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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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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지...내가 스타크래프트 갈커줄께..


BY 주전자 2000-10-23

다섯 살 박이 아들녀석이 아침부터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는 중이다.
발음도 서투른 스타퍼트를 외치면서..
그 게임은 아들아이가 지 형이 하는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모양이다.
달리 하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양새가 수준급(?)이다.
그것을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준다며..
녀석이 종이와 연필을 들고 와서는
할아버지집 전화번호를 써 달란다.
그리곤 적어준 쪽지를 보면서
연신 서투른 손 놀림으로
몇 번이나 전화버튼을 누르고 누르더니
드디어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해서 가만히 듣고 있자니
속내가 여간 아니다.
대뜸 하는 말이
"할부지, 우리 집에 와,내가 스타퍼트 갈커줄께 빨리 와"
그렇게 저 할말만 하고는 전화를 내려 놓는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서,
그러고는 "엄마 할부지 온대" 하면서 신이 났다.
십 여분도 채 안돼서 녀석은 할아버지가
왜 안 오느냐고 투정이다.
할아버지는 아파서 못 오신다고 하니
아인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
"배, 머리, 다리" 하더니
"내가 게임 갈 커 줄라고 그랬는데... 에이!" 하는 것이
꽤 섭섭했나 보다.
그래도 내일이면 할아버지에게 또 젼화를 하겠지
스타퍼트 가르쳐 준다고..
녀석은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한다.
무엇이든 제 뜻을 받아 주는 할아버지이기에...
그런 아이를 보면서
예전에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무척이나 무섭게 보였던 할아버지였는데..
한 여름철 시장에 나가 노 각(늙은 오이)을 보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학교가 방학을 시작하면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에 가곤 했다.
그런데 엄마의 손 맛에만 길들여진 난
할머니의 음식맛이 영 입에 맞지를 않았다.
점심상 앞에 앉은 난
숟가락을 들고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할아버지는 뒤 곁 오이 밭을 가리키며
"오이 따서 고추장 찍어 먹거라"하신다.
기다렸다는 듯 오이 밭으로 달려가는 내게
할아버진 담장 밑에 있는 큰 오이는
만지지 말라고 하신다.
씨 받을 오이라고 하시면서..
난 크고 누런 오이를 처음 보았을때
너무 신기해서 만져 보고싶었지만 할아버지가 무서워
선뜻 만져 보지도 못하고 발로 툭툭 쳐 보았다.
곁눈으로 할아버지를 살피면서..
그렇게 무섭게 느껴졌던 할아버지였다.
그런 어느 날인가 마당에서 놀던 내 손등위로
사마귀 한 마리가 올라왔다.
얼마나 무섭던지..
어느새 할아버진 내 손등에 있는
사마귀를 마당으로 집어던지고는
"물지는 않는다" 하시며 들로 나가신다.
그 모습이 내겐 그렇게 정겨울 수가없었다.
그 후론 할아버지가 무섭지 않았다.
아무말 없어도
따뜻하게 전해지던 할아버지의 마음이었기에..
훗날 내 아이들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마음 가득 담기를 바란다.
내가 내 할아버지의 사랑을 마음 가득 담고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