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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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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소년의 여탕 체험기 .소설가 김원일의 작품.<원제>. 깨끗한 몸...


BY 토마토 2001-02-05

***

저는 그만 감기몸살 걸려버렸어요.
오늘 내일 곧 마저 글 올릴게요..

2월 8일 오전 7시30분...
. . . . . .. . . . . .
이 글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쁜눈에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올립니다.
저에게 용기를 주쇼셔!!!!!

. . . . . . . .

제목 마당 깊은 집..<깨끗한 몸>
김원일...1942년 경남김해 출생.

<토마토의 말....주인공 길남이는 가정형편상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고있었는데 음력설을 앞두고
어머니가 길남이를 목욕탕에 데려가기 위해 일부러
대구에서 내려오셨답니다.(육이오 소설이며 추억의 소설입니다.)>

<제 1부>

1..

대목장이라 왁시글덕시글한 장터마당을 벗어나
역으로 내려가는 길을 걷자,
저 만큼 아래 목욕탕의 벽돌 굴뚝이 보였다.
그을음에 탄 높은 굴뚝에서는 검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기가 바쁘게 바람에 싸안겨 흩어졌다.
목욕탕을 십미터쯤 앞둔 데 까지 오자
나는 무엇에 놀란듯 딱 멈추어 서버렸다.
참고 있던 오줌까지 찔금 흘리고 말았다.
목욕탕 쪽문 두 개를 보자 그제서야 어머니가 나를
여탕으로 데리고 들어갈 작정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건넌방안에서 이불을 싸고 앉아 있을 때,
어머니와 함께 내가 목욕탕에 간다면 여탕에 가게 된다는
그 뻔한 이치를 왜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한심한 생각조차 들었다.
목욕탕 안의 광경을 연상 했을때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알몸만 떠 올렸을 뿐이었다.
이제 곧 6학년이 될텐데,
이렇게 다큰 몸으로 여탕에 가게 되다니.
내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매를 얼마만큼 맞게 될는지 모르지만
나는 매를 맞는 쪽을 택했지 여탕에 만은 들어갈 수 없다고
결심을 단단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무이 나는 목욕 안할랍니더."
더듬는 말로, 그러나 단호하게 내가 말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나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몸이 까마구 같은데 목깐을 안 할라 카다이."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듯 어머니가 내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나는 여자만 목깐하는데 안 드러갈랍니더.
여자만 빨가벗고 있을 낀데 우째 들어갑니껴."
내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2

그와 더불어 오학년 여자반 계집아이들의 단발머리 얼굴이
마치 모아놓은 구슬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여자반 계집아이들이 한두명쯤 여탕안에 있을 것이다.
내가 알몸으로, 역시 알몸인 그 계집아이들을 볼수 없다고 생각했다.
계집아이들은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사추리 사이를 손으로 가리고 몸을 홱 돌릴 터였다.
도망치려는 나의 뒷덜미를 어머니가 나꿔채었다.
어머니가 주먹으로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눈앞에 불이 켜지는 아픔보다도,
여탕에 들어갈 수 없다는 강한 반발에서
나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꼴값하는구나.
길남아 봐라, 때 씻는기 뭐가 그래 부끄럽노.
니 나이 몇살인데 벌써 부터 여자 목깐통에 못 들어가노.
벌써 거게 털이라도 났나?
사내사 도둑질 안한 다음에사 이 세상에 부끄러운기 없는기라.
잘 묵고 잘사는 사람들이나 그런 체면 따지제,
지금 우리 처지에 체면 따질 기 뭐가 있다고."
어머니가 내 허리춤을 잡고는 목욕탕 쪽으로 마구 끌고가기 시작했다.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하여 여장부로 통하던 어머니는
그 억센 힘으로 뻗대는 나를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그 힘을 말라깽이 나로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내 허리춤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주먹이
두 차례나 머리통에 알밤을 먹였다.
이제는 아픈줄도 몰랐고 그저 서럽기만했다.

