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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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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43


BY 녹차향기 2001-01-14

어찌나 찬 바람이 불어오는지, 부엌에 난 작은 창문 앞에 주렁주렁 애기고드름이 열렸어요. 창의 고 작은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창문샷시엔 하얀 얼음이 그림처럼 끼어있고요. 그 창문 너머론 은은한 불빛의 서부간선도로가 보이고, 자동차 꽁무니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차들이 어디론지 바쁘게 질주하고 있는 일욜 밤.

현장 일 때문에 남편은 어제 숙직을 하느랴 못 들어오고, 혼자 누워자려고 하니 얼마나 춥고 또 허전한 지 자꾸 뒤척이며 깊은 잠에 이루지 못하였어요.
자다가 춥거나 아님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때 품 안을 파고 들어가 잠깐이라두 있으면 다시 깊은 잠을 이룰 수 있는데, 옆에 없으니 허전하더라구여.
어떤 분은 남편이 없어야 활개치며 편안하게 잠을 잔다고 하는데, 저는 결코 그렇지 못한 편이라서....

늦도록 텔레비젼을 켜 둔 채, 책을 읽었는데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
였어요.
이제 30대가 끝나려고 하는 즈음에 이 책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행여 30대를 보내면서 내가 하지 못한 어떤 것들이 있는 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 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거기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찾았는데,
'세상물정 다 아는 듯한 표정은 그만두자'
라는 것이었지요.

20대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열심히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했었는데, 결혼 후 직장을 포기하고 집에 들어 앉았지만 제가 없이도 직장은 잘만 돌아가더라구여. 제 후임자들이 저 보다 일을 더 못할 것이란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고 환상속에 살았음을 깨달은 거예요.
그때의 허탈감....이란...

그리고나서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런 저런 갈등으로, 육체적인 노동으로 무척 힘들고 자살을 할까, 이혼을 할까, 촌구석으로 들어가 풀뿌리라도 캐먹으며 살까... 별별 고민을 다 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달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되었지요...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으면서 그래...다 경험이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보면 같이 눈물 흘리며...그래..그게 인생이야..
이렇게 일찌감치 늙은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쳐다보았어요.

얼굴이나 몸은 아직 40,50대와 사뭇 다르지만 이미 생각은 늙은 사람과 다름없어 졌음이, 패기와 정열, 내가 하고픈 인생의 나머지 일들에 대해 도전정신이 사라진 것에 대해.....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세상을 모두 안다는 듯한 지리한 표정을 한 거울 속의 한 여자,
그게 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몹시 서글프답니다.
'어차피 이 세상 어디에도 내 일은 없을 거야...'
'여자의 힘으로 무얼 하겠어? 그저 남편이 갖다주는 돈으로 알뜰살뜰 살림 하는 게 최고일 거야...'
'여지껏도 잘 되어 본 적은 없잖아. 앞으로도 뭐 특별하겠어?'

메말라 버린 감성만큼이나 메말라 버린 열정.

그런가요?
30대는 이제 고작해야 인생의 절반 지점에 당도한 시기이기 때문에 아직 활용해 보지 못한 내 안의 열정과 잠재의식과 수많은 파워를 불러일으킬 때인가요?
아줌마이기 때문에 옴쭉달짝도 못한다는 것은 순전히 핑게에 지나지 않는걸까요?

왠지 할머니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사는데...
마음 속에 있는 정열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호기심, 열정, 패기, 신념, 의지....
이런 것들이 다 다음 세대로 넘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아름답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텐데.

추운 바람 때문인지 마음도 추워지는 느낌이랍니다.
뜨거운 열정이 무척 그리워지는 밤.

모두 문단속 잘 하시고, 보온에 신경 쓰세요.
낼은 더 춥다고 하니 되도록 외출도 삼가하시고, 감기에 유의하시고요.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