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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남자가 아름다웠던 영화


BY 봄비내린아침 2000-08-21

난, 영화를 볼때 벼경도 중요시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변화에 가장 많은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글래디에이터/펑펑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슴이 찡'행던 그런 영화였다고나 할까?

로마가 영토확장에 주력할 시기, 용맹하고 충직했던 한 장군의 파란만장한 인생행로를 그린 이 영화는 야망과 성공에 집착하는 우리를 잠시 뒤돌아보게 만드는 /남자가 진정 아름다웠던 / 영화였던 거 같다.

늙은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장군과 어려서부터 심약하고 작위에 대한 욕망만 가득한 왕세자, 결국 왕은 막시무스장군에게 로마의 내일을 맡기려하고 이를 눈치챈 왕세자는 아버지를 암살하고 로마의 미래에 반드시 피를 뿌리리라 다짐한다.

새 왕은 장군을 죽이려하고, 사형의 위기에서 빠져나온 장군이 가족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상처투성인채로 말을 달릴때, 그리고 어린아들과 사랑하는 아내의 불에탄 검은 시신앞에서 오열하며 울부짖을때 나도 그와 같이 울었다.

장군은 프록시모란 돈많은 늙은이의 손에 잡히게 되고, 하루하루를 삶과 죽음의 틈새를 곡예하며사는 인간이기보다 노예에 가까운 검투사의 길을 가게 된다.
조국을 위해, 또는 영예를 위해 숱하게 많은 전쟁터를 지나온 그였지만, 살기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만하는 검투사로서의 길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번득이는 칼날이 다른이의 심장을 찌르고, 피가 쏟아지면 환호하는 관중들, 그들을 조롱하듯 장군은 더 맹렬히 최고의 검투사가 되어간다.
'나, 살기위해서 죽일뿐' 이라며 관중을 향해 절규하던 그에게 예전의 용맹함은 보이지않았고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그의 삶에 나는 또 한번 함께 울어야 했다.

'희망'이란 그런것일까?
막시무스장군이 용맹을 떨치며 전투에 나섰을때 그는 그 피비린내나는 전쟁터속에서 가슴에 한가지 희망을 안고 있었다.
'그림같은 밀밭에서 조랑말과 함께 뛰노는 어린아들과 길고 탐스런 머리카락을 날리며 미소짓는 아름다운 아내' 늘 그를 버티게 한 건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 그리고 그들곁에 돌아가 평온히 쉴 그 날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희망만이 인간을 지탱하게 하는건 결코 아니다.
그에게 희망이 사라졌을때, 그는 희망의 반대편인 절망의 언덕에 서게 되고, 사랑의 반대편인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그것이 또 그를 더 강하게 했으며, 살아있게 했을것이다.

죽게될까봐, 사랑하는 누이를 빼앗길까봐, 왕좌에서 밀려날까봐, 두려움에 벌벌떨던 야망만 가득하던 왕세자, 그가 넓은 광장에서 반항없이 칼을맞고 죽어가는 이름없는 검투사보다 측은하고, 초라하게 느껴진건 왜였을까?
예나, 지금이나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우리는 선의 편에서 선이 이기길 응원하지만, 악이 한없이 무너져내릴때 잠시 그의 편에 서고싶은 동정과 연민을 느낀다. 그것은 악이 우리속에 공존하는 또 하나의 모습임을 부정하지 못하는 이유일거라고 생각해본다.

이 영화의 엔딩이 내게는 선명하다.
??은왕과 막시무스는 난투끝에 둘다 지친 영혼처럼 쓰러지는데,.
왕이 그토록 사랑했던 누이와, 아껴온 어린조카, 그리고 그의 백성인 관중들 모두는 막시무스의 죽음앞에 오열했고, 그를 최고의 장군으로 모시고 광장을 운집해 빠져나간다.
그리고 또 하나 왕의 주검은 광장의 먼지속에 누구하나 뒤돌아보아주지 않는 초라한 모습으로 홀로 남겨진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까? 나는 홀로남겨진 왕의 주검에서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에게는 돌아갈 무엇도 없었고, 기다려줄 누군가도 없었으며, 주검앞에 눈물뿌려줄 친구도 없었다. 단지, 잠시 누렸던 허울뿐인 권위밖에는...

나는 뒤집어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인생이란 그게 어떤 형태이든 완전한 그가 되보기전엔 이러쿵 저러쿵 논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 저렇게 살아?'
'저럴게 사느니 죽지'
이런 말 우리 너무나 쉽게 뱉는다.
그러나, 꼭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기를...
첨부터 상황을 뒤집어 장군이 왕이었다면, 아니면 왕이 장군이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행여 아는가?
장군은 더 사악한 왕이었거나, 혹은 왕은 보다 용맹한 장군이 되었을지도...
선과 악, 그것은 종이의 앞과 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