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836

커피향에 생각나는 사람


BY 칵테일 2000-11-23


커피향에 생각나는 사람


오늘 저녁 밖에서 식사를 하면서,
유리잔에 뜨거운 커피를 담아 마셨다.

요즘은 고기집조차도 식사후에는 손님들에게
그런 친절한 서비스를 한다.

설탕만 넣은 커피를 앞에 놓고 있으면,
더욱 향긋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그 커피향을 맡다보니, 옛 생각이 난다.
그것은 옛날 애인도 아닌,
나의 처녀적 시절도 아닌....
더 오래전, 나 어릴 적 우리 동네 아저씨 한분.

가난하고 초라한 삶을 사는 홀로된 아저씨였다.
언제나 조용하고 없는 듯 살아가는 그 분이,
어쩌다가 커피맛을 알게 되셨다.

멕스웰하우스커피....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선전인데,
그때는 꽤 멋있게 보여 누구나 마시던 인스탄트커피.

그 분은 가끔씩 커피를 얻어마시기 위해,
우리집을 찾아오시곤 하셨다.

그분이 우리집에 놀러오시면,
아버지께서는 묵묵히 작은 주전자를 찾아
불 위에 올려놓으셨다.

꾀죄죄한 차림, 궁상스런 표정,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한쪽 마루에 걸터앉은
초라한 모습.

그분이 오시면 새어머님은 인사도 없이,
방에 들어가 내다보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그냥 조용히 그렇게
그림처럼 가만히 앉아 계셨다.

내가 알기로 우리 아버지는 커피를 평소에
즐기시는 분이 아니신데도,
이상하게...... 그분과 늘 커피를 드셨다.

프림과 설탕을 어떤 비율로 섞어드시는지,
어쩔 땐 그냥 한약처럼 쓰디쓴 블랙을 드시곤 했다.

그러면 속버려.... 좀 넣어서 먹어.
이렇게 나직히 아버지께서 일러주셔도,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신 채...
그저 조용히 쓰디쓴 블랙커피를 드시던 분.

그렇게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드시고 나면,
더 이상 머무를 뜻이 없는 것처럼...
불현듯 일어나 휘적휘적 바람처럼 가버리시기도.

그분이 가시고 나면,
나는 줄래줄래 아버지곁에 다가가...
항상 똑같은 질문을 했다.

저런 분이 왜 커피를 마셔?

커피는 누구나 마시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못써.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나무라시던 나의 아버지.

그분은...... 커피가 유일한 낙이신 분이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집엔 커피가
자주 떨어졌다.

보약을 달여먹듯 항상 조석으로 마시는 커피.
그 커피가 바닥나면 우리집을 찾아오시는 거였다.

너무나 가난하고, 또 찌들려서....
한끼의 식사를 마련하기도 허덕이던 그분에게
커피는 쌀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유일한 기호품.

그렇지만 그의 구부정하고 추레한 인상이,
웬지 오래도록 잊혀지지가 않는데.....


오늘..
남편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잔(유리 커피잔)을 두손으로 감싸안으니
왜그런지 모르게 그 아저씨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미군부대 다녔다던, 먼저 간 아들이
아버지께 선물로 주었다는 커피.
그래서 처음 마시게 되었다는 커피.

이미 죽고 없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처럼 애타게 커피를 원했던 것은 아닌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 쓰디쓴 커피에 오롯이 녹아있었던 것은 아닌지.

공교롭게도 남편이 하는 이야기 또한,
먼저 간 지인에 대한 이야기.

그 쓸쓸함에 대하여,
나 또한 짙게 밴 커피향을 맡으며....
지나간 순간을 녹이듯 그 어린 날이 떠올랐나보다.

그리움은......
커피보다 더욱 쓰디 쓴 맛이라는걸,
이제 나도 알 나이이기에.


커피향에 생각나는 사람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