3

"봐라, 니만한 아아도 저게 여자 목깐통으로 안 드가나,
사내 자슥이 뭐가 그래 부끄럽다고.
그래 맘이 약해서야 이 험한 세상을 어째 살아갈라카노.
니는 애비 없는 집안에 맏이다."
어머니의 말에 나는 눈물을 닦던 손을 떼고
목욕탕 쪽을 바라보았다.
내 정도는 아니지만 국민학교 삼학년쯤
되어보이는 사내아이가 역시 나처럼 울음을 빼어물고
앙버팀을 해대었다.
내가 잠시 목욕탕을 바라보는 사이 어머니는
그 기회를 잡아 쫓음걸음을 놓듯 나를 이끌었다.
나는 이제 부끄러워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되리라.
계집아이들이 소문을 낸다면 모두들 손가락질하며 나를 놀리리라.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방정맞은 생각까지 하며 울음을 짜고 있었다.

<제 2부>

큰소리로 울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나를
여탕 쪽문 앞에다 세우더니 어머니가
그윽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 길남아, 고빼차 타고 서울서 내려올때
니만한 아아 시체를 한두번 봤더나.
그래 폭격맞고 죽었으면 목깐인들 우째 하게 되겠노.
이 세상 살아갈라 카면 앙심을 단단히 먹어야 되는기라.
사내사 도둑질 말고는 부끄러버할끼 아무것도 없는기라."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느덧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랬다.어머니의 말이 맞았다.
뚜껑 없는 무개차간에 앉아 사흘밤 사흘 낮이걸려
서울서 삼랑진까지 내려올 때,
나는 많은 시체를 보았었다.
논두렁에, 또는 산자락에 내던져진 시체는
어김없이 솔개나 까마귀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4


나는 내 또래 시체의 걸레 같은 가슴팍을 차고 앉아
눈인지 코인지를 쪼고 있던 수리 한마리를 본 적도 있었다.
만약 나 역시 그렇게 죽고 말았다면
이 땅위에 살아 있지 않으므로 부끄러워할
그 어떤 무엇도 없으리라.
어머니에게 떼밀리기도 했지만,
나는 이빨을 앙다물고 목욕탕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신발을 벗는 좁은 공간과 안쪽 마루청 사이에는
검정색 가리개가 드리워져있었다.
돈을 받는 창문 앞에서 살이 찐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서 있는 어른조차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였다.
아주머니는 마침 남탕 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어떤 남자 어른에게 거스름돈을 내어주고 있었다.
조금 전에 울며 들어간 사내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쪼매 꼬부려라. 몇 살이고 물으면 아홉살,
삼학년이라 캐라." 어머니가 귀엣말로 말했다.
나는 무릎관절을 조금 접었다.
삼학년은 무엇하지만 사학년쯤으로는 보이리라.
목욕탕안에서도 이렇게 꼬부장하게 행동한다면
그렇게 어린아이로 보아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벌서는 아이 처럼 돈받는 아주머니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어른 하나, 아아 하나."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아주머니에게 셈을 치렀다.
"쟈는 어른표를 끊어야 함더."
"쟈는 남탕에 들어가야지 여탕에는 안 됨더."
이런 말이 아주머니의 입에서 떨어질까보아
나는 조릿조릿한 마음으로 떨고 있었다.
그러나 아주머니 쪽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다.
목욕탕도 대목장날을 맞아 한창 성시를 이루어,
아주머니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문이 열리고 썰렁한 바람과 함께 네댓살된 계집애를 데리고
젊은 여자가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빨랫감을 그래 많이 들고 오면 됩니껴.
몸 씻을 물도 모자라는 판인데."
목욕탕 아주머니가 등을 돌리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5


