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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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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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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밤의 바닷가에서 옛날을 생각하면서...


BY 파도 2000-08-03

아버지께서는 자식 없는것을 비관하셔서 술에다 화투에다..

하여간에 남자가 할수 있는일은 모두 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봄 ..엄마가 지금 내나이 보다 어린 나이다..

쯔쯔 얼마나 맘고생을 많이 했을까?

그러나 아들도 못낳은 죄인이니깐..

하는식으로 모든일 들이 그렇게 진행 되었다

충무에서 누구네 집 셋째딸이 아이를 못낳아서...(좁은 소도시라 소문이 자자 했다)

그래서 엄마가 하신 일이 지나가는 애들마다 과자도 주고..

사탕을 주는 일을 일년내내 한 엄마 ..

불쌍한 엄마..지금의 세월이면 안해도 될 일을

반세기 먼저 나셔서그런 고행을 ...

다 팔자 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하여간에 엄마의 고행은 말로 이루다 표현을 할수 없었다

아버지는 군인 출신으로 성질이 급하셔여..

두번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반면에 엄마는 천상의 여자로 하루종일 집안일에다

남편뒤바라지에 평생을 받친분이다..

하루종일 썰구 닦구 심지어는 이불장안에 있는

이불도 귀를 맞추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

매사가 그런식이니깐..

음식투정하시는 아버지의 식성에 맞추어서

하루 종일 고심고심하여 아버지의 까다로운 입맞을 맞추면서(한번 상에 올린 음식은 다시 상에 올리면 내려 놓으시던 아버지)..

평생을 보냈다..

만두피도 없던 시절에 직접 밀어서 만두도 하구..

바다게나 생선등을 사면 모두 까고 발라서

밥상위에 올려야 만 드시던 아버지

그런데 밥상을 받을실때 그 앞에는

항상 내가 앉아서 먼저 나를 먹여 주시고

당신이 잡수셨다...

그런 나의 아버지...엄마로 보면 모진 시집살이였지만..

난 우리아버지의 우상이고 심벌이였다

외할머니께서 내가 초등학교2학년때까지..

"우리 예쁜손주 나올때 문을 열고 나왔냐 닫고 나왔냐를 물으셨다 난 그때마다 문을 닫고 나왔다고"

해서 외할머니한테 혼도 많이 났다

그러나 철이 들때 부터 물음 이제는 속이 다차서

열고 나왔다고 하면 과자랑 사탕을 주신 기억이...

하기사 친정엄마의 심정을 이제는 알것 같기도 하구..

얼마나 애가 타탔슴..

그래서 내가 시집와서 딸만 둘을 낳을때

엄마가 많이도 걱정을 하구 ..우셨다..

그리고 내가 세째를 낳을때

우리엄마는 춤을 추셨다..밖에 나가서..

실성한 사람처럼 당신이 못이룬 꿈을

딸인 내가 이루어준 샘이니깐..

우리 외가 집은 부자였다...

우리아버지와 엄마는 육이오 전쟁터에서 만났다..

한사람은 군인(전화통신병)으로

한사람은 전화 교환원으로

하하하 전쟁통에 두분은 연애를 하신것이다..

그시절에 연애를 한 엄마지만..

지금도 하시는 말씀은

"내가 너거 아버지같이 잘난 사람은 어떻케만나노...내가 복이 많아서 너거 아버지를 만났지..."입버릇 처럼 하신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써구 엄마와 아버지께서는 결혼식을

올린것이다 반대의 이유는 객지 놈이라고 (울 외할아버지 말씀)

그때만해도 집안끼리 잘 아는 사람들만 사돈을 삼았을때이니까

통영에서 누구 집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로 부자 였어니깐

그런 가정에서 자란 우리 엄마지만..

단 한가지 아들 못낳은 죄로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유 부인이 되어서 여생은 편하다
(별로 잼도 없는 글을 자꾸올려서리...죄송하군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