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 9개월째 접어드는 신혼단꿈의 새댁입니다.
요즘처럼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과 맑고 푸른 하늘을 보노라면 저의 소박한 어린시절의 아버지와 함께한 그 가을 들녁의 추억이 아련하기만 합니다.
어제는 책장정리를 하다가 10년전의 쓴 빛바랜 일기장을 읽고 지금은 10년이란 시간 안에 묻혀져 버린 아버지의 내음들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꼬꼬닭이 울고 뒷집 개짖는 소리에 아버지의 하루일과는 시작 됩니다. 소죽솥에 불을 지피고 마굿간에 누워있는 소 궁뎅이를 때려서 마당으로 몰고 와서 묶습니다. "외선아이~ 아직도 자나 일났으믄 내카 짚단 좀 실으러 갈래?"
아침이 채 오기도 전에 새벽안개 속에서 속삭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게만 들려왔습니다.
"니는 마 앞에서 소 고삐만 잡아주믄 된다" 평소 당신혼자 묵묵 하게만 일을 하시더니 나이 탓일까 힘에 겨워서일까. 언제 부턴가 이거좀 해줄래 하시던 아버지 였습니다.
모처럼의 휴일이라 푹자보려고 했던 내 야무진 꿈을 포기하고 아버지 따라 소레 논으로 향했습니다.
희미한 안개더미 속에서 아침을 깨우는 경운기 소리와 이곳저곳 논바닥 위에서 허연 거품을 내뿜는 억센 소들이 시골의 아침을 엽니다. "이~랴 워디 워디 워디 와이라노 이 소가~" 무거운 짚단을 너무 많이 실은 탓인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소에게 아버진 성질이 급해서 빨리 가자고 야단 이십니다. 우리집엔 경운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느린소와 조그만 리어커로 운반 하니까 열번도 더 왔다갔다 해야 했습니다. 다시 아버지의 굵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랴 워디워디 워디 똑바로 가자 워디워디" 고삐를 잡은 나역시 "이랴" 를 외치며 아버지와 한곡조가 되어 짚단 나르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어제 나는 비가 오고있는 논둑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많이 걸었던길. 물주전자 배달을 많이 했던길. 미꾸라지 잡으로 많이도 따라 다녔던 논두렁밑과 도랑길은 아버지가 밟아서 흑탕물로 가득 했으나 지금은 마냥 깨끗하고 다소곳이 물살만 흐르고 있습니다.
아버지... 몇가닥의 머리카락이 바람을 실을때면 깊은 한숨과 먼산을 바라 보시던 아버지. 깡마르고 검게 탄 얼굴. 움푹패인 세줄무늬 이마 주름살은 언제나 욕심없어 하는 당신 겸허한 모습이요. 자식들의 대한 한밑천의 밑거름의 헌신이요. 흙과 함께한 한세월의 대한 한농부로서의 댓가 였을까요...
꼭두새벽같이 일어나 큰기침 두어번 하고 삽한자루 달랑 어깨메고 팔자걸음으로 들에 나가시던 아버지는 어느날 물논에서 삽질 하시다가 고혈압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시고 한달후, 내 등록금 때문에 소파던날 우리집은 아버지 장례식 못지않게 가슴아파 해야만 했고 어머닌 대성통곡 하셧습니다.
"저소는 너거 아부지데이 너거 아부지와 십년을 넘게 같이한 소데이" 어머닌 팔려버린 소장수 옆에 따라가는 소등을 만지면 끝내 눈시울이 붉어 목이 메었습니다. 우리집의 기둥이자
시골 논밭의 거름이었던소. 새끼도 많이 낳아 우리집 살림을 톡톡히 해주었던소. 그런소를 팔고난 어머닌 아버지의 분신을 잃어버린듯 그렇게도 모진가슴 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묻힌 아버지. 고생속에서 육십사년생을 고스란히 마감하신 아버지.
풀벌레울고 비가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면 아버지 따라 바게스들고 미꾸라지 잡으러 가던 날이 간절 하기만 합니다. 논둑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아버지가 풀잎으로 찬찬히 감아주시던 그때. 오늘처럼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보면 나는 앞에서 소고삐를 잡고 아버진 뒤에서 이랴를 외치며 짚단 나르던 가을들녁이 마냥 아름답고 그립기만 합니다.
아버지가 가신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에 많이변하고 많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어머닌 기력이 쇠약 하시어 매일 약으로 견디시고 큰오빠네가 새아파트로 이사갔고, 작은오빠가 과장으로 승진하고 언니가 딸둘을 낳았고 나는 결혼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땀내음 풍기는 아버지의 검게탄 얼굴. 움푹패인 세줄무늬 이마 주름살은 우리 사남매의 가슴에 영원히 스며 들 것입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아버지의 굵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하얀 구름속으로 울려 퍼집니다.
"이랴 워디워디 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