"통만 컸지 뭐가 있다고. 보소,
여게 아아 내복 하나밖에 더 있는교?'
어머니가 함석대야를 싼 보자기를 비집어보이며 대꾸하였다.
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어머니 옆에 붙어 서 있었다.
그러나 목욕탕 아주머니가 나를 두고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들어가자."하며 어머니는 커튼을 젖히고 마루청으로 올라갔다.
고무신을 챙겨들며 곱송거린 채 선 나의 어깻죽지를 어머니가 당겼다.
예닐곱평 됨직한 옷 벗고 입는 마루청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눈앞에 갑자기 뭉글뭉글하고 번들거리는 살덩이들이 일렁였다.
여자의 알몸 중의 큼지막한 젖퉁이와 엉덩판의 움직임이
내 눈에는 엄청난 크기로 다가 들었다.
여자의 그 부분이 그렇게 큰 줄,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다가 벗은 몸을 보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남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여자몸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학교 계집애들이 나를 보면 어쩔까하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푹 숙인채 어머니의 버선발만
놓치지 않겠다고 따라 붙었다.
어머니가 커튼을 열어젖혔을 때 얼핏 내 또래의 계집애들도
눈에 띄었던 것이다. 냉랭한 공기 속에서
비누냄새와 덥지근한 습기가 코끝에 묻어왔다.
"와따, 목깐하는 사람도 많네. 옷 넣을 장도 없구마는."
어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어머니가
막 옷을 챙겨입고 빠져나가는 아낙네의 장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이구 오메, 길남이 쟈가 여게 들어왔네."
계집애의 입에서 터져나올 이런 비명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부끄러워져 몸을 감추기에는
그 쪽이나 내 쪽이나 별 차이가 없으리라 여겨지기도 했다.


6



아니, 계집아이 쪽에서 먼저 나를 보자마자
너무 부끄러워 몸을 숨길는지도 몰랐다.
옷을 벗으라고 어머니가 말했지만 나는 또 한참을 꾸물거렸다.
굴뚝을 빠져나온 듯한 덖은 때를 남에게 보이기가 부끄러웠고,
어머니의 멋은 몸을 보아내야할 내 마음 또한
난감하게 여겨졌다.
나는 옷장 앞으로 돌아섰다.
옷이래야 벗을 것도 많지 않았다.
웃도리만 벗고 허리띠도 매지 않은 바지만 까내리면 되었다.
내가 허리를 접은채 옷을 벗고 있었으므로 등뒤에서
누구인가 나를 보고 있을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런 큰 머슴애를 여탕으로
데리고 들어온 여편네가 도대체
누구냐는 핀잔말은 귀를 곤두세웠으나 들리지 않았다.

중략...

어머니의 엉덩판은 큰 박통 두 쪽을 엎어 놓은 듯했다.
그것은 마치 푹 쪄놓은 호박이듯 이미 탄력을 잃고 있었다.
나는 주름 잡힌 어머니의 펑퍼짐한 그 엉덩판에 붙어서서
샅 사이를 손으로 가린채 한껏 몸을 움츠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물기에 불어터진 나무 문짝을 당기고
탕 안으로 들어서자 확 끼얹혀오는 더운 습기가,
그렇잖아도 괴로운 숨길을 막았다.
목욕탕 안은 계단을 하나 내려가게 되어 있었는데
그 계단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는 하마터면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다.
목욕탕 안이 증기로 꽉 차 있는데다 귀를
멍멍하게 할 정도로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점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증기가 얼마나 찼던지 몇 발 앞 사람 조차
구별 할 수가 없었고, 목욕탕 안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7


