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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일상 (총 1편)
BY.해피콩
새벽 3시 반쯤이나 됐을까? 거실에서 나의 잠을 깨우지나 않을까 
나직한 부모님의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친정에 방문하기로 했던 일정이 취소된 후 2주쯤 지났을 때 저녁 8시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어디쯤 왔어?
“엄마...내가 어디쯤 가야 했던 걸까?”
”서프라이즈로 집에 내려오고 있는 거 아니었어?“
여전히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엄마와의 통화 후 줄곧 이튿날 제출해야 하는 
숙제처럼 마음이 쓰였다. 치료를 핑계로 당분간은 어렵다고 말씀드렸지만
통화 종료 후 곧바로 열차표를 조회하고 6월 20일 표를 예매하게 됐다. 
방문 당일, 장맛비가 시작되었다. 전날 뉴스에 폭우를 예보하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미루고 다시 예매한다고 날씨가 좋으리란 법이 
없었기에 환부에 랩을 싸매고 우비와 우산까지 챙겨서 나섰던 여정이었다.
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썼지만 바람이 거셌던 탓에 젖은 신발에 양말까지
축축해졌다. 하지만 숙제를 끝낸 마음은 홀가분했다. 
 
”아빠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는 주방 안에서 식사를 준비했고 
아빠는 벌써 작업복을 걸치고 식탁 의자에 앉아 계셨다.
”왜 벌써 일어났어? 더 자지 않고.“
엄마의 표정은 말씀과 달리 화색이셨다.
”비가 와서 일도 못 할 텐데 여전히 일찍이도 일어나시네.“
”메주콩 심은 거 새가 쪼아 먹어서 확인하고 와서 옥상에 있는 마늘 손질해야 해.“
 
어느새 부모님은 3만평 이상의 땅 곳곳에서 벌써 감자와 마늘을 수확하셨고 
수박과 참외, 옥수수, 오이, 땅콩을 비롯한 벼와 메주콩, 고추 등을 심은 뒤였다.
아직도 시멘트 바닥 마당 한쪽에는 앞으로 심길 새싹 트인 서리태와 들깨가 잔뜩 
올라오고 있었다. 
집 주변엔 아기 주먹만큼 자란 사과, 배와 사과대추와 포도나무를 비롯해
대파와 상추, 가지, 부추가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다. 
예전엔 예뻤던 집이 부모님과 함께 오랜 세월을 맞고 있는 중이다.
아빠는 20년 이상 이어왔던 어업을 청산하고 바닷가를 떠난 뒤 멀지 않은 곳에
당시엔 멋스러웠던 넓은 전원주택을 지으셨다. 초록이 예쁜 잔디밭과 주변의
화단과 취미처럼 가꾸셨던 매실이며 자두, 복숭아, 사과, 배, 포도나무를 비롯한 
토마토 종류와 참외 그 외에 갖가지 다양한 것들로 자손들이 맘껏 따보고 맛볼 수 
있도록 꾸며 놓으셨었다.
취미로 시작했던 농사가 업이 되면서 잔디밭을 떼고 고추를 말려야 하기에 
시멘트로 메꾸셨다. 그곳으로 자가용 외에 트랙터와 이앙기, 트럭이 자리했다. 
과실나무 자른 곳으로 저장고를 지었고 태양열관 판을 올려놓으셨다. 집 옥상엔 
지붕을 올렸고 건조기를 설치하셨다.
그 후 창문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했던 집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하게 됐던 집 안팎 곳곳으로 막을 수 없는 세월들이 
잠겨있었다. 
아빠는 73세 연세에도 농사짓기를 위해서 지금껏 겨울이면 2시간씩 걷기와
틈틈이 팔굽혀 펴기를 하셨고 아령으로 체력을 단련을 해오셨다.
나도 그런 피를 이어받았건만.
3남매 중에 딸이 하나.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인 나는 동생들과 달리 지금껏 
집주변 텃밭조차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조금이나마 거들라치면 난리시다. 
설거지도 좀체 시키는 법이 없으시다. 
 
나는 부모님의 이른 새벽 식사에 동석만 했다. 
나중에도 꼭 먹어야 한다는 당부를 하신 뒤 아빠는 밭으로 엄마는 옥상으로 
올라가실 때 삼재 딸래미에게 가파른 옥상계단이 위험하니 따라 올라오면 
죽는다시며 재차 당부엔 힘을 더 실으셨다.
여전히 부모님은 딸을 걸음마 떼는 아이가 걷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님처럼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신다.
예전부터 나는 잔소리를 듣더라도 가족들이 밖에서 고된 일을 할 때면 가만히 
있는 것이 미안해서 청소나 간단한 먹거리를 만들어 놓곤 했다. 
그때처럼 가만히 있기에 편치않은 마음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창틀과 현관까지 쓸고 닦았던 몇 시간 동안 부모님은 또 몇 차례 내려오셔서
그만하라는 잔소리를 하셨다. 
 
아빠 곁에서 늘 함께했던 엄마의 육체의 고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마디마다 튀어나온 손의 관절은 수저질도 힘겨워 보였다.
시술받았던 양쪽 무릎의 신통치 않은 걸음과 일어서기도 힘겨워 보이는
고관절의 상태가 외면하고 싶어도 자꾸만 눈 안으로 들어왔다.
최신상 세라점과 별도의 저주파 자극기와 손 안마기를 사드렸지만 별 도움
안되는지 2박3일 있는 동안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여전히 딸의 건강만 운운하셨다. 
 
”돈 받고 쉬는 시간이라도 있는 직장 일하는 게 낫지. 주는 것도 없이
곁에만 있으면 밖에서나 안에서나 쉴 틈 없이 부려먹기만 하는 니 아빠는
내가 죽어서 관에 들어가도 끌어내서 일하라고 할 거야.“
엄마의 넋두리가 애달프다.
알콜 중독이 심한 아빠는 술의 힘으로 사신다. 철천지 웬수라면서도 엄마는
해마다 6년근 인삼을 20채씩 구해서 9번 찌고 말려서 홍삼을 만드신다. 
아빠는 여전히 홍삼 물을 맹물처럼 드신다.
일 좀 그만하라는 자식들의 말에 ‘일하던 사람 일 놓으면 죽어.’라며
고집이시다. 그 곁에서 두 살 어린 엄마가 더 많은 세월을 맞으셨다.
 
”너의 뒤엔 아빠,엄마가 있어. 힘들면 내려와라. 딸래미 굶기지 않는다“
좀체 내색하지 않으려고 밝게 말해도 나의 삶의 고비들 앞에서 엄마는 변함없는
말씀을 하셨다. 예전엔 그 말이 힘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가슴이 아프다.
 
”든든하구만. 그러려면 건강하게 120살은 사셔야지.“
대꾸하지만 점점 목울대에서 뻐근한 통증이 일곤 한다.
 
2박 3일을 보내고 올라오던 날 일손을 돕지 못하는 딸이건만 곁에
있는 것만도 위안되시는지 직장 다니는 것도 아닌데 벌써 올라가냐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나는 병원을 핑계로 올라왔다.
어제 친정에서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
비싼 블루베리 5kg과 소포장씩 나눠 담은 얼린 양념 된 돼지고기와 
소고기, 삶은 고춧잎이며 말린 가지까지 커다란 아이스박스가 빈틈없이
빼곡했다. 감사와 죄송함이 뒤섞인 복잡한 요즘의 마음이다.
늙은 부모님도 여전히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계시고 모두가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난 자꾸만 움츠러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