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가 아직 이유식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나의 극성맞은 아토피 피부에 질려, 달이만큼은 아토피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희희낙낙하며 지내게 하리라는 알찬 포부를 가슴에 품고 이유식을 보통 아이들보다 다소 늦은 생후 5개월이 지난 12월 초순께에 시작하였다...
이유식을 시작하며...
나는 모 소아과 전문의가 쓴 육아책을 마르고 닳도록 탐독한 뒤 이유식의 초기에는 적함하지 않다는 여러가지 곡물, 채소의 이름과 초기에도 무난히 수용할 수 있다는 음식물의 이름을 적은 표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책에서 가르쳐준대로 일주일에 한 개씩...음식물을 첨가했으며... 그것도 첫날은 한 숟갈.. 둘째날은 두숟갈..을 먹였으며 게다가.. 약간의 두드러기 조짐이라도 양쪽 볼에 보이는 날엔 즉각 그 음식물의 투여를 중단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이유식을 시작하기전...
그리고 시작하고 얼마동안...
나는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나의 이유식 노하우를 담은 내용과 달이의 육아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한 일련의 육아일기를 한데 묶어 한 권의 책으로 편찬할 야무진 꿈을 내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무료한 육아에 다소나마의 활력을 불어넣었더랬다...나는 잠깐씩 짬이 생기면.. 나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책의 제목과 그 내용의 구상에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달이가 이유식을 시작한지...
보름이 지난 지금....
나는....
내가 처음에 세웠던 많은 이유식의 원칙들이 다 무너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한숟갈을 먹이자고 한숟갈을 만들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러다 보면.. 한 숟갈을 먹여야 하는 때에도 여러 숟갈을 먹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유식을 시작하는 엄마가 가장 주의해야 할 원칙이라는 "아이가 먹기 싫어 하는 것을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대원칙을 무시하고.. 눈물로 거부하는 달이의 입속에 무자비하게 음식물을 털어넣기도 하는 어이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나는 할인매장에 가면 항상 조그마한 유리병에 먹음직스럽게 담겨 생후 2개월 복숭아.. 생후 4개월 바나나.. 이렇게 적힌 시판이유식을 침까지 흘리며 쳐다본다..
나는 오늘도... 걸핏하면 두드러기 증세를 보이는 민감한 달이의 양쪽볼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유식을 끓인다.. 내일은 달이가 난생처음으로 채소를 먹는 날이다.. 이제까지.. 그녀는 쌀.. 보리... 찹쌀..의 곡류만을 먹었다.. 내일은 채소의 시작으로 나는 무를 준비하였다.. 그녀의 입맛에 딱 맞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녀가 잠든 늦은 밤, 무를 정성스럽게 삶아놓았다...
책이고.. 뭣이고.. 그 야무진 희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지금..
얼른 이유식이 끝나고....
26년 전 10개월짜리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된장찌개에 고추장을 얹어 맛깔스레 비벼놓은 밥 한공기를 우리 두 모녀가 사이좋게 뚝딱할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