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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BY 후리랜서 2000-12-18

아침부터 잔뜩 날씨가 흐려서인지 내가 힘들게 지나왔던
시간들이 애를 쓰지 않아도 떠오른다.
워낙 기분에 많이 좌지우지 되는 성격인지라
기분이 좋을땐 사는게 축복이라 생각했다가,
또 기분이 안 좋을땐 사는건 형벌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시젯말로 웃기는 짬뽕이 아닐수 없다.

불과 몇해 전 남편이 지방에 있어 일주일에 절반 가량은
어쩔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어 남들보다는 몇곱절은 더
지레 마음고생을 겪어야만 했던 그 시절...

서로 노상 붙어 살던 때는 잘 느끼지 못했다가
떨어져 살고보니 남편의 얼굴에서 쓸쓸함만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내 마음도 걷잡을수 없이 쓸쓸해지고 황폐해 갔다.
사랑이 마구 넘쳐나도 모자랄 판국에
끝도 없는 불신과 알수 없는 증오심이
잡초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떨어져 살면서 생겨난 쓸쓸함을 회복할 시간도 없이
다시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만남은 짧고 다시 이별하는 시간은 어이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지옥같던 시간이 그렇게 2년을 지났을까?
아이도 없는데 이렇게 떨어져서는 살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우리 하루를 살더라도 좀 웃으며 살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사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친정 가까이 살고 있어서 엄마가 못내 서운해 하셨다.
막말로 남편한테 여자가 생겨서 이사를 하는거라면
친정엄마가 용서를 해 주셨을까?
"엄마품보다 서방님품이 좋다 그거지?" 싶게
말도 안되는 질투(?)까지도 내보이셨던 엄마였다.

정들었던 풍경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
나를 낳아준 엄마곁을(결혼을 해서도 줄곧 친정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엄마는 그때에야 비로소 나를 시집보낸 느낌을
가진듯 했다)
뒤로하고 떠나왔던 타향살이...

떨어져 살던 남편과 다시 합치고 보니
내게 언제 그렇게 아팠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흔적도 없이 감쪽같이 새 살이 돋아났다.

"부부가 헤어질려면 애 있어도 헤어진다.
애 없다구 헤어지니?"라며
아이없음을 자학하던 나를 끊임없이 위로해주고
염려해 주던 친구들이,
"그래 서방님품이 좋긴 좋구나? 니 엄살은 국보급이다,야"라며
지금의 나를 보고 시도때도 없이 농담을 건네 온다.

상처란 누구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굴레 때문에도 어이없게 생기는게 아닐까?

훌쩍 높아진 하늘을 보고 계절이 깊어짐을 깨닫게 되듯,
오랫만에 눈을 들어 보는 하늘에 처음처럼 놀라듯,
또 하나의 깨달음이 생소한 기쁨으로 다가오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