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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세상


BY 한이안 2013-09-07

논산으로 와 자그마한 땅 하나를 구입했다. 성토를 해서 논이지만 밭으로 쓸 수밖에 없는 땅이었다. 한데 그 성토가 불법으로 조성된 거였다. 난 그걸 뒤늦게 알았다. 그래 난 매도인, 부동산, 논산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긴긴 싸움을 해야 했다. 물론 집에서였다. 인터넷이 참 편리하고 좋긴 하다. 집에 앉아서 그 모든 걸 감당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도 난 혈당을 낮추고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도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꿈틀거림이야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2011년에 이미 작품을 위해서 블로그도 만들고, 카페도 만들고, 아줌마닷컴에 가입도 하고. 하지만 그 걸로는 내 욕심이 채워지질 않았다. 여러 번에 걸쳐 글다듬기를 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책을 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헤맸다. 여전히 책을 싸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나? 나처럼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출판 관련 키워드를 쳤더니 지식인에 출판 방법이 올라와 있다. 출판사에 작품을 보내보라 했다. 난 출판사 네 곳을 추렸다. 출판의뢰를 하는 게시 글과 함께 작품을 보냈다. 네 곳 모두 무반응은 아니었다. 한 곳은 잘 팔리리라 생각하고 출판한 책의 판매가 부진해 다시 책을 낼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한 곳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생각을 참 오래 끌었다. 내가 전자책으로 출판을 한 다음에야 메일을 보내왔다. 한 곳은 전자책으로 내자고 연락이 왔다. 난 그러기로 했다. 책이 안 팔린다는 말에 이미 서점가를 돌아본 뒤였다. 서점가를 돌며 내가 내린 결정은 전자책으로 가자였다.

예전엔 곳곳에서 눈에 띄었던 게 서점이었다. 한데 서점 찾기부터 어려웠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나이가 좀 들었다 하면 모르기가 일쑤였다. 젊은 여자애한테 물어서 간신히 서점을 찾아갔다. 규모가 제법 있는 서점이었다. 그래 그나마 유지를 해온 모양이었다. 한데 그 큰 서점에 주인 여자 혼자 덜렁 앉아있었다. 책을 안 읽는다고 하더니 그 정도일 줄이야.

허긴. 생각해보니 머리 쓰는 것보다 쉬운 게 보는 거다. 눈이 호사하는 건지 혹사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와 영상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나도 그걸 무시하지 못해 읽는 소설에서 벗어나 영상을 생각하고 써냈으니 할 말도 없었다. 어쨌든 서점가로의 외출은 전자책으로 출판하겠다는 내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약속을 정하고 난 동생과 함께 서울 출판사엘 갔다. 위험해서 혼자 보낸 수 없다는 동생의 말에 나도 말벗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행하기로 했다. 동생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난 참 많이 의지하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닐 때 자취하면서 밥 해먹인 덕인 모양이다. 부대끼며 살아낸 세월이 더 많아서인지 언니들보다도 맘이 편하다.

출판사 사장은 내 작품이 애들이나 좋아할 소설이라 했다. 아직은 미숙하다나? 그러면서 좋은 소설은 대화보다는 서술을 통해 심리를 많이 드러낸 책이라 했다.

거기서 내 마음이 틀어졌다. 다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말초신경이나 건드리는 그런 소설은 아니었다. 내 내세관과 인생관, 철학을 모두 담아낸 소설이었다. 서술이나 대화를 인물의 심리도 잘 드러나 있었다. 라떼북 직원도 그리 말했다.

내 딴엔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은 쓰지 않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썼던 작품이었다. 한데 그 소설을 두고 그가 아주 가벼운 말을 쏟아냈다. 차라리 촌닭, 빌딩숲에 둥지를 틀다를 놓고 그리 말했다면 난 웃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나도 좀 유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북씨에서 그 책도 계약 출판하자기에 내 입으로 유치하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난 벌떡 일어나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계약서를 내밀며 하나하나 설명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데 교정을 나한테 하란다. 교정하자고 잡으면 문맥만 손대게 되는 나한테.

생각해보고 전화를 달라기에 그러마고는 일어났다. 투덜거림이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동생은 그런 나를 토닥였다.

언니 작품은 인정하고 있더라. 애들이 좋아할 소설이라잖아. 언니가 화난 거 알면서도 꾹 참고 설명하더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거 아냐.’

마음이 틀어지면 어긋나게 돼 있다. 난 그쪽은 접기로 했다. 기회는 한 번만 있는 건 아니다. 다시 오기 마련이다. 출판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인터넷 뒤지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관련 글을 하나 읽게 되었다. 자비를 들이지 않고 출판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했다. 난 얼른 주소를 복사해 이내 작품 출판에 들어갔다. 두 작품을 각각 네 권씩으로 만들었다. 가격은 3000원으로 하여 전자책출판 사이트에 올렸다.

그리고 2~3주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출판사라며. 우수북씨로 선정이 되어 라떼북으로 계약 출판하고 싶다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내 두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한 이안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 작품이 세상으로 나갔다. 2012831일 판매가 시작됐다는 메일을 받은 날이다. 북씨를 통해 개인출판한 지 두어 달 걸린 거 같다.

세상 참 좋다. 유전자 복제, 유전자 조작, 해킹, 피싱, 성폭행 등등을 생각하면 살아낼 시간들이 겁나긴 하지만 집에 앉아서 민원을 낼 수도, 책을 출판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됐으니 나쁘다는 말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