물을 퍼내거나 좌르르 붓는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
나무 통이 부딪치는 소리, 더운 물을 더 넣어 달라고
손뼉을 치며 왜자기는 앙칼진 고함도 들렸다.
그렇게 만원인데도 출입문은 계속 여닫히며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나는 문득 지옥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어머니는 사람들틈을 비집고 창문이 있는 벽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창문은 바깥쪽에다 창호지를 발라두고 있어
부윰한 빛살이 밀려 들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엉덩판에 바짝 붙어서서
원숭이 꼬락서니로 뒤를 따랐다.
목욕탕 가운데에 평상 크기의 욕조가 있었다.
그 욕조는 내가 추측 했던 철모와 같은
둥근 놋쇠가 아니었고,
무릎 높이로 벽을 세운 네모진 시멘트 구조물이었다.
그 욕조를 빙 둘러싸고 머리카락을 감거나
때를 씻고 있는 여자들이 촘촘이 붙어 앉아 있었다.
더운 김이 푸짐하게 오르는 욕조 속에도 여자들이
술 취한 듯한 붉은 머리통이 와글 거렸다.
더러 머리카락을 물 위에다 풀어 흩뜨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달밤에나 나타남직한 귀신 꼴이었다.

8


지옥이다, 지옥.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저 끓는 물속에 여낙낙하게 들어앉은 여자들이야말로
그 어떤 건강한 농사꾼이나 군인들보다도 용감하다고 감탄했다.
그 욕조 속에서 내 또래의 계집애 하나가
힐끗 나에게 눈을 주었다.
단발머리에 턱이 뾰족한 계집애였다.
아랫장터 극장 어귀에서 독장수를 하고 있는
한첨지의 막내딸로, 이름은 알 수 없었으나
오학년 여자반 아이가 틀림없었다.
나는 제풀에 놀라 얼굴을 얼른 돌리고 말았다.
얼굴이 숯덩이처럼 화끈해 왔다.
이제 들통이 다 나고 만셈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마음 밖에 들지 않았다.
여탕이 아마 남탕과 붙어 있는지,
창문과 반대쪽 벽의 위가 트인 건너편에서도
우렁우렁한 남자들의 목소리와 물을 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담장보다 높아 그벽을 타 넘을 수 없다는게 아쉬웠다.
"아지매요, 쪼매 찡기 앉읍시더. 단대목이라고
우째 사람도 이렇게나 많은지. 일년 묵은 때를
몽땅 다 ??기는 거 같심더."
엄니가 꼬부장한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욕조 벽 앞에 비비대고 앉았다.
"난 누구라고, 강정때기네.
대구 산다 카더마는 제사 지내로 왔나?"
할머니가 자리를 조금 내주며 반갑게 말했다.

9


머리에다 젖은 수건을 쓰고 있어
나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도랑골 술이 할머니였다.
"제사는 대구서 지냅니더. 볼일이 있어서 다니로 왔심더."
어머니가 한 숨 끝에 달아 대답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내리 독자였으므로
고향이지만 재사를 모실 큰집이 없었던 것이다.
"참, 그렇제. 제사는 강정때기가 지내겠구마는.
그래, 그 후로 이서방 소식은 통 없나?"
"서방요? 잊아뿌리고 자식하고나 살랍니더.
전쟁 통에 죽은 남정네가 어데 한둘입니껴."
하더니 어머니가,"앉제 뭐 하고 섰노?"
하고 나에게 무슨 분풀이나 하듯 톡 쏘아 말했다.


<제 3부>

"우째 앉습니껴." 나는 울상이 되어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내가 앉을 만한 자리가 없었다.
내가 끼여 앉을까보아 옆의 여자가 엉덩판을 밀어 붙여
빠끔하던 자리나마 발 딛고 설 틈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려운 오줌을 꾹 참으며 나는 두 손으로 샅을 가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찡기서 앉는 기제, 누가 목깐통 자리를 돈 주고 샀나."
어머니가 버럭 역정을 내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발가벗은 채 달아나고 싶었으나,
행동만은 엉뚱하게도 그대로 퍼질고 앉아버렸다.
미끈거리는 물컹한 살이 닿아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구, 이렇게 질대 같은 머슴아를 여탕에 델고 들어오모 우짜노.
남사시럽지도 않는가베." 나에게 자리를 밀채인 아주머니가
뒤 돌아보며 팩 쏘아 말했다.
그 소리는 내가 여탕 안에 들어와서 남한테 당한 첫 수치였다.

