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반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바짝 마른 나를 낯설어했다. 내 몸은 뼈에 거죽만 입힌 꼴이었다. 나도 내 마른 모습이 낯설었다. 친구 하나는 내 그런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라도 봤나보다. 서슴없이 그걸 내비쳤다.
난 괜찮다고 말하고 넘어갔다. 심한 운동 후유증이라고 말했다. 그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말은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사실 나 자신도 내가 당뇨병 환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10여년 가까이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해 왔고, 살이 찐 것도 아니었고, 먹는 것도 남들보다는 건강식을 챙겨먹었던 나였다. 한데 내가 당뇨라니! 억울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거기다 약발도 잘 받지 않는 악성 당뇨환자였다. 몇 십 년 동안 식탐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던 내가 끊임없이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빼짝 마른 몸으로 겨우 지탱하면서도 먹을 건 끊임없이 당겼다. 지독한 허기가 날 그렇게 괴롭혔다. 물을 달아놓고 마셔도 갈증은 떠나지 않았고, 화장실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럼에도 난 병원에 갈 생각을 못했다. 외려 약 먹는 거마저 그만두었다. 약을 먹으면 속이 쓰리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수치도 떨어지질 않았다. 속이 멀쩡하고 수치가 떨어지라고 먹는 약이었다. 한데 둘 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치를 떨어뜨리려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친구는 누가 옆에 있어야 하겠다며 지 가까이 오라는 말을 내비쳤다. 난 딱 잘라 거절했다. 형제들이 오라는 것도 딱 잘라내고 있는 참인데 친구한테 갈 마음이 생길 리가 없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나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편이다.
내 거절에 그 친구는 내가 아무도 모른 채 홀로 죽을 수도 있다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누군가에게 매일 전화라도 하라 했다. 살아있음을 확인시키는.
난 그 말을 씁쓰름하게 혼자 씹어봤다. 맛은 씁쓰름했지만 나도 그것만은 귀가 솔깃했다. 형제들 옆에도 친구 가까이도 가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내 죽음은 뒷마무리가 있어야 할 거 같았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난 내가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서 ‘이게 마지막이 된다면!’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큰 병원에 가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난 기어 다니다 죽는 건 견딜 수 있어도 병원 침대에 누워서 하늘의 처분만을 바라며 하루하루 연명하듯 사는 것은 견딜 수가 없을 거 같았다. 형제들이 내게 꼭 아버질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내 고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챙겨주겠다는 것도 ‘싫다.’, 병원에 가보라는 것도 ‘싫다.’로 버티는 내가 병원에서 죽을병이라고 겁을 주는 데도 기어이 바늘을 빼고 집으로 돌아오셨던 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그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난 딱 아버지였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난 나 자신을 달랬다. 아버지도 70도 안 된 나이에 그렇게 퇴원해서 거뜬히 87세까지 살아내셨으니 너도 살 거야. 아버지의 의지 하나는 그대로 물려받았으니까.
의사들이 들으면 참 한심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난 그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어리석은 건지 미련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