맘 먹고
집에갈 버스비마저 털어 해삼을 샀다.
아, 쭉 펴진 옷핀으로 콕 찍어 초고추장에 담가먹던 그 맛이란!
(묽은 초장이라 담가먹는다는게 더 적절함. 그 후 돈 벌 때,
아무리 비싼 식당엘 가도 그 때 보다 맛있는 해삼을 못 먹어봤다)
어찌나 맛있던지, 남들은 두세번 씹은뒤 삼키는 것을,
나는 씹고 또 씹어 초장맛이 가시고 짠맛이 날 때야
겨우 삼킬수 있었다.

마지막 해삼이 목구멍을 아쉽게 넘어간 뒤, 혹시하고 불쌍한(?)
눈초리로 해삼 아저씨를 올려다봤으나, 어림도없는 일이었다.
(혹시, 영덕에 사시는 박 라일락님은 그때 그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실까? 아마도 공짜로 멍게까지 주셨겠지?)

허전한 발길을 종로쪽으로 돌린 뒤, 버스 노선을 따라 동쪽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이 가게 기웃, 길 건너 저 가게 기웃...
(요즘 애들 이 이야기 들으면, '왜 휴대폰 빌려 집에 전화해서
엄마 오라고하지 않았어요?' 할지 모르겠다.)

종로 3가에 "뱀 장사"하는 아저씨들, 구성진 목소리로
'자, 여기 비암~이 왔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저리 가세요!'
"정력", "생사탕"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이에, 큰 유리병,
노란 액체속에 담겨있던 뱀들이 신기하여 한참 쳐다보다,
다시 동쪽으로...

동대문 지나 왼쪽편으로 있던 여학교 (지금 이름은 잊었지만) 앞을
지날 때, 쏟아져 나오는 여학생들을 보며, '야, 이 누나들 무지
이쁘다'라며 한참 쳐다보고...(그때부터 끼가 있었나보다)

"사대부고" 지나 개천 위의 다리에 서서는 흘러가는 물을 보며
'저 물이 한강을 거쳐 바다로 간다지?' 봉투속의 공책 한장 찢어
여러조각 내어 내 이름 적고 물 위로 뿌리며, '혹시 바닷가의
이쁜 소녀가 이것을 주은 뒤 인연이라고 나를 찾아오지나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성동역 앞에는 여러 상점들이 있었는데, 그 가게들 앞에서 사이다나
과자를 사먹는 애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면서, 세 시간
반만에 청량리까지 갔을 때, 갑자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엄마가 왜 여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나를 끌어안으신 어머니, 마구 울기 시작하셨다. '아이구, 내 새끼,
무사했구나. 아이구, 내 새끼...' 어머니가 우시니, 어린 나도
막 슬퍼져서 울고...

(올 때가 지난 애가 세 시간이 넘도록 집에 안오니 별 생각이
다 나시더란다. '교통사고라도 났는가?', '학군 위반한게
들키기라도 했나?', '애가 유괴되지나 않았나?'...
그래서, 없는 생활에, 그 때 귀하던 택시를 대절하여 무작정
자식 찾아 나서셨단다. 차를 타고 가시다, 청량리 역앞,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용케 자식을 알아보신 것은 "어머니"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싶다.)

나는 그때 크게 불효한 셈이었는데, 그 이후 가끔씩
해삼 값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질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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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컴"공부 시작하신 어머니께서 혹시 읽으시지나
않을까 기대하며 다음 글을 씁니다)

위의 자그마한 사건이
어머니의 커다란 사랑의 한 면이었다는 것을
다 커서 제가 자식을 가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표현이 부족하여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항상 저를 꾸짖으시던(?) 어머니!
하지만, 아시죠? 제 속마음은 안 그렇다는거.
이 글을 쓰며 이제야 한마디 해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

먼 하는 밑에서

어머니의 첫 사랑, 큰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