10


나는 세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틀어박았다.
국민학교에 다닌 여섯 해를 통하여 가장 부끄럽던
기억 중의 하나가 그때 아주머니의 그 말이었다.
일학년 적에 나는 학교에서 바지에 오줌도 싸보았고,
생쌀씹는 맛으로 장날이면 빗면으로 깎은 대통을
쌀가마니에 찔러 쌀을 훔쳐내다가 싸전 주인에게 들켜도 보았고,
참외나 감서리를 하다 붙잡혀 두 시간이나 뙤약볕 아래
꿇어앉아 있어도 보았지만,
그때 아주머니의 그 말만큼 나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아주머니의 팩 쏘는 말이 되먹잖은 강짜라는 듯
들은 척도 않았다.
함석대야 속의 내 빨랫감을 집어내어 옆에 놓고,
대야를 싸왔던 수건으로 허리 아래를 덮었다.
나도 얼른 빨랫감 하나를 주워 아랫도리를 가렸다.
어머니가 쓰고 왔던 머릿수건이었다.
나는 이제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지옥에 떨어진 몸,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참고 있던 오줌을 누워버렸다.
시원하기야 그지 없었지만 주위에서 뜨뜻한 오줌 벼락을 맞고
지청구를 떨까보아 수꿀하기도 했다.
때맞춰 어머니는 대야로 탕 속의 물을 가득 퍼내더니
그 물을 나의 머리에다 좌르르 부었다.
화끈한 뜨거움이 전기처럼 온몸을 저렸으나 씻겨내려갈
오줌을 생각하니 견딜 만한 뜨거움이었다.
입속으로 흘러드는 물을 푸푸 뿜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훑어내렸다.
탕 속의 물이 생각했던 것 만큼은 뜨겁지가 않았다.

11

나는 눈을 비비고 눈썹에 맺힌 물기를 털어내느라
깜박이던 눈을 떴다.
그제서야 나는 눈앞에 늘어져있는 어머니의 젖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울산댁 할머니의 젖 처럼 쭈글쭈글하지는 않았지만
오뉴월 쇠불알 처럼 축 늘어진 볼품없게 말라버린 젖이었다.

중략

나는 조금 측은한 마음이 되어 어머니의 축처진 젖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도 여느 아주머니들 처럼 저렇게 늙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서른 중반, 그 나이쯤에 이르면 보여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모성애, 너그럽고 풍만한 아름다움을
다 함께 잃고 있었다.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는 우리 집안의 생계를 떠 맡아
애 옥살이 고생에 시달리느라 행복과는 먼 거리에 있기도 했다.
자식을 먹이기 위해 당신은 하도 굶어 매운 성깔만 남았을 뿐,
몸은 이미 부대자루처럼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뒷날 어머니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말하였다.
"그때 내 심정은 악으로만 꽉 차 있었데이.
사는 게 무언지 돌아볼 짬도 없었고,
그저 어떡하모 너그들 밥 안 굶기고 공부를 시킬꼬.
그 일념밖에 없었느니라."
그런 경황에서도 고향으로 내려올 때 이미 내 몸을
씻겨주기로 작정하고 있었으니, 어머니의 그 청결벽은
참으로 갸륵하다 할 만했다.

