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왕 노릇하며 살았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었다. 고작 30여 년 전이다. 그런 세상이 내 눈앞에서 꼬리를 집어넣고 있다. 시대를 일찍 태어난 걸 원망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감사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새로운 시대의 한 토막을 살아내다 가는 것도 어디랴.
작가들의 눈은 예리하다. 그걸 놓칠 법도 한데 놓치지 않는다. 드라마를 끼고 살지 않는 내 눈에도 드라마 작가의 예리함이 잡힌다.
하루 종일 글을 쓰다 보니 저녁이면 머리를 비우고 싶다.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다는 TV라도 보는 게 그나마 나을 거 같아 리모콘을 들고 이리저리 돌린다. 참으로 볼 게 없다. 채널이 10여 개밖에 되지 않으니 돌리는데 시간도 얼아 되지 않는다.
거의 절반의 프로가 제 분야를 파고들어도 시간이 부족할 전문 분야의 사람들이 전문가라는 걸 내세워 돈 따먹기를 하고 있다. 돈 벌어 먹는 것도 가지각색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 것을 사람들을 앉혀놓고 길게 사설을 풀어 읊어대기 바쁘다. 간혹 자기들 입으로 대본에 그리 되어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작가들에 의해 꾸며진 체험이다. 연예인이야 분야가 그러니 그렇다친다. 별로다. 금방 심드렁해진다. 채널을 다시 돌린다.
차라리 드라마가 낫겠다 싶다. 채널을 고정시킨다. “오로라 공주”라는 작품이다. 그동안 본 적이 없다. 이전 내용이 궁금하지도 않다. 내용을 확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도 의도는 분명하다. 주인공인 여자가 두 남편과 동거를 한다. 주인공의 전남편이 와서 현재의 남편을 보살핀다. 임파선암 4기라는 주인공의 현재 남편을 죽일지 살릴지는 작가 맘이다. 죽이고 전남편에게 가게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전남편의 지극정성으로 살려내 형제처럼 지내게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홀가분하게 떠나는 구조로 끝을 낼지도 모르겠다. 그건 순전히 작가의 몫이니 크게 관심은 두지 않는다.
내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론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 사회에 이제 싹트기 시작한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을 뿐이다. 남자들이 그동안 지녀왔던 무기를 내려놓고 여자의 눈치를 본다. 드라마는 라면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걸 드러내고 있다.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눈치를 보다 거짓말까지 해 주인공을 밖으로 내보낸다. 그리고는 몰래 라면을 끓여먹는다. 한데 어쩌랴! 차에 문제가 있어 되돌아온 주인공에게 딱 걸리고 만다. 남자들이 놀라 당황한다. 주눅이 든다. 주인공의 눈빛이 칼날처럼 뻗어간다. 주인공의 눈빛에 남자들이 시선이 오락가락한다.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로 무릎을 꿇고 손을 든다.
참 세상 살만 하다. 가진 게 하나 없어도 떵떵거리던 남자들이, 아주 오랫동안 주인행세만 해오던 남자들의 유전자가 바뀌고 있다. 그것도 내가 살아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이랴! 40여 년 전 라디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딸 둘을 낳고는 더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식으로 남자들의 세계에 맞섰다. 물론 아들·딸 구별 없이 둘만 낳아 잘 살자는 정책이 밑에 깔려 있었다. 그래도 세상은 정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결국 여주인공은 시부모에 의해 강제로 이혼을 당하고 집을 떠나야 했었다. 남성중심으로 볼 때 그건 세상을 뒤집는 일이었다.
길게 돌아왔지만 세상은 돌고 돈다. 이제 여성을 땅이라고 누가 짓밟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짓밟고 있다면 그는 간덩이가 부은 남자다. 그러다 쪼그라들겠지. 그때는 이미 통증이 살점을 넘어 골수까지 퍼져있겠지. 여자들은 견뎌볼 일이다. 남자들이 땅을 살얼음판처럼 디디고 살아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드라마도 그렇다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