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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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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울산 큰 애기


BY 새우초밥 2016-01-25

  2013.11.23

 

   후라이팬에서 천천히 맛있게 달구어지는 얇은 명태전, 

   제사가 있을때 어머니가 만들때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때 여러가지 음식중에서

   그중에 제가 가장 먼저 미리 먹어보는 음식이 명태전입니다.

   요즘도 가끔 시장에 내려가서 사오는것이 바로 얼어있는 명태전입니다.

   사람들은 방사능 오염을 이야기하지만 러시아 앞에서 원양으로 잡기에

   방사능에는 안전합니다.

 

   학창시절 동생들이 학교에가면 제사 몇일날 어머니하고 자갈치에 갑니다.

   제수장만위하여 가면 제가 어느 장소에 서 있고 어머니는 어딜갔다 오시는지

   바쁜 걸음으로 자갈치 시장을 왕복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먹어보는 자갈치 별미라는 곰장어구이,

   연탄불위에 올려진 곰장어구이는 그야말로 그 시대의 진정한 맛이였다고 할까요.

   자갈치가서 그것먹지 않고 오는날에는 마음이 웬지 허전합니다.

 

   오늘이 제가 중학생시절 돌아가신 할머니의 기일입니다.

   한참 어렵게 살아오던 2층집에서 어느날 엄마는 저에게 아침에 할매 돌아가셨다

   이 말에 누워서 한참동안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가장 의지했던 분이셨는데..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의 삶에 알게 모르게 무언의 시각으로 큰 영향을 주셨던

   2명중의 한명입니다.

   한분은 할머니 또 한분은 바로 둘째 고모부입니다.

   할머니의 고향은 어린시절에는 몰랐는데 성장하면서 알게된 사실 울산입니다.

   제가 어릴때 할머니는 저를 데리고 여행을 자주 하셨습니다.

   지금은 부산 시외버스 터미날이 사상에 있지만 70~80년대만 하여도 조방앞

   자유도매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넓은곳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 시외버스 차장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외치면서 손님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버스안에 들어와서 시계를 팔던 사람들까지

   그때도 응답하라의 한 장면처럼 번호표 나눠주면서 그런식으로 했습니다.

   물론 가짜시계였지만..

  

   할머니는 손자인 저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당신의 손자 자랑에 열중이셨고

   한번은 저를 할머니 외갓집인 울산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시절 아파트에 거주하다는것은 정말 부자들만 산다는것인데 아파트 앞으로는

   기찻길이 보이고 가끔 화물열차들이 지나가는것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울산에 모임이 있으면 노포동에서 울산가는 시내버스 타고 올라가면

   할머니 생각나는것이 그 이유일것입니다.

   지금으로 보면 울산 석유 공단쪽에서 멀지않는곳에 그 아파트가 있었을것이고

   할머니 외갓집이 아닐까 싶은 짐작이 들지만 그때의 기억이 겨우 한컷트밖에 없기에

   아쉬운 마음일뿐,

 

   부모님은 부산에 계실때 어린시절 혼자 시골에서 거주할때 할머니는  5일장이 서면

   자갈길위에 덜컹거리는 시골버스타고 장날에 다녀오시면 할머니가 큰 보따리 하나를

   가지고 오실때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살펴보면 손자 위한다는 마음으로 사탕 아니면

   과자를 가져오시는데 할머니 마음은 어린시절 제가 보아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할머니 성은 송가인데 할머니 친척중에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계셨습니다.

   그분을 예전 영화에서 보았을때 남자인 제가 보아도 멋진 분이입니다.

   복숭아 과수원에 가는날이면 저를 데리고 가셨을때 복숭아를 그때 먹어보고는 그 맛에

   그 이후 복숭아 계절이 되면 집에서 복숭아탕을 만들어먹기도...

   아마도 작은 고모도 할머니 영향으로 가끔 집에서 복숭아탕을 만드는것을 보았고

   아버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저는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말씀으로는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직접 가르침을 주셨던 할머니의 영향이 아닌지

   아버지와 저의 성격은 정 반대입니다.

  

   제사가 있는날 어머니는 할머니 앞에서 소원을 말합니다.

   우리 아들 딸 건강하게 잘 살기를 원하던 날이 이제는 조카들이 태어나고

   유치원가는 어린이집 가는 4~5살이 되어보니 어머니는 우리 손자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오늘밤 할머니가 시골집에서 닭을 잡고 먹어라고 권해주던 그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