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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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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반지


BY 베티 2000-10-27




<남편의 반지>

어쩌다 보니 손가락에 낀 진주 반지가 링만

썰렁하게 있고 진주는 사라지고 없었다.

셋째 언니가 올 생일에 선물로 해 준 것인데

고무장갑 끼고 빨래를 하다 그런건지 설겆이를

하다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볼품없어진 링을 빼다보니 남편의 반지에 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린 약혼식 때 서로 반지만 주고 받았다.

그나 나나 보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형식상으로 반지만 주고 받았는데 종류는 둘다

루비반지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반지를 끼고 다닌 것은 신혼

때 잠깐이었다.

처음엔 반지 때문에 손가락에 습진이 생겼다면서

안 끼면 안 되냐고 했다.

그래서 보았더니 반지가 작아서 하얗게 피부가

변해 있었다.

가만 있을 내가 아니지, 그걸 가져다 늘려 주니

별 수 없이 낄 수 밖에...


남편은 그 이후로도 반지 끼는 걸 무척

부담스러워 했다.

선뜻 빼지는 못하고 반지가 무겁다고 호소해 왔다.

그러나 나의 압력에 쉽사리 빼지는 못하고 회사에

갔다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반지를 빼놓는

일이었다.

주머니에 빼서 넣고 다닐 때도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냐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혼 반지를 끼고 있는 그의 친구라도 만나게

되는 날은 남편은 나한테 적지 않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반지를 꺼내 놓고 가는 횟수는 늘어났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출장 갈 때만이라도

끼도록 했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 몇 번.

그래서 기념일만 끼도록 내가 한 발 더 양보를 했다.


그 당시 남편은 술 마시게 되는 날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묘안을

하나 짜게 되었다.

그건 12시가 넘어서 귀가를 하면 그 이튿날은

반지를 끼도록 벌을 주겠다는 거였다.

그토록 싫어하는 반지니 일찍 들어올 것이라는

계산과 하루라도 반지를 더 끼게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내가 남편의 반지에 집착을

했는지...

하지만 그것도 별 효과가 없었고 나 또한 아이들

키우며 살다보니 반지에 대한 생각들이 무디어져서

어느 곳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쳐 버렸다.


한 때는 반지를 열심히 끼고 있는 남자를 보면

그 부인은 참으로 행복한 여자구나 하고

부러워 하고, 어떻게 하면 반지를 낄 수 있게

할까 하고 이 궁리 저 궁리 했는데 한편으론

그러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왜 그래야 하는 지 속도 상했다.

반지를 안 낀다고 해서 나에 대한 사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반지를 끼고 있다해서 없는 사랑이 생

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 호승시인이 쓴 글에, 반지란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고 그 원 안에서 벗어나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 데

그 글을 남편에게 의기양양하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럼 남편은 날 보고 왜 반지를 안 끼는냐고 묻는다.

여자들은 사실 반지를 끼고 있으면 집안 일 할 때

거추장스럽다.

고무장갑 낄 때도 걸리고 설겆이나 청소를 하다보면 때

도 많이 끼게 되고 말이다.


한 동안 아이 키우느라 반지나 목걸이 빨찌등을

다 빼 놓고 생활하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다음에 끼워보니 정말로 손가락이 불편하였다.

무거운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나도 반지를 하나도 끼지 않게 되었다.

그 반지들은 지금 빛을 발하지 못하고 어느

구석에 감춰져 있다.

지금은 반지를 두고 사랑을 탓 할 나이는 훨씬

지나 버렸다.

내 마음 속에 반지를 가두어 두고 거기에 집착했던

내가 이제야 비로소 자유로워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