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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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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이야기


BY 석광희 2012-10-10

친정 어머니께서 떠나신 후   남편이 있는 태국의 방콕서 몇 년간 살다

국내 사정으로 갑자기 아이들만 데리고 들어와서

강북에 친정 이모님 근처에서 살게 되었고 이제 제2의 고향이 되어간다

 

처음엔 강북이 그다지 정이 들지않고 언젠간 다시 상도동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하며 몇 년간 지내다 보니

이곳 강북이 여간 정이 드는게 아니질 않는가 싶고 정들면 고향이란

유행가 가사 처럼 소박하고 인심 좋은 이곳에 아예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호남과 영남 충청 그러니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지의

사람들로 형성된 작은 읍 소재지 같다고나 할까?

 

특히 강북서도 약간 외지고 후미진 곳이 우리동네다

 

억센 사투리가 처음엔 어색하더니 이젠 얼마나  정겨운지

대인관계에 서툰 내가 이곳에 정착하며 이웃도 알게되고

서로 별미를 갖다 주며 요즘 자주 볼 수 없는 모습들이

우리 동네는  일상적인 생활들이다

 

특히 내가 사는 골목엔 너무 재미있고 신기한 일 들이 많다 

 

골목엔 주택이 다섯 채에 여덟 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중 두집을 제외하곤  2층엔 세를 사시는 집까지 여덟 가구 인 셈이다

 

잔디가 깔려 있거나 대문을 열면 큰 마당이 있는 것도 아니며 비싼 대문도

골목에 부티나는 승용차도 없지만 언제나 깔끔한 골목은 어느 일본의

작은 도시의 골목과도 흡사하다

 

골목 오른쪽 첫 집은 50대 초반의 부부가 아둘 둘과 2층까지 모두 사용하며

골목에선 마당이 제일 큰 집이라 파라솔 밑에서 한겨울만 빼곤 골목 사람들의

바베큐 파티 장소이다

 

그 옆이 우리집인데 마당은 예쁘지만 작아서 큰 화분 서너개만 둬도

사잇길로 다녀야한다 

우리집 2층은 얼마전 시부님께서 떠나신 집인데 40대 부부가 애견과 함께 산다

 

그 옆으로 막다른 집인데 그댁은 70대부부가 사시며

 2층엔 남편이 중병으로 떠난 후 아들 둘을 키우며 사는 이제 마흔 갓 지난 엄마가 산다

 

우리집과 마주보이는 막다른 집의 옆인 그댁은 1층은 큰아들이 혼자살며

2층은 60후반 부부와 작은 아들이 산다

이 댁의 큰아드님이 명문대 4년 때 갑자기 신병이란 이유로

학업도 그 모든 걸 포기하고 결국은 무속인이 되어 버렸다

 

우리집 거실 창문을 열면 큰 간판이(**철학관) ㅎㅎ

 

그댁 큰 아들의 아픈 과정을 알고 있기에 개의치 않는다

 

또 바로 옆집 그러니까 골목을 들어서는 왼쪽 첫 집이다

1층엔 60대 중반 부부시고  2층엔 세들어 사는 아들부부 시모님 손자.손녀

 

 골목에 다섯 채의 집 합쳐도 성북동의 어느 저택의 마당보다 작지만

우리골목 사람들은 작은 주택 하나를 얻기위해 긴시간 알뜰살뜰 했고

성북동의 저택이 전혀 안 부러운 넉넉한 사람들이다

 

골목을 벗어나면 작고 초라한 담배가게 노부부께서 종일 가게를 지키시며

폐휴지를 수거 하시는 노인들의 말동무나 물 한잔을 건네시기도

 

골목 바깥 맞은편에 새로이 빌라들이 몇동 들어서곤 낯선이 들이 많아졌고

새로이 안면을 익히는게 아직 어렵지만

빌라 한동에 많은 얼굴들을 나는 도저히 기억 해 내지 못한다

 

빌라가 들어선 후 주차문제로 앞 골목에는 시끄러움도 간혹 생기곤해도

 

우리골목 여덟가구는 별반 달라진게 없는 듯 우리들만의 천국을 누린다

 

봄이되면 골목 각 집들 마당에 목련과 벚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며

(우리집은 나무가 없다)

여름이면 우리 골목은 왁자지껄 어느 시골의 장날 분위기며

대문도 집집마다 열어 두는데 올해부턴 세상 무섭다며 걸어두기도

어느집이 콩국수를해도 열무비빔밥을 하는날도 잔치 분위기다

 

김장철이면 골목이 차례데로 한집씩 날짜를 정해하며

우르르 함께 거사(?)를 치루기도

 

우리는 친정어머니 떠나시고 여동생 교회 김장을 갖다 먹지만

나도 팔 걷고 함께하니 집집마다 주신 많은 김장들을 보관하려

김치냉장고를 한대 더 마련하기도

 

동네 김장들이 끝나면 이번엔 떡 파티를 하는데

여느땐 우리가 먹는 것에 너무 노골적이다 라며 한바탕 입이 찢어진다

 

막다른 집의 70대 안주인은 40년의 고된 시집살이로 고은 얼굴에

언제나 기죽은 모습이신데 재작년에 시모님이 돌아가시고

기 좀 펴고 사시려나 싶으니  암이란 중병을 발견하셔서

골목 엄마들의 조용한 울음소리가 퍼지기도

 

왼쪽 첫집 부군께선 공무원 퇴직 후 경비를 하시다

얼마 전 다리를 다치며 집에 계시는데 아픈다리로

페인트와 세멘으로 치장해서 새집같이 만드셨다

 

나는 게으름을 사실 타고난 사람인지 상도동 시절에도

집 앞을 쓸어 본 적이 없는데 이 골목에 살며 가만 있을 수 없게되었다

 

모두가 부지런 하시니 눈치가 보이기도하고

작년 겨울에 눈이 많이 왔는데 새벽 5시면에 골목 눈을 치우시니

부시럭 거리며 나도 함께 거들며 속으론 툴툴 거리기도 ㅎㅎ

 

어제는 감기로 아픈걸 어째 아시고 첫집 아주머니께서 묵은 모과차를

큰 보온병에 주고 가시기도 저리 큰 마호병에 뭘 보내 드릴까..?싶으다

 

20kg짜리 쌀로 가래 떡을 맞추려는데 여덟 집이 다 먹으려나

 그것이  고민이다

 

우리집 이층 며느님의 기도를 오랜시간 하는데 아직도 아기가 없으니

우리골목의 염려스럼의 일 중 하나다

 

이번 추석 전 이층 며느님이 한 턱 낸다기에 어느 식당을 가보니

오리탕 전문점 일곱 집에게 시부님 장례 때 감사의 표시로 큰돈을 쓰기도

 

덕분에 어찌나 포식을 했던지 사실 내가 오리탕이 처음이기에

오리탕이 그리 맛있다니 그간 안먹은게 손해 본 느낌도 드는 하루였다

 

요즘 우리 골목 진 풍경은 집집마다 대보름에 먹을 나물꺼리들을

말리는데 2층 베란다들 마다 내기라도 하듯이

여러 종류의 야채들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 중 이다

 

요즘 워낙 야채값이 비싸니 올해는 아주 조금씩

그속에 역시 나는 제외된다 동생이 사택 마당서 말려서

택배로 매년 보내 주기에 감사히 먹는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이웃과 함께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