12


어머니는 나의 몸에다 몇 차례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나는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까맣게 덖은 때를 누가 볼까보아 창피스러웠다.
사실 요즘에 그런 몸으로 목욕탕에 갔다면 모두 한마디씩
입을 대거나 눈흘김을 보냈겠지만 그 시절이야말로
도회지인들 한달에 한 번 목욕탕을 이용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모두들 그렇게 홑옷 한 벌 입은 셈치고
때를 끼우고 살았던 것이다.
"이래서야 정말 욕 먹을까봐 탕 속에 들어갈 수 있겠나."
어머니는 오른손 엄지로 내 몸의 겉때를 벗기기 시작하였다.
슬슬 문지르는데도 밀려 떨어지는 까만 때가 마치
수채 속에서 기어나온 구더기 같았다.
두 팔다리와 등짝과 가슴팍의 겉때를 물을 끼 얹어가며
대충 벗겨내자, 어머니가 말했다.
"인재 탕속에 들어가거라. 우묵이 되도록 몸을 푹 불궈라."
내가 수건으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일어서자
어머니가 그 수건을 빼앗아가버렸다.
탕안은 열댓명 정도의 여자들이 들어차 있었으나
내 한몸 끼워넣을 틈은 충분했다.
나는 한 손으로 자지와 불알을 가리고 몸을 옹송그린 채
욕조의 낮은 벽을 타 넘었다.
두 발 부터 물속에 잠갔다.
발 끝에서 부터 신경을 타고 뜨거움이 짜르듯 몸으로 번져왔다.
물 속에는 벽을 따라 앉기 좋은 계단이 한 칸 있었다.
계단 아래 바닥에 발을 딛고 정강이 위까지 물에 잠그자
담긴 부분의 살갗이 가렵고 따가와왔다.
더 이상 탕 속에 들어가 웃몸까지는 물에 담글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물은 자꾸만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13


"니 몇살인데 누구하고 여게 들어왔노?"
앞에 앉았던, 앞니가 숭숭 빠진 할머니가 나를 보고 물었다.
장터거리에서 더러 본 듯한 얼굴인데 잘 모르는 할머니였다.
"쟈가 장텃걸 울산때기 집에 얹혀 지내는 길남이 아닌가.
그런데 쟈가 누구하고 여탕에 들어 왔을꼬.
장날이라 울산때기는 장사하고 있을낀데."
할머니 옆에 머리만 내 놓고 있던 식이 엄마의 말이었다.

<제 4부>

식이는 삼학년으로 식이 아버지는 읍사무소 서기였다.
"저래 큰 머슴아를 여탕에 델고 들어오면 되는강.
델고 온 사람도 문제지마는 돈만 알고 저런 아아를
여탕에다 디리 보낸 주인도 문제가 있는기라.
" 낯선 아주머니의 구시렁거리는 말이었다.
나는 여러 사람의 지청구가 듣기 싫어
얼굴이 빨갛게 되어 몸을 바깥쪽으로 돌리고 말았다.
마치 그런 지청구에 복수라도 하듯 눈을 질끈 감고
유황불 지옥속에 팽개치듯 몸을 풍덩 담갔다.
사내자슥은 도둑질 아니면 부끄러운 기 없는기라.
어머니의 말을 이제 내가 되뇌었다.
그러나 물이 엄청 뜨거워 다시 불끈 일어서자,
언제 알아차렸던지 어머니의 손이 내 여윈 어깻죽지를 눌렀다.
"애비없는 설움이 어데 한두가진가. 참아야한다.
훗날 웃으며 이런 말할라카면 참고 견뎌야한다."
욕조 안에 있는 여자들이 들으란 듯 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중략

