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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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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미안해...


BY 윤아 2012-12-03

막내이고, 늦둥이인 난, 형제들과 나이차이가 많이난다.

큰언니와 10살.......

내가 중학생일때 언니가 결혼을 하여...

그래서 조카와 나이차이가 그리 많지가 않다.

어릴때....많이 가깝게 친하게 지냈던 아이였으나....

나 결혼하여 내 아이 키우다 보니 저절로 신경이 덜 쓰여 연락하고 지낸 기억이 거의 없다.

몇년 전 대학 졸업식때 언니 따라 가서 내 명함을 건내 주었던 것이 마지막이지 싶다.

고등학교 2학년때 쯤......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조카는

군대도 가지 못하고, 직업도 없이 대학 졸업 후 몇년을 두문분출 집에서만 지낸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전..........퇴근 후 마악 저녁 준비를 하려는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폰을 보니 그 조카다.

(얼라........이 아이가 뭔일이래.... 언니한테 일이 생겼나...?)

-그래 정석아........이모야....

- .....................

-여보세요...!정석이 아니니....?!!!

-내 번호 어떻게 알아요.

-엄마한테 무슨일 생기면 너한테 연락할라고 저장해 놓고 있었어.

-그런데 엄마께 무슨일 있어...? 갑자기 놀랬잖어...ㅋ

-근데...아줌마 왜 나 한테 반말해...?

(띵~~~ 왜 이래...이넘.....)

-아줌마가 뭔데  반말하고 지랄이야.

-..................

(이런상황에서 무슨말을 해야 되지....)

-내가 니들 식구들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어...

 니들이 우리 아빠랑 나 미워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구.

 그거 알어....

 내가 고등학교때 부터 얼마나 힘들었는지 니가 알어.

 엄마는 내가 키우던 개도 죽이고, 아빠랑 이혼을 하네 마네... 허구헌날 싸우고.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군대도 못가고 ,취직도 못하고, 엄마 때문에 ..... 여자만 보면 벌벌 떨고........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데....씨빨....

 내가 죽겠는데... 왜 엄마가 암에 걸리고 지랄이냐구.

 스트레스는 내가 더 받았는데... 왜 엄마가 아프냐고....

 다 죽으라구 해...

(전화를 끊을까...내가 왜 이런 또라이같은 넘의 말을 계속 들어야 하지.....

이모라는 이유로 그냥 참아내야 하나... 이걸 어떻하지....)

-왜 말이 없어 .....

-듣고 있어 말해.....

(그래...이 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한테 전화해서 이럴까....

그래...이모잖어...다 들어주자.... 듣기만 하면 되는데....까짓.

그런데......이 아이 그동안 사연도 많고, 서러움이 넘쳐서 담을 그릇이 없었나 보구나...)

그 다음부터 그 조카가 한 말은 차마 더 할 수가 없다.

왜냐면....... 그 조카의 슬픔이 억눌렀던 아픔이 너무 커서 상상도 못할 심한 말들을 쏟아 내었기 때문에....

1시간 가까이 댐에 같혀 있던 물이 수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져 나오듯이 그 조카의 서러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다가왔기에 피하지 않고 그냥 다 받아야만 했다.

하고 싶은말을 다 해서 그런지 말을 너무 많이 해서그런지 기운 없는 소리로 그런다.

- 엄마한테 전화해서 내가 포악을 떨었다고 해도 돼.

  난, 괜찮어. 원래 사람 취급도 받지 않은넘이니까.....

- 정석아....

 이모도 괜찮어. 니말처럼 내가 여지껏 너한테 해준게 없잖어.

 너무 없어서 그래서 그게 너무 미안하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단 말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니 스스로를 다치게 하면서 아파하지 말고, 주위의 가족들 힘들게 하지 말고,

 중요한건 니가 제일 소중하니까 상처 입지 말고, 정말 힘들때....엔 참지 말고,

 오늘처럼 이모에게 전화해...

 다 들어주고 받아줄께...

 너의 쓰레기통이 되어 줄께.

 그리고 오늘 이모에게 전화해서 한말은 나도 잊으마.

 너도 잊어라.

 속에 담아 두고 행여라도 죄스러워 하지 마라.

-.......................

말이없다.

그러다 전화가 끊어졌다.

그날밤........큰언니가 문자가 왔다.

늦은시간이라 재부의 눈치가 보여 문자 한듯 싶어 내가 전화를 했다.

- 낮에 정석이가 전화해서 개지랄 떨었다며....

- 아니...

- 그넘이 전화해서 너한테 전화해서 마악 욕했다고 하던데...

- 나 욕 들은적 없는데....

- 니가 이해해라.

- 언니 ..... 언니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정말 몰랐어.

  그런데 정석이가 나한테 심하게 하지 않았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나이가 몇인데... 괜찮어.

  정석이 한테 한말 나 그냥 한말 아니야...

  몇년전에 준 내 명함을 버릴수도 있었는데 버리지 않고

  갖고 있다가 정말 힘들때 전화해 주었다는게 난, 정말 다행이고 고마웠어.

  그래서 ... 힘들때마다 전화해서 나한테 화풀이 하라고 했어.

  참고있다가 병 깊게 하지 말고, 나한테 다 쏟아 부으라고....

  언니...나 듣는거 굉장히 잘하잖어.

  걱정하지 말고, 자.........

  내가 알아서 할께

수화기 저편의 늙은 언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십년 넘는 세월속에 당신 아들의 병을 친정 식구들에게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말을 아껴 왔었는데 그 설움이 얼마나 엄청났겠는가.....

십년 넘는 그 긴 시간을 얼마나 혼자 외롭게 싸웠겠는가.......

자식 가진 부모라면 그 마음이 어떤지 잘 알기에

그동안 무심했던 언니에게 조카에게 많이 미안한 시간이였다.