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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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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때문에 망친 여행~~~


BY 파도 2000-10-18

시간은 흘러서 어느새 막 바지에 와 있었다..

우리는 지금의 계절과 같이 늦은

가을에는 검정고시의 결과가 나온다..

모두 힘들여서 노력한 결과

한명의 낙오도 없는 사상 초유의 합격을 했지만...

그 다음에는 부딪히는 문제는 돈이란 물건때문에서

우리는 현실을 실감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중등검정고시라서 합격을 하면 고등학교를 갈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공부를 시킬때에는

우리가 학생선생들이다 보니 그 다음생각을 못한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매달매달 조금씩 모아서

합격한 애들에 조금 씩을 주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는 속수 무책일수 밖에 없었다...

세상의 어려움을 난 그때 알았다

얼마나 가져야 그 애들이 학교를 진학할수

있는지 조차 생각을 못했기때문에...

다가오는 현실로 우리 학생선생님들은 치를 떨어야만 했다....

그럼 이런 방법이라면 고등학교를 진학이 목적이 아니고,,

그저 중등학교 졸업과 같은 자격을

준다는 것을 꼭 애들에게 주입을 시켜야 만 했는데..

무조건 합격만 하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는 분홍색 꿈을 우리는 애들에게 심어 준것이다..

철없었던 일이다...

한애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졸업할때까지는

무한히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낸것이

야간고등학교로 진학을 시킬수 밖에 없었다

힘없는 선생님들 전부다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이었다

졸업식장에는 눈물이 없이는 졸업식을 할수가 없었다

선생도 학생도 다 울고 또 울었다 ...

그렇지만 울고 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연극을 하여

재원을 조금이라도 마련 할려고 동분서주 했다

국문과 선생님들은 시나리오각본을 써고

우리 여선생들은 연극의 옷을 준비하여...

그해 겨울은 너무나도 바쁘고 따뜻한 겨울이 되었다

연극과 일일찻집도 함께 해서

얼마 안되는 돈이란 물건을 마련하여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

성황리에 마친 연극과 일일 찻집의 성금으로

졸업하는 애들의 교복한벌 씩은 맞출수가 있는 돈을 마련하여

세상의 험난함을 우리는 우리가(?) 대신 해

주었지만 가슴이 아팠다

그때 난 나의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돈이라는것에 신경 안써고 학교를 다닐수 있게 해

주신 나의 부모님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니 모든일은 순조롭게 끝은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난 야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애들을 고등학교에 진학할수 있는

지금의 방법으로는 다음의 2년후에도

그 아픔을 감당할수 있는 마음이 없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방법이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서 학교에 진학 못하는

애들을 위한 장학재단이 필요 하다고

생각을 하고 그 야학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그리고 한가지 결심한것은 나도 어른이 되어

돈을 많이 벌어서 머리 좋은애들을

교육할수 있는 장학재단을 만들려고 결심을 했는데

지금 이 많은 나이에도 거저 평범한 월급쟁이 마누라로

나의 자식에 대한 교육에만에 신경쓰는 속인으로 변해 있다..

세월이 그렇게 만든것인지?

그래도 난 한명의 학생이라도 걱정없이

공부할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려고 맘먹고 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도 미지수 이지만

그런 꿈이 있기 때문에 난 열심히 노력하고

한시도 그 꿈에 대한것을 잊어 본적이 없다

변명같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가서 모든일을 잘 끝내고

우리는 그해 겨울 모두 설악산으로 엠티를 갔다

수고 한 선생님들 모두 함께 신부님이랑...

이번에도 빠짐없이 신부님의 설득으로 난 그곳에 합류할수가 있었다(신부님께서 나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셔서...같이 갈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겨울에 산행은 정말 낭만적이고

설악산의 단풍이 우리를 방겼다

설악산의 고운 자태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요사이도 가끔 설악산을 가보지만

그때의 선명하고 따뜻하고 정겨운 풍경의 단풍을 본적이 없다...

기분좋게 모두들 설악산 정상에 있는

산장에 여장을 풀고 서로들 유쾌한 시간이 시작되는데

그런데 기차 타고 오는 동안에도

배가 가끔씩 아팠는데 숙소에 오니 점점 더 아픈것이 아닌가?

다른 선생님들 모르게 걱정끼치고 싶지 않아서

금복주에게만 이야기 하고 다들 캠프파이어하고

영롱한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와 끝없는 기쁨으로 모두들 들뜨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난 내가 아프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혼자 숙소에 누워 있었다

소화제만 먹고 그런데 밤이 깊어

갈수록 점점 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나중에는 얼굴에 땀과 열로 인해서

죽을 지경에 이런것이 아닌가?

밤은 깊어만 가는데 놀다가 들어 온 선생님과

신부님의 얼굴만 기억에 있지

그 다음은 전혀 기억이 없다 기절을 해 버린것이다...

정말로 민망하고 죄스러워서 몸둘바를 몰랐다

한참 지나서 깨어 보니 병원이었다...

그 산장에서 4명의 남자 선생님들이 번갈아서

나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는것 아닌가? 쥐구멍이 어딘지...

산속에서 혼자 걷기도 어려운 곳에서

축 늘어진 나를 업고 얼마나 뛰었음...

부끄럽고 황송하기도 하고 하여간에 어쩔줄를 몰랐다...ㅎㅎㅎ

병명은 급성 위경련이라는 것이었다..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고 겨우 정신이 든것이다...

난 무지도 많이 참았는데

그 아픔이란 내가 아기를 셋을 낳았지만

그 때의 아픔이 더 컸던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모두 병원으로 와서 전부다 놀리는것이 아닌가?

쌀자루 보릿자루 하면서 ....

병원에서 도망 치고 싶었다 하지만 고마운사람들....

우스개로 4명의 남자 선생님들이 앞으로

서울에 가면 매일매일 차와 밥을 책임지라고 하는것 아닌가?

그래서 얼결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

나로 인해서 엉망이 되어버린 여행을 난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 와서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니

그 남자 선생님들을 모두 집으로 초대를 하라는것이었다

난 아버지의 명령되로 전부다 연락을 하여

우리집으로 초대를 했다

죽을 뻔한 내 딸의 은인들에게 잘해 주신다고 하여

그 남자 선생님은 우리집에서 2박 3일을보냈다...

지금도 그 남자 선생님들은 가끔 그 애기를 꺼낸다

그때 우리가 안 구해 주었다면 지금의 파도는 아마도 없겠쥬?

하면서 놀린다...

사람냄새와 정겨움이 지금의 중년의 가을에도

잔잔히 흐른다 내 마음속에...

아직도 그 장학재단의 꿈은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력할것이다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도와 줄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고 싶은 것이 나의 요원한 바램이고 목표이다....

너무 길었죠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