14



탕물은 더러웠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물이 뿌옇게 흐렸다.
햇볕 속에 떠도는 먼지처럼 불순물이 들끓었고
때가 버캐같이 거품을 이루어 떠다니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섞여있었다.
그러나 아녀자들은, 어 시원타, 조?눙립?하며
욕조안의 뜨거움과 더러움을 더불어 즐기고 있었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퐁퐁 나구려,하며 타령을 읊거나,
하나에 둘이요 둘이에 셋이요, 하며 셈을 하는 늙은이도 있었다.
욕조안에서 바깥을 살펴보니 삼면벽의 낮은 위치에
수도꼭지들이 붙어있었다.
그러나 찬물만 나오고 더운물은 나오지 않는지
모두 욕조의 물을 퍼내어 썼다.
머리카락을 감고 있는 어머니에게 "이제 나가도 됩니껴."하고
내가 두번씩이나 물었으나 어머니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한참뒤 다시 물으니, 더 있으라는 한마디 대답이었다.
어머니는 빨랫비누로 지겹지도 않은지 머리카락을
네번이나 감으며 참빗으로 긴머리채를 긁어내렸다.
내 얼굴이 술 취한듯 달아오르고 어지럼증으로
눈앞이 핑핑 돌 때에야 어머니의 ,
나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내 손가락과 손바닥이 지도의 등고선 처럼
오돌오돌해진 것은 자주 보아왔지만 볼 때마다 신기했다.
뜨거운 물에 오래 담갔다 꺼내면 손바닥과 발바닥이
왜 그렇게 되는지, 그 뒤 누구에게 물어도 딱 분질러진
대답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거짓말을 하거나 죄를 지었을 때도 한동안은 없어지지 않는
표적이 이렇게 남는다면 하고 생각하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느낌보다 두려운 마음이 더 앞섰다.
어머니의 때 씻기는 데는 반드시 일정한 차례가 있었다.
먼저 수건을 빨아 불끈 짜서는 그것을 마치 두루미알처럼
손아귀에 넣기 좋게 둥글게 뭉쳤다.
그리고 뭉친 수건에다 때밀이 수건을 한겹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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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손에 끼워서 때밀이에 쓰이는 수세미 같이
빳빳한 목욕타월이 있어 힘덜 들이고 한결 수월하게
때를 밀어내지만, 그때만 해도 때밀이 수건은 물론
감촉 좋은 보풀한 타올조차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수건이라면 대체로 무명이라 머리에 쓰기도하고
닦기도 했고, 밥술 걱정을 놓은 사람이래야
명주수건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늘 때밀이로 쓰는 수건을
따로 준비해 두었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약탕관의 약 짜는데나 쓰기에 알맞은 손수건 만한
삼베수건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 수건은 고향 바닥에서 당장 준비할 수가 없었으므로
대구에서 가져온게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고향 목욕탕이 문을 여는지 어쩐지는 몰랐겠지만,
물을 데워 울산댁 뒤꼍에서라도 내 몸을 씻겨주려고
대구에서 부터 단단히 벼르고 내려왔음을 나는
그 수건을 보고서야 알아차렸다.
서울에서도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목욕시킬때
꼭 때밀이 수건을 따로 두고 썼던 것이다.

중략
<토마토의 말...예전에 길남이가 어머니랑 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살 았을 때 입니다.>

