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온전히 나의 것은 ‘나’ 뿐이라는걸 알아간다.
아이들도 남편도 내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비록 지금 내소유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것이 영원불변의 가치는 아니라는 걸 안다.
남편과 자식의 삶이 내 삶과 다른 모양으로 태어난걸 내 것인양 끼워 맞추려는 불행을 자초할 이유가 어디있나. 설령 딸아이가 남자랑 밤을 새우고 들어와도 “미쳤어?“ 가 아닌 ”어땠어?“ 라고 물을 준비도 해야겠다.
아내로 살아가는것보다 부모와 사는게 훨씬 자유로웠다는건 당연한 사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주체적이지 못한채 한가정을 부여받았다. 가정은 사회의 틀을 갖추고 있어 자율적이나 독립적으로 운영하는게 아니었다. 사회의 룰대로 질서나 서열에 의존하며 법규보다 더 많은 규칙을 세워 가정이란 집단을 이루어왔다.
노예제도가 이땅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유사한 인종차별과 동서양의 불평등이 존재하고 여성해방이 이루어졌다해도 결국 남녀불평등은 버젓히 생존하는 세상이다.
이따금 사회문제가 되고 사라져야할 폭력이 가정에서 최초의 비극으로 시작되기도한다.
가정,그리고 결혼은 다양한 사회문제와 세계의 유구한 역사와 닮은꼴이다.
더러 농담처럼 진담처럼 남편에게 “10년만 더 살다가 헤어져”라고 말한다.
딱히 당신과 더는 못살겠으니 헤어지자는 의미가 아니다. 독립적인 사람으로서 태어난 자유를 향한 열망. 서로의 자유를 보장하되 개인으로서의 독립된 삶을 한번만이라도 살아보자는 말이지만 남편은 그닥 호의적이진 않다. 그저 실없이 던지는 소리로 받아들인다. 결론은 이거다. 결혼이란 제도가 두 사람을 묶어 하나의 가정으로 결합시켰고 다시 둘로 분리한다는건 파괴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태어날때도 혼자였고 떠날때도 혼자 떠날 우리가 무엇이 두려워 늘 배우자 아니면 가족일까.
힘겨운 결혼생활에 막을 내리고 결국엔, 또 다시 재혼의 길을 선택하는걸보면 인간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내게 일인의 삶이 허락된다면 무엇을 할까. 수많은 것을 나만의 것으로 향유할 생각을하니 상상만으로 부자가 된 듯같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고요한 세상. 그러기에 24시간은 너무 길으니, 하루 12시간만 사용해야지. 낮 두번, 밤 두번인 세상. 집도 가구도 너무 크니 반으로 줄여야겠다. 그곳에서 살려면 나 또한 작은 요정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 몸은 작고 가볍고 영혼은 순수하고 꿈과 환상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의 10년. 현실도 가상도 아닌, 4차원의 세계를 꿈꾼다. 그렇게 나를 위한 삶을 10년간 할애한 후 남편과 남은 여생을 살아가고 싶다는거다. 늙고 병든 몸일지라도 기꺼이 받들고 서로를 의지한 채.
그러나 중요한건, 10년후에 헤어지자는 말이 2년전이나 5년전이나 그리고 오늘이나 아마 내일도 항상 “10년만 더 살다가”라는 것이다.
혼자살든 함께 살든 자유의 허락함은 그 누구도 아닌 내게 있다는걸 잘 안다.
서로에게 벗어나더라도 믿음을 지키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세상이 될거라는 것.
우리 모두가 꿈꾸는 바램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