우리형제가 목욕탕에 가는 날은 늘 정해져 있었다.
한달의 마지막 주 일요일 새벽이었다.
깨끗한 첫 물에 목욕을 해야 좋다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고 나면 어머니가 목욕수건과 비누를 챙겨주었다.
타올 한 장, 예의 때밀이에 쓰는 손수건 만한 광목수건,
빨랫비누,그리고 미제 아이보리 비누였다.
평생 옷한벌 마음놓고 해입지 않았고 늘 먹고 싶어하던
돼지고기 한근 들퍽지게 포식 못한 어머니가 그때로서는
과분하다 할 만큼 세수 때만은 반드시 미제 아이보리비누를
썼던 점은 지금 생각해도 묘한 느낌이든다.
국산세수비누의 질이 좋지 않을 때이기도 했지만,
미제 아이보리비누는 잘 닳지 않고 거품이 잘나며
우선 크기가 마음에 든다는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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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누는 빨랫비누 만큼 컸으므로 늘 두도막을 내어
한 쪽은 은박지를 붙여서 썼고, 닳아져 딱지만큼 납작해지면
새 비누에 붙여서 썼다.
어머니는 목욕탕에가는 나를 붙잡아 세우고는
좀 분이 섞인 목소리로 늘 판에 박힌 말을 했다.
내가 길남이 너를 못따라가니 내가 너 씻겨줄 때 처럼
돈 낸만큼 철저히 때를 씻고 와야한다.
너는 물론이고 동생의 때를 씻겨줄 때도 마찬가지다.
두 시간 반 이내에 돌아올 생각을 말거라.
목욕 갔다오면 시간도 따져보고 몸검사도 하겠다.
때를 밀기 전에는 탕속에 십오분은 들어앉아 몸을 푹 불려야한다.
머리는 네번 감고, 특히 사추리 사이를 잘 씻어야한다.
비누는 쓰고 난뒤 물에 젖지 않도록 반드시 마른 데다 두고,
세수비누는 아껴써야 하니 낯 씻을 때 이외는 써서는 안 된다.
나와 아우는 어머니의 이런 당부말을 듣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목욕탕까지 가는 시간과 오는 시간을 빼고
두시간 삼십분 정도를 탕 안에서 보내기란 참으로 고역이어서,
한 시간쯤 지나면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우와 목욕탕안에서 장난질로
시간을 보내며 탈의장의 벽시계를 자주 훔쳐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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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약속한 시간을 겨우 맞추어 허기진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그 특유의 감사나운 눈길로
나와 아우의 몸을 꼼꼼하게 살폈다.
한번은 귓바퀴에 비눗물을 그대로 묻혀와
숯포대 회초리로 종아리 까지 맞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겉 살갗은 물론 위장 또한 깡그리 빈 상태에서
개운한 기분으로 늦은 아침밥을 먹을 때의 상쾌감이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맑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어머니는 두루미알 처럼 둥글게 뭉친 수건의 겉면에다
역시 물기가 적게 볼끈 짠 때밀이 삼베수건을 쌌다.
그렇게 해서는 왼손으로 나의 오른손 손가락 끝을 잡고
엄지부터 때를 밀기 시작하는것이다.
다섯개의 손가락을 판장이가 판 다리에 옻칠 올리듯
한 번이 아니고 두세번에 걸쳐 꼼꼼하게 때를 밀곤 다음
차례인 손가락 사이와 손바닥으로 옮아 갔다.
손바닥에도 묵은 때가 앉을 틈이 있는가 모르지만
어머니는 반드시 손바닥을 씻어주었고 발바닥은 간지러움으로
몸을 비트는 나를 꾸짖어가며 목욕탕바닥에 굴러다니는
구멍 숭숭한 돌을 찾아내어 박박 밀어 주었다.
그렇게 하여 양쪽 팔이 모두 끝나면 머리.목. 가슴.등. 엉덩이.
허벅지. 다리로 차례에 따라 때를 밀었다.
그런데 때밀이를 할 때 어머니의 표정이나 그 힘쓰는 정성은
마치 불공대천 원수를 만나 피를 말리는 싸움을 방불케 하였다.
아니면 살갗의 얼룩점까지 지워내겠다는 가증스러운 모질음이었다.
이 말은 과장이 나이라, 나는 어머니의 때밀이 때
그 용쓰는 행동거지를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자식들의 몸을 씻기고 났을 때 당신 스스로
탈진이 될 정도 였으니 늘 하는 말 처럼, 너들 씻기고 나면
널치(어원을 알 수 없지만 경상도 남부 지방의 사투리로,
기력이 다하여 넋이 빠질 정도라는 뜻)가 난다는 말이 제격이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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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수....

<마당 깊은 집> 은 육이오 소설이며,
동시에 추억의 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들은 김원일의
다른 어떤 소설보다 자전적이며,
김원일로서는 이제쯤 자신의 얼굴로 되돌아볼 때쯤
되었다는 대가스러운 문학 의식이 배어있는 작품들이다..

...김주연의 해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냄...

원제<마당 깊은 집>

토마토의 잠깐 토크!!!


저는 지금 아파요....
며칠 있다가 곧 올립니다.
